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주름은 오선·표정은 악보가 됐네..77세 플라시도 도밍고

이재훈 2018. 10. 27. 10:1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금으로 타는 노년의 즐거운 울림.' 주름은 오선(五線), 표정은 악보가 됐다. 팔순을 향해 가는 스페인의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77)의 노년은 아침에 비유할 만했다. 노년에도 생동하는 그의 표정과 몸짓에서 음악이 들렸다. 여전히 청명한 목소리는 박남수의 '아침이미지' 속 '태양'이라는 단어를 노년으로 대체하게 했다.

2년 만인 26일 오후 잠실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내한공연에서 도밍고는 주름이 지고, 백발 성성한 겉모습에도 심장은 여전히 경쾌한 리듬으로 뛰고 있음을 증명했다.

세월의 풍파를 이긴 목소리는 주름진 얼굴을 오선삼고, 풍부한 표정을 악보 삼아 정갈하게 공연장을 채워나갔다. 시각적으로 청각을 자극을 놀라운 힘, 그건 노년의 거장이 빚어내는 마법 같은 일이었다. 나이 든 성악에 대한 일반 청중의 뇌를 무단 점거한 상식과 권태를 깨트리는 기적.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무조건 외웠던 이론의 물리적 체험이라고 할까.

바리톤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테너로 전성기를 누린 도밍고는 약 10년 전 바리톤으로 돌아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날도 그윽한 바리톤으로 음표 무더기를 쏟아냈다.

사실 도밍고의 겉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편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공연 초반 그의 목소리가 나오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가 부른 첫 곡 오페라 '발퀴레' 중 '겨울 폭풍은 달빛에 사라지고'가 점점 전개되자, 폭풍우가 물러가듯 눈꺼풀도 자연스레 열렸다. 깊숙하고 그윽한 음성을 내는 그의 표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맑은 음색은 여전했지만 1부에서 도밍고의 끝 음은 다소 힘이 떨어졌다. 예전 전성기 테너 시절 목소리가 속사포 같았다면, 현재 목소리는 포물선 같다고 할까. 하지만 드라마틱함은 여전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소프라노 아나 마리아 마르티네즈와 함께 부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부드럽게 말씀해주세요'에서 얼마나 감성적으로 노래했는지, 곡이 끝나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정통 오페라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프로그램인 2부에서 도밍고는 목이 풀렸는지 더 풍성하고 분명한 음성을 들려줬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의 '오늘 밤'은 자유롭고 밝고 맑았다. 오페라 '사랑의 속삭임' 중 '이제 행복한 시간들'에서는 영롱했다.

역시 가장 큰 울림을 준 곡은 본 공연 마지막으로 부른 오페라 '놀라운 일' 중 '사랑, 내 삶의 모든 것'.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한 '스리 테너' 콘서트에서도 불렀으며 그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추천해준 곡이다. '젊은 시절에 대한 추억, 떠나버린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 특별하다'고 소개했던 곡으로 이 곡을 부르는 내내 도밍고의 얼굴에서 그의 삶들이 스쳐지나갔다. 삶의 다양한 송이들이 모두 뒤섞인 꽃다발을 들고 있는 듯했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앙코르에서 도밍고는 팔색조였다. 무려 5곡의 앙코르곡이 쏟아졌는데, 꽃 잔치가 자지러지도록 무르익은 듯했다. 몸을 들썩이는 '베사메 무초(Besame Mucho)'가 흘러나오자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 7000명은 기립했다.

도밍고는 마르티네즈와 레파르의 오페라 '유쾌한 미망인' 왈츠 듀엣을 부르다 직접 왈츠를 추기도 했다. 본 공연 때 소프라노와 듀엣 곡이 나오면 무대를 종회무진하며 여전한 활동성과 연기력을 보여준 그다. 스페인 출신 그가 '그라나다'를 부르자 관객들 모두 스페인 이국으로 떠났다.

앙코르 마지막곡은 예정한 대로 한국 가곡 '그리운 금강산'이었다. 한국 소프라노 임영인이 선창하고, 한복 두루마기의 하나로 겉옷 위에 덧입는 옷 '쾌자'를 걸친 도밍고는 마르티네즈와 그윽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악보를 든 채였지만 한음 한음 힘이 실려 있었다.

총 3시간 가까이 열린 이날 공연에서 도밍고는 소프라노와 듀엣 7곡 포함 총 13곡을 불렀다. 다른 성악가의 일반적인 공연과 달리 마이크를 사용하고, 음향의 균형을 잡긴 힘든 체육관에서 열린 무대였지만 만족도는 높았다.

'실망을 안길 수도 있겠다'라는 우려에 구금됐던 걱정이 모두 날아갔다. '어쩌면 마지막 콘서트···'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2년 전 '고별 콘서트'라는 타이틀로 내한한 도밍고의 8번째 내한공연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여전히 '오페라의 제왕'으로 통하고 지난 6월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한 올해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신작 '맥베스'에도 타이틀롤로 섰던 만큼, 다음은 전막 오페라?

realpaper7@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