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영화 개척자 임일진, 영화 무대 '히말라야' 품에서 영면
[경향신문] ㆍ대학 산악부서 산과 첫 인연, 일본서 영상 공부…다큐 감독
ㆍ최고의 산악영화제서 특별상…영화 ‘히말라야’ 촬영 참여도
ㆍ최근 대본 쓰며 극영화 도전
험준한 산에 올라 자연의 장엄함과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을 영상으로 담아온 산악 영화인, 그는 끝내 그토록 사랑한 산에서 카메라를 멈춰야 했다.
지난 13일 네팔 히말라야에서 숨진 채 발견된 원정대원 중에는 다큐멘터리 감독 임일진 엑스필름 대표(49)도 있다. 국내 대표적인 산악 영상인 중 한 명인 임 대표는 2015년 개봉해 776만명을 동원한 산악 영화 <히말라야> 제작에도 참여한 바 있다. 그가 최근 장편 극영화를 제작 중이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14일 산악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임 대표는 1988년 한국외국어대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인연을 맺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영상을 공부한 그는 산악인이자 영화인이었다. 2002년 <브리드 투 클라임>을 시작으로 2005년 <렛츠 겟 펌프드>, 2007년 <어나더 웨이> 등을 만든 그는 2008년 <벽>을 연출했다. 산악인 전양준씨를 주인공으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부가부에서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을 담은 이 영화는 산악영화제로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트렌토영화제에서 본상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아시아인 가운데 처음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파키스탄 스탠픽(7020m)·가셔브룸(7147m), 네팔 촐라체(6440m)·에베레스트(8848m) 등 산악 영상을 TV 시청자들에게 여러 차례 선보였다. 2016년에는 네팔 에베레스트와 임자체(6189m)를 가상현실(VR)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2015년에는 영화 <히말라야> 특수촬영(VFX) 원정대장으로 참여했다. <히말라야>는 히말라야에서 숨진 후배 대원 박무택(정우)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엄홍길(황정민)과 휴먼원정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임 대표는 2014년 봄 5주가량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머무르며 눈사태와 크레바스·빙하 등 영화 속 컴퓨터그래픽의 배경이 될 소스 촬영을 이끌었다.
<히말라야>의 주승환 PD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시 현실감을 주기 위해 직접 가서 최대한 소스를 많이 찍자고 결정했고, 지인을 통해 촬영 경험이 많은 임 대장(대표)을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주 PD는 “당초 에베레스트 캠프2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날씨가 워낙 안 좋았고, 스태프 한 명이 기침이 심해 갈비뼈에 금이 가는 등 어려움이 있어 캠프1에서 진행했다”며 “임 대장이 없었다면 캠프1도 가지 못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준 임 대장이 있어서 다행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날 사고 소식을 접한 주 PD는 “산에 다니시는 분들이 그렇듯 임 대장도 차분하고 수수한 분이었다”며 “구르자히말은 높이는 높지 않은데 에베레스트와 달리 접근 환경이 안 좋다고 들었다. 이제 편안히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임 대표는 극영화에도 도전하며 새로운 산악영화를 개척하던 중이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 중이던 극영화 <북한산 다람쥐>는 히말라야 등에서 펼쳐지는 기존 산악영화의 고정관념을 탈피해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산악영화다. 산악인들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북한산 인수봉 아래 버려진 군용 벙커에서 추락한 등반자들의 지갑을 털거나 시신을 수습해주는 대가로 살아가던 한 남자의 이야기로, 임 대표는 최근까지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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