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거부' 진짜양심vs가짜양심 어떻게 가려내나? [김현주의 일상 톡톡]

김현주 2018. 11. 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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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지난 1일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파기 환송 결정을 내렸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하지 않다며 유죄를 선고한 2004년 판례를 14년 만에 뒤집은 것입니다.

향후 파기환송심과 재상고 등에서 무죄 취지가 번복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는 점에서 이번 대법원 결정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법부 판단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다만 일부 대법관은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현실적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무죄를 인정한 다수 견해는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크게 벗어나 갈등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판결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앞으로 군대 갈 사람이 있겠나" "병역을 이행한 사람은 비양심적이란 말인가"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소지가 크다"는 등의 불만과 우려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실제 양심적 병역거부를 판가름할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양심은 인간 심리 내면의 것으로 쉽게 판별할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대법원이 정당한 양심적 병역거부의 기준을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고 제시했지만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들은 양심적 병역거부 합법화와 맞물려 당장 시행돼야 할 대체 복무제가 이제 겨우 논의 단계라는 점도 문제라며 과도기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당국은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이달 1일 대법원 판단에 따라 검찰에 고발된 병역거부자의 상당수가 무혐의 처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은 이날 전원합의체 판결 직후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해 후속 조치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그동안 병무청이 고발한 입영·집총 거부자들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지난 6월 말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에는 처분을 보류해왔다.

병무청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실상 인정한 헌재 결정에 따라 형사고발을 자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현재 전국 검찰청에서 수사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22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에 고발장이 접수돼 검찰로 송치되지 않은 사건까지 포함하면 30여 명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대법원 판결에 비춰 피고발인의 병역거부 사유가 정당할 경우 재판에 넘기지 않고 무혐의 처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심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객관적 기준을 먼저 세워야 하는 난관이 있다.

병무청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병역거부자 1만511명 중 여호와의 증인이나 불교 등 종교적 사유가 아닌 신념에 따라 입영·집총을 거부한 사람은 66명에 달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례를 변경하면서도 개별 사건에 대한 1차 판단은 검찰에 맡겼다.

대법원은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하면, 검사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양심을 직접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어 사물의 성질상 양심과 관련성이 있는 간접·정황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 대법관은 "양심의 존재는 증명될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병역거부와 관련된 진정한 양심의 존재 여부를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인다"며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사정들은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 발견에 부합하도록 충분하고 완전한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부 대법관 "양심의 존재 증명 불가능"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한 대법원 판단에는 지난 6월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문한 헌재 결정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헌재가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88조1항은 합헌 결정을 했지만,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경우 처벌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가 대체복무제의 존부와 논리필연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는 다수 의견을 밝혔다.

대체복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을 때 병역의무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취지다. 대체복무제가 입법을 통해 도입되기 전이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현재 대체복무제가 마련돼 있지 않다거나 향후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병역법 88조1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에게 해당 조항이 정하는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이동원 대법관은 헌재 결정으로 조만간 국회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이 입법화될 것으로 보이며, 대체복무를 허용해도 국방력 약화나 안전보장이 우려되는 상황은 초래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안보상황과 병역의무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요청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한 대법관들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는 대체복무제 도입 등을 통해 해결할 국가정책 문제임을 밝혔다.

대체복무를 포함한 국회의 개선 입법을 기다려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종교적 병역거부 '무죄'…국회 대체복무 입법 서둘러 추진해야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종교계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당사자인 여호와의증인 한국지부는 "종교적인 양심이 입영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평하며 대법원 판결을 환영했다.

여호와의증인은 "대법원이 내린 이 역사적인 판결로 각급 법원에 사건이 계류중인 900명 넘는 형제에게 무죄가 선고될 근거가 마련됐다"면서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진 것에 대해 기뻐하며 여호와께 찬양을 돌리자"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판결이 있기 얼마 전 한국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해 내년 12월까지 대체 복무제를 도입하는 조항이 있어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상기하며,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 거부의 정당성을 거듭 역설했다.

진보 성향 기독교단 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도 판결을 지지했다.

센터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면서 "이는 더 이상 전쟁을 위한 무기를 들지 않겠다고 결심한 젊은이들에게 큰 용기를 줬다. 특별히 남북 군사 적대 행위가 전면 중지된 11월1일, 판결된 이 결정은 우리 사회의 평화 정착과 화해의 길에 의미를 더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양심적 신념을 존중하고,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는 결정"이라며 "한국 사회의 평화 정착과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 증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이제 한국 정부는 오늘 대법원 결정에 따라 인권과 평화의 새 시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할 것"이라면서 징벌적 성격이 아닌 실질적인 대체복무제 실현, 현재 계류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사건에 대한 법원의 옳은 판결 등을 주장했다.

한국 라엘리안 무브먼트도 "국제사회도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인정하는 추세이고, 우리 사회도 대체복무제 필요성의 공감대가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대법의 판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환영했다.

더 나아가 "궁극적인 세계 평화를 위해 모든 나라가 군대를 폐지하고 절대적 비폭력주의를 채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보수 성향 개신교단 협의체인 한국기독교연합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안보 현실을 무시한 판결로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 낳을 우리 사회의 혼란에 대해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제 대한민국은 군대 가지 않기 위해 '나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줄을 서고,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는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 뻔하다"고 대법 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향후 사태를 우려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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