[클래식카 시승기]78년식 재규어 XJ 타보니 "나이는 나만 먹었네"

최기성 2018. 11. 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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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식 재규어 XJC [사진제공=재규어]
자동차는 출고되는 순간 가치가 떨어진다. 국내에서는 출고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가치가 10~20% 하락한다. 차종, 소비자 선호도,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보통 3년이 되면 30% 이상 가치가 떨어진다. 나온 지 5년이 되면 반값에 거래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차가 있다. 희소가치를 지닌 ‘클래식카’다. 해외토픽에는 폐차장이나 숲에 버려져 있던 고물차가 몇 대 안 남은 클래식카여서 수억은 기본이고 수십억에도 팔렸다는 소식이 종종 나올 정도로 클래식카는 대접받는다.

클래식카는 몸값이 비싸기에 주로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고에 고이 모셔진다. 전담 직원이 애지중지 관리한다. 타보는 것은 언감생심. 만지거나 보는 것조차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클래식카 메카인 영국에 가면 시골길을 종횡무진하는 클래식카가를 자주 만날 수 있다. 과거형 클래식카가 아닌 현재진행형 클래식카다. 영국에서는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부자들만 소유할 수 있는 럭셔리카가 아닌 역사를 가지고 전통을 지녀 헤리티지를 인정받는 대중적인 모델들도 ‘클래식카’로 대접받는다.

영국 브랜드인 재규어 랜드로버는 영국 클래식카 문화의 리더다. ‘클래식카 산실’은 영국 버밍엄에서 동쪽으로 30km 가량 떨어진 공업도시 코벤트리에 있다. 재규어 랜드로버의 특별한 차량을 전담하는 ‘재규어 랜드로버 스페셜 비히클 오퍼레이션(Jaguar Land Rover Special Vehicle Operation, 이하 SVO) 산하에 재규어 랜드로버 클래식 부서가 존재한다.

이 부서는 재규어 랜드로버 클래식 모델을 복원하고 수리·점검하는 클래식 웍스를 보유하고 있다. 클래식 웍스는 1만4000㎡ 규모에 54개의 작업장과 전용 전시실을 갖췄다.

작업장은 엔진 작업장을 비롯해 랜드로버 시리즈 I, 레인지로버 클래식, 재규어 E-타입 리본(Reborn)의 복원 프로그램을 위한 전용 해체·재제조·조립 영역 등으로 구성됐다.

클래식 웍스는 복원 작업에 귀중한 참고 자료로 사용할 500여대의 재규어 랜드로버 클래식 컬렉션을 보관하고 있다.

클래식 부서는 10년이 지난 모델은 ‘클래식카’로 여기고 단종된 모델의 순정 부품을 공급한다. 숙련된 전문 테크니션들은 이곳에서 3만종이 넘는 보증 부품을 사용해 클래식카를 복원한다.

영국~프랑스 1000km 대장정에 나선 재규어 클래식카 [사진제공=재규어]
재규어 랜드로버는 플래그십 모델 ‘재규어 XJ’의 출시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9월30일(현지시간)부터 50년간 생산된 1~7세대를 대표하는 XJ 클래식카 12대와 50주년 기념모델인 XJ50으로 영국 버밍엄 외곽에 위치한 재규어의 고향 ‘캐슬 브롬위치 공장’을 출발해 파리모터쇼에 도착하는 역사적인 행보를 펼쳤다. 영국 버밍엄~영국 포츠머스~프랑스 생말로~프랑스 파리로 이어지는 1000km 대장정이다.

대장정에 동참하기 위해 출발지인 캐슬 브롬위치 공장을 찾았다. 공장 앞에는 1~8세대를 대표하는 XJ 15대가 도열해 15개국에서 2명씩 온 기자들을 반겼다.

재규어 담당자의 미디어 브리핑 때는 귀를 의심했다. 기자들에게 직접 클래식카를 운전하고 대장정에 나서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 보여주기조차 꺼려하던 클래식카여서 운전은커녕 동승 체험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여겼는데, 직접 운전하라니 클래식카를 애지중지 관리한다던 재규어가 “간이 부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 아무리 관리를 잘했다고 하지만 20년이 지난 모델의 주행 성능은 기대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출시 당시엔 고성능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잘해야 현대 아반떼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몸값 비싼 클래식카를 파리모터쇼에 전시하기 위해 조심스레 탁송(?)해야 한다는 암묵적 ‘임무’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우핸들(오른쪽 스티어링휠)에 수동변속기가 달린 차가 배정된다면 좌핸들 자동변속기에 익숙해진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으로 글씨를 쓰라는 것처럼 힘든 시승이 될 것이라는 걱정도 들었다. 클래식카를 타는 기쁨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조작으로 사고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배정된 시승차는 불혹(40세)을 맞이한 1978년식 시리즈 2 쿠페 ‘XJC’다. 이제는 고전이 된 70~80년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우아한 ‘네눈박이’ 빨간 재규어 XJ다. 재규어 XJ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쿠페로 재규어 XJ 세단을 기반으로 1만여대만 생산된 몸값 비싼 클래식카다.

40년된 모델이라 당연히 수동변속기가 장착됐을 것이라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운전석을 유리 넘어로 살펴보는 순간 “후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다. 자동변속기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왼손을 쓸 일이 줄어드니, 편안한 드라이빙은 ‘따 놓은 당상’처럼 여겨졌다. 날씨도 도와줬다. 영국하면 떠오르는 우중충한 날씨가 아니라 마치 프랑스나 스페인에 있는 것처럼 화창한 가을 날씨였다.

사실, 자동변속기가 90년대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지만 1939년부터 상용화에 들어가 1950년대부터는 운전 편의성을 위해 프리미엄 세단 장착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978년 출시 당시 프리미엄 모델인 XJC에 자동변속기가 달린 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변속 모드는 ‘P-R-N-D’ 순으로 정렬됐다. 1965년 미국 운수부가 표준화한 변속 배열 방식을 따른 셈이다.

영국~프랑스 1000km 대장정에 나선 재규어 클래식카 [사진제공=재규어]
자동변속기 덕에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녀석을 찬찬히 살펴봤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를 장식한 크롬이 화려하면서도 예스러운 멋을 살려줬다. 날렵한 옆모습은 지중해를 항해하는 클래식 요트처럼 우아했다.

핸들은 요즘처럼 작은 손힘으로도 조향할 수 있는 아담한 사이즈의 파워 스티어링휠이 아니다. 조향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버스·트럭 핸들처럼 컸다. 두께는 얇고 재질은 딱딱했다. 하지만 버스나 트럭 핸들과 달리 우아했다.

설명 자료에 적힌 성능도 우수했다. 자연흡기 방식 12기통 엔진(V12)을 장착한 XJC 레이싱카는 1977년 죽음의 서킷이라 부르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유럽 투어링카 챔피언십에서 2위를 달성했다. 쿠페는 ‘자동차 기술과 디자인의 정수’라 불리는 데 재규어 XJ 시리즈 2 쿠페를 보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1978년식 재규어 XJC는 지금도 여전히 우아했지만 40년이나 흘렀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성능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시트는 사용감이 좀 있었지만 깨끗하게 관리됐다. 운전석에 앉으니 딱딱해 허리가 아플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안락했고 몸을 안정감 있게 잡아줬다.

큰 기대하지 말고 편안하고 여유롭게 드라이빙이나 즐기자는 마음으로 키를 돌렸다. 자연흡기 V12 5.3ℓ 엔진이 무게감 있는 엔진음을 내뿜었다. 최고출력이 288마력에 달하는 자신을 몰라주는 운전자를 나지막하게 꾸짖는 것 같았다.

녀석을 몰라준 미안함과 함께 녀석을 만끽하고 싶다는 기대감이 몰려왔다. 도로 폭이 좁은 영국 시골길에서는 경치를 즐기며 저·중속으로 움직였다. 잔잔한 바다 위에서 ‘세일링’하는 요트처럼 우아하면서 매끄럽게 도로를 항해했다. 크고 얇은 핸들은 요트의 조타 핸들을 연상시켰다. 노면 소음과 바람 소리가 다소 크게 들렸고 서스펜션도 딱딱한 편이었지만 여유로운 드라이빙을 방해할 수준은 아니었다.

시골길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선 뒤 자연흡기 V12 엔진의 힘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지 파악하기 위해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우우웅~”하는 굵은 외침을 내뿜으며 힘을 쓰며 내달렸다.

즉각적인 반응은 부족하고 노면 충격 흡수력도 떨어지고 자동변속기가 3단에 불과해 변속도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녀석이 40년간 간직해온 ‘포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오히려 매끄럽지 않은 주행 질감이 몸을 기분 좋게 긴장시켰다.

1978년식 XJC는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다”는 ‘불혹’처럼 여전했다.

“10년을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이라는 광고 문구처럼 40년 된 차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리한 것은 물론 직접 타보도록 자신있게 내놓은 ‘재규어 헤리티지’가 부러웠다. 나를 휘감은 세월은 1978년식 XJC를 비켜갔다. 우리는 언제쯤 고물을 보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까?

[영국 포츠머스=디지털뉴스국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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