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의 곤충記]소리로 짝을 찾고, 소리 때문에 죽는다. 땅강아지!

이강운 곤충학자 2018. 10. 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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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과 가을 빛 들어가는 샛노란 들녘이 맞붙은 논둑길을 걸어가면 여기저기서 메뚜기들이 어지럽게 톡톡 튄다. 메뚜기는 참나무와 같이 한 종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다양한 벌레를 통틀어 말하며, 우리벼메뚜기, 끝검은메뚜기 등 이름에 메뚜기가 붙은 종뿐만 아니라 귀뚜라미, 땅강아지, 베짱이, 여치 등도 모두 메뚜기목에 속한다.

식물과 잘 어울리는 녹색이나 땅위 낙엽과 비슷한 흑갈색의 체색과 도약하기 알맞은 굵은 허벅지를 갖고 있으며 날개가 일직선으로 곧추 서 있는 곤충을 메뚜기로 부른다. 도심 외곽의 들녘에서도, 조그만 텃밭이나 풀밭에 나가면 그나마 쉽게 만날 수 있는 곤충이다.

우리벼메뚜기 짝짓기 모습, 애여치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생김새나 행동학적인 특성이 제각각이다. 메뚜기무리는 크게 메뚜기아목과 여치아목으로 나누는데 메뚜기아목은 대부분 주행성으로 더듬이가 짧고 눈이 커 시각이 발달했으며 낮에 소리를 낸다. 날개와 뒷다리가 여치아목보다 발달되어 멀리 뛰며 비행 거리도 길다. 여치아목에 속하는 베짱이나 귀뚜라미, 방울벌레 종류는 야행성으로 밤에 노래하고 눈이 작다. 작은 눈 대신에 더듬이가 길어 시각보다는 더듬이를 통해 자극에 반응한다. 

이러한 외형적, 생태적 특징을 관찰하여 일차적으로 나눌 수 있지만, 메뚜기무리를 분류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어떻게 소리를 내느냐’이다. 모든 동물의 세계에서 필생의 과업은 짝짓기이고, 소리로 짝을 찾는 메뚜기 무리에게 소리는 번식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메뚜기아목은 앞날개와 뒷다리를 비벼서 소리를 만드는 종류이고, 여치아목은 양 쪽 날개를 마찰시켜 소리를 내는 종류다. 가을에 곤충의 소리만으로도 종류를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어떤 소리로 들리는지 다르겠지만 밤에 아름다운 선율이면 여치 종류, 낮에 다소 거친 소리면 메뚜기 종류다. 

여치아목은 앞날개 양쪽에 있는 마찰편(Scraper)과 톱날 줄(File)을 긁어 고운 선율의 바이올린 같은 음악을 만들고, 긁어 낸 소리를 더욱 증폭할 수 있는 공간인 투명하고 얇은 울림판(Mirror)을 만든다. 메뚜기아목은 앞날개와 뒷다리를 비벼서 소리를 만드는 종류로 타악기 같은 둔탁한 소리를 내지만 별도의 울림판은 만들지 않고 소리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짝을 찾는다. 

여치아목,메뚜기아목 날개 비교

메뚜기아목의 청날개애메뚜기(삽사리과)는 뒷다리에 마찰판의 기능을 하는 짧은 못처럼 생긴 돌기들을 앞날개에 비빈다. 풀무치(메뚜기과)는 반대로 앞날개 마찰판을 뒷다리로 비벼 소리를 내어 암컷을 유인한다. 특별한 발성 기관이 없이 뒷날개와 앞날개를 부딪쳐 따다다다닥 소리를 내는 방아깨비도 메뚜기아목에 속한다.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촬영한 청날개애메뚜기 File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촬영한 청날개애메뚜기 Scraper

소리를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하므로 ‘어떻게 소리를 내느냐’ 만큼 ‘어떻게 소리를 듣느냐’도 중요한 분류 기준이 된다. 메뚜기무리는 타원형 고막(eardrum)을 가졌는데 고막의 위치가 다르다. 메뚜기아목은 첫 번 째 배마디에 있고 여치아목은 앞다리 종아리마디에 고막이 있다.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코피포라 고르고넨시스(Copiphora gorgonensis)’라는 여치는 2만3천 ㎐ 주파대에서 노래를 하고 5000~5만 헤르츠(㎐) 주파대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사람에 비해 놀라운 청각을 지녔다(사람의 가청권은 20~2만㎐). 극도로 예민한 청각은 고막 안에서 액체로 가득 차 있는 팽팽한 길쭉한 풍선처럼 생긴 소리 주머니인데, 이 기관은 포유류의 달팽이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여치의 놀라운 청각을 생체모방(biomimetics)해 보청기나 극도로 예민한 마이크와 음파 감지기를 만들 수 있다.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촬영한 긴꼬리쌕쌔기 고막

메뚜기 무리는 그나마 쉽게 만날 수 있는 곤충이지만 땅강아지는 보기 힘들어진 종이다. 가재같은 외형에 짧은 다리로 재빠르게 기어가는 모습은 메뚜기와는 전혀 달라 보이지만 앞날개 마찰판과 톱날 줄을 긁어 소리를 만드는 방식이 귀뚜라미와 같으므로 여치아목에 속한다. 서식하는 곳이 지하라 소리를 잘 전달하기 위해 울림판으로는 부족해 굴을 파고 호른처럼 입구를 넓게 하여 소리를 크게 한다. 짝짓기를 위해 소리를 최대로 키웠으나 큰 소리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호주 쏙독새는 매복을 하면서 땅강아지 소리를 완벽한 싱크로율로 재현한 후 땅속에 숨어 있는 땅강아지를 잡아먹는다.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촬영한 땅강아지 Scraper
주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촬영한 땅강아지 File
땅강아지 지하 굴, 호른

암컷의 짝짓기 불빛 신호를 흉내 내어 수컷을 잡아먹는 포투리스(Photuris)속 반딧불이나, 소리로 유인해 땅속 땅강아지를 찾아 내 잡아먹는 쏙독새의 경우처럼 먹이를 선택해 자신의 행동이나 생리를 특화시키는 생존 전략이 정교하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자연 현상은 매우 놀랍다. 번식을 위해 암컷을 유인하는 과정이 사실 목숨을 건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번식은 이렇게 힘이 든다.

쏙독새 포식 장면

아직 짝을 짓지 못한 수컷은 다가가는 인기척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밤낮도 가리지 않으며 마지막까지 소리를 낸다. 아름다운 노래 소리 지쳐가니 가을이 깊어간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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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pecies.nibr.go.kr

https://www.rct.uk

※ 필자소개
이강운 곤충학자 (holoce@hecri.re.kr)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사)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국립인천대학교 매개곤충 융복합센터 학술연구 교수. 과학동아 Knowledge 칼럼 ‘애벌레의 비밀’을 연재했다. 2015년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Ⅰ 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 Ⅰ’(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2016년 캐터필러 Ι, 2017년 캐터필러Ⅱ(도서출판 홀로세)를 지었다.

[이강운 곤충학자 holoce@hec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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