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피해지의 올레길 [여적]
[경향신문]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나흘 뒤인 2011년 3월15일 쓰나미가 공격한 미야기(宮城)현 미나미산리쿠를 찾았다.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변한 거리 곳곳에서 집, 전신주, 차량들이 뒤엉켜 있었다. 어느 집 벽에 걸려 있었을 그림 액자, 이불, 전기밥솥, 전화기가 목조 가옥의 잔해들 사이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영하의 날씨 속에 탐지견을 앞세운 구조대원들이 이날 하루 6구를 잔해 속에서 수습했다. 미나미산리쿠 외에도 이시노마키, 나토리 등 해안 지역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게센누마는 지진으로 유류탱크가 넘어지면서 시가지 전역이 불바다가 됐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전체 사망·실종자 1만8434명 중 1만763명이 미야기현에서 나왔다. 미나미산리쿠 취재 도중 잔해물 더미에서 발견한 앨범 속 소녀는 무사할지, 저 집계에 포함됐을지, 줄곧 궁금했다.
그 미야기현에 트레킹 코스 올레가 만들어져 지난 7~8일 현지에서 개장식이 열렸다. 미야기현청이 지역부흥을 위해 사단법인 ‘제주 올레’와 협력해 게센누마와 히가시마쓰시마 2곳에 길을 냈다. 6년 전 남부 규슈에 생긴 이래 일본에선 두번째 올레 코스다. 정갈한 마을 길을 지나 야산 숲길을 통과하면 태평양 너른 바다와 제주 외돌개를 닮은 바위 형상들이 어우러진 해안길이 나타나는, 올레 이름에 값하는 풍광 좋은 길이다.
다만 걷는 도중에 7년 전 재해가 남긴 상흔들과 마주치게 되는 것이 여느 길과 다르다. 절경의 다도해가 펼쳐진 히가시마쓰시마의 해안에는 콘크리트 방조제들이 군데군데 설치돼 있다. 시간이 흐르며 새살이 돋아 상처가 희미해지듯 세월의 더께가 방조제의 이물감을 지워가겠지만, 지금 당장은 붕대를 감고 재활에 애쓰는 환자를 떠올리게 한다.
배경지식 없이 자연 속에서 한때를 보내려던 이들에게는 조금 당혹스러운 광경일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속성이란 원래 그런 것임을 마주하는 기회일 수 있다. 늘 자연 위에 군림하려 하지만 인간 존재란 실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되돌아보고 재난 지역주민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치유’가 아닐까. 무시로 태풍에 시달리는 제주와 미야기의 올레길은 꽤 닮았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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