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피디가 분석한 '고석만 연출론'..프로그램 낙관시대 열다"

2018. 10. 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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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제3공화국' 기획 발표
주요 일간지 '새 정치드라마' 큰 관심
'5·16~10·26 질곡의 역사 재현'
'박정희 시대 역사적 평가 시도'

정길화 피디 '엠비시 가이드' 기고
연출 데뷔 20년만에 첫 본격 비평
'60분짜리 드라마 1천여편 만들어'

85년 '아파트 창문 이야기'에 주목
"방송은 유리조각 치우는 손길 봐야"
시청률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 '통렬'
"사회발전 책무 위해 악역도 기꺼이"

'브레이트 기법' '완벽주의'도 포착
"드라마는 시청자 스스로 통찰 유도"

[한겨레]

1992년 12월 고석만 연출은 이영신 작가와 ‘공화국 드라마’ 세번째 시리즈 <제3공화국> 제작을 발표했다. ‘정치경제 드라마’ <땅>의 강제종영과 김기팔 작가 별세 파문 이후 1년 만의 새 작품이어서 방송가 안팎의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90년 <제2공화국>에서 ‘박정희’를 연기한 이진수(맨 왼쪽), ‘김종필’의 이정길(맨 오른쪽)이 그대로 출연했고 ‘장도영’으로 노주현(왼쪽 둘째)이 가세했다. 엠비시 가이드 제공

[길을 찾아서] 고석만의 첨병 (40회) ‘제3공화국’ 개막전야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글로 털어놓는다.

1993년 2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제3공화국>이 화제몰이를 하면서 <한겨레>(4월12일치 인물탐구)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에서 ‘고석만 연출’에 대한 조명도 쏟아졌다.

1992년 12월 <문화방송>(MBC) 정치드라마 <제3공화국>의 기획이 발표되었다. 신문은 다투어 보도했다. <한겨레>는 ‘5·16부터 10월유신까지, 질곡의 역사 재현’(92년 10월 박근애 기자) 기사로 새 작품을 앞서 미리 소개했다. “정치드라마 연출에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고석만 프로듀서는 ‘많은 준비가 끝났다. 아직은 공개할 수 없으나 신문의 정치면 머리기사로 다뤄질 만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이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발굴돼 보여질 것이다’라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 ‘제3공화국 드라마로 본다’ 제목 아래 ‘정치드라마의 진면목을 보여준 고석만 피디의 야심작’(<중앙일보> 92년 12월 채규진 기자), ‘제2공화국 때는 조연이면서 가장 주목받던 박정희가 <제3공화국>에서는 주인공으로 넉넉하게 볼 기회가 생겼다’(<조선일보> 92년 12월 진성호 기자), ‘다큐드라마 새 장 연 연출 2세대’(<한국일보> 전면기사>, ‘박정희 시대 역사적 평가 시도’(<동아일보> 93년 1월31일 양영채 기자) 등이 잇따랐다. ‘인물탐구―제3공화국 만드는 문제의 피디’(<한겨레> 93년 4월12일 박근애 기자), ‘만나봅시다―고석만 인터뷰’(<조선일보> 93년 4월18일 정중헌 기자)

<조선일보>(1993년 4월18일치 만나봅시다)의 고석만 피디 전면 인터뷰 기사.

특히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정길화 피디가 쓴 ‘몰입과 단절, 반성과 인식’(<엠비시 가이드> 93년 1월호)은 데뷔 20년 만에 ‘고석만 연출론’에 대한 처음이자 본격적인 비평이란 점에서 기록해둘 만하다. 교양제작부 소속의 시사프로그램 피디가 드라마 피디의 작품을 분석했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이었다.

1993년 <제3공화국> 제작을 계기로 문화방송의 간판 시사프로 <피디수첩>의 정길화 피디는 ‘몰입과 단절, 반성과 인식’ 제목으로 고석만의 연출 세계를 집중 분석한 비평을 <엠비시 가이드>(93년 1월호)에 썼다.

“텔레비전에서도 누가 연출을 했느냐가 프로그램 시청을 결정하는 시대가 열렸다면, 그 기원은 고석만이라는 연출가로부터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말하자면 티브이 프로그램에 대한 연출가의 ‘낙관(落款·브랜드) 시대’를 실질적으로 열었다는 말이다. 연출가 이름 석자를 보고 시청 여부를 판단한다는 의미다. 그럴 정도로 작품에 연출가의 개성이 강렬하게 배어 있다는 얘기다. 이렇듯 텔레비전을 알고 드라마를 아는 시청자들로부터 환호를 받고 자신의 작품에 그 특유의 개성을 싣는 연출가 고석만 프로듀서. 그의 이름이 담겨 방송된 프로그램의 면면을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수사반장>, <제1공화국>, <거부실록>, <야망의 25시>, <간난이>, <억새풀>, <제2공화국>, <땅> 등의 연속극과 <아베의 가족>, <단재 신채호>, <백범일지> 등의 특집극들. 아무리 텔레비전에 무심하고 드라마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그가 연출한 드라마를 한두 번 보지 않은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제1공화국>, <야망의 25시>, <간난이>, <제2공화국>, <땅> 등은 방송 도중 공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그중 일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애초의 기획대로 방송되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고석만 프로듀서를 각별히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이러한 화제성에 있지 않다. 그가 문제를 위한 문제작, 화제를 위한 화제작을 일부러 작정하고 만들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1973년 문화방송 입사 뒤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1976년 이래 60분짜리 기준으로 1천편이 넘는 드라마를 제작해온 그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고석만 프로듀서야말로 자신의 철학과 주관으로 차분하게 그의 창작 생활을 견지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고석만 프로듀서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그의 지론인 ‘아파트 창문 이야기’(<엠비시 가이드> 85년 8월호, 영화감독 배창호씨와의 대담)에서 단초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술 취한 녀석이 소주병을 깨뜨리며 고래고래 노래를 부른다고 칩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다 내다보겠죠. 시청률 최고입니다. 그렇지만 잠시만 지나면 사람들은 욕을 하며 창문을 닫을 겁니다. 그 주정뱅이가 사라지고 난 뒤 깨진 유리병 조각에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다칠까를 염려해 조용히 유리조각을 치우는 아낙네―이 사람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가 있다면 방송인의 자세는 이 아낙네 손끝이어야 하고, 이 아낙네의 손끝을 조명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91년 3월 그의 어조는 사뭇 견고하고 단호해져 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자리일지라도 그곳에서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책무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악역이라면 저는 기꺼이 악역을 계속할 용의가 있습니다.’(1991년 ‘어제 그 프로 봤어?’에서)

‘희망’에서 ‘악역’까지.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자못 비장감마저 도는 분위기는, 1991년 드라마 <땅>이 외압으로 강제 하차된 직후라 다분히 격앙된 감정의 여운이 가셔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아파트 창문 이야기’에서 그의 프로그램을 통찰하는 정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첫째로, 시청률 제일주의에 대한 그의 통렬한 반박이다. 고석만 프로듀서의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흥미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 이른바 심야 시간에 편성됐던 그의 프로그램들은 드높은 시청률을 구가한 편은 결코 아니었다. <제1공화국>, <야망의 25시>, <제2공화국>이 그러했고, <땅>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 수치인 시청률로는 절대로 파악할 수 없는 엄청난 바람을 일으켰다. 그 바람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때로는 텔레비전을 백안시하던 식자층까지 티브이 앞으로 끌어들였다.

둘째로, 방송과 드라마의 사회성에 대한 그의 치열한 정신이다.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유리조각을 치우는 아낙네의 손끝을 주목하겠다는 적확한 비유 안에 드라마 연출가로서 그의 지향이 탄탄하게 담겨 있다. 그의 드라마에서 쉽사리 눈에 띄는 사회성이 단순한 소재주의가 아니라 주제 의식과 결합된 강고한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는 데뷔 이래로 <제3교실> <수사반장> 등 시추에이션 드라마에서부터 사회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내용과 형식에서 파격적인 변화를 보여왔다. 드라마의 사회성에 대한 진지하고도 올곧은 그의 탐색은 그런 만큼 매우 실천적이다.

1993년 <제3공화국>의 주요 인물들. 차지철(이대근), 정일권(정승현), 송요찬(김진태).
윤보선(이순재), 유진산(심양홍), 김대중(백윤식). 엠비시 가이드 제공

그러나 그 자신이 단지 ‘아낙네의 손끝’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드라마에 우리 사회가 보인 반응은 엄청난 것이었다. 드라마의 건강성과 정직성을 강조하고,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빠른 치료를 도모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은 때로는 환부를 노출당하지 않으려는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른바 사회성을 주장하는 드라마가 드물어 시청자들이 더 충격적으로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누구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우리 드라마에는 일종의 평준화, 획일화 경향마저 있어서 그렇지 않은 드라마는 더욱 발붙일 곳이 없다. 문제와 화제를 동시에 몰고 다니는 그의 드라마에 대한 지적에 변명처럼 그가 말한다. ‘아낙네의 손끝’ 정도도 우리 사회에선 ‘악역’이 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일까. 그렇다면 그는 ‘악역’을 자처하면서까지 왜 이 일을 고집하는 것인가.

행운의 만남, 그리고 역사의식, 여기서 이제 고석만 프로듀서를 ‘드라마 작가’로서 거듭나게 한 결정적인 계기인 고 김기팔 선생과의 만남을 이야기해야 한다. 김기팔 선생을 만남으로써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발아시킬 수 있었던 것을 그가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작가 김기팔과 드라마를 만든 이가 고석만 프로듀서뿐만이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하나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밭’(心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중략)

대통령 윤보선(이순재)은 <제3공화국>에서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의 집권까지 ‘조연’으로 다시 등장한다. 1961년 5월20일 ‘대통령 하야선언 번복 기자회견’ 장면. 엠비시 가이드 제공

한국형 브레히트 기법, 고석만 기법, 그의 프로그램을 이끄는 한 축이 역사의식이라면 다른 한쪽의 이른바 브레히트 기법은 고석만 드라마의 특징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이미 알다시피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연극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회 변화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그러면서도 메시지를 관객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문제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이 브레히트의 방법론은 고석만 프로듀서에 이르러 한결 구체적이 된다. 이 땅의 드라마를 살리고 대중을 자각하게 하는 길은 브레히트 기법을 한국적으로 수용하는 데에 있다고 일찍부터 믿어온 그는 스스로 ‘한국형 브레히트 기법’을 추구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는 이것이 이른바 드라마의 평준화 현상에 길든 시청자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드라마와 시청자 사이에 간격을 만들어줌으로써 드라마의 몰입에서 빠져나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설을 사용하는 것도 그러한 효과를 노리고 설정한 장치의 일종이다.

<제3공화국>에서는 박정희의 맞수 ‘김대중’(백윤식)이 야당 국회의원으로 처음 등장한다. 앞서 <제2공화국>부터 등장한 ‘김영삼’(길용우)과 형평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수개월간 고심해야 했다는 뒷얘기도 전한다. 엠비시 가이드 제공

텔레비전은 텔레비전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즉 텔레비전과 드라마가 사람을 장식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텔레비전에도 시청자에게도 유용하다는 그의 주장은 고전적인 드라마 기법에 오랫동안 길든 시청자들에게 좀 생소하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감동의 매체가 아니라 인식의 매체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드라마를 단절시키고 그런 단절을 통해 시청자를 자각하게 해야 한다는 분명한 그의 방법론에는 숙연해진다.

‘드라마는 시청자가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땀 흘려 산을 올라 정상에 오르는 것과 같다. 몰입과 단절을 반복하며 스스로 반성하고 깨달은 뒤 마침내 인식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을 나는 감히 고석만 기법이라고 말하겠다.’

이렇듯 한국형 브레히트 기법에 관한 그의 생각은 거의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느낌이다. 결국 역사의식이 고석만 드라마의 주제를 자리매김하는 주요한 축이라면, 브레히트 기법은 그 주제를 실어 날라서 형상화하는 방법으로서 그의 드라마를 규정하는 또 다른 축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양손에 쌍칼을 휘두르며 거친 벌판을 질주하는 드라마 연출가 고석만, 그의 무기는 결코 칼만이 아니다. 손에 든 칼은 이 시대와 싸우는 유효한 수단일지 모르나 그것만으로 전쟁에 이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가장 강한 적은 자신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내부의 적을 다스리기 위해 그는 ‘완벽주의’란 쓰디쓴 약을 수시로 복용한다.

<제3공화국>에서 박정희와 더불어 가장 비중있는 배역인 부인 ‘육영수’는 김미숙이 열연했다. 엠비시 가이드 제공

고민하지 않으면 복잡해진다. 가장 많은 고민을 했을 때 가장 쉽게 끝난다. 가장 단순한 컷이 가장 아름답다. 콘티를 짤 때 어떤 장면이 안 풀리면 미세한 대사 하나, 컷 하나로 밤을 새운다. 자신이 납득을 못할 땐 절대로 그냥 넘겨버리지를 않는다. 드라마가 완전히 내부에 스며들면 그때엔 대본만 봐도 역할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저기 박정희가 들어온다. 저기 육영수가 들어온다.

머지않아 정통 정치드라마 <제3공화국>은 시작될 것이다. 한 손엔 역사의식, 다른 한 손엔 한국형 브레히트 기법을 들고 완벽주의란 쓴 약을 먹으며 치열하게 달려가는 고석만 프로듀서. 그의 예견력이 영험을 발휘하기를, 더 이상 ‘아낙네의 손끝’이 ‘악역’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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