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부터 대화법까지..'배운 부모' 여기 있습니다

2018. 9. 1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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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공부하는 학부모들
지난 9월3일 인성교육에 관심 있는 학부모스터디 회원들이 모임 도중 사진을 찍고 있다. 오산교육재단 제공

아이에게 ‘공부해라’ 강요하는 부모는 많다. 부모에게 ‘공부하세요’라고 말하는 아이는 없다. 아이에게 부모는 언제나, 무엇이든 다 아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한데 최근 <엄마도 학부모는 처음이야>와 같은 제목의 책들이 출판 시장에서 주목을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부모로서의 첫걸음이 조금은 불완전하다는 점을 인정한 뒤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 소통·대화법 학습에 관심 높아 공부하는 학부모들이 요즘 ‘대세’다. 아이들에게 국어·영어·수학 등을 가르치는 학습면에서의 공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최근 학부모 스터디는 비폭력대화법, 진행촉진자(퍼실리테이터), 협동 놀이 등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과 ‘교육 나눔’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동안 학부모 대학 등 부모교육 강좌 내용들이 ‘우리 아이 모범생 만들기’를 주제로 선행 학습 방법론, 특목고 가는 법 등에 맞춰져 있었다면 최근에는 학부모 스스로 성장하려는 욕구가 반영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이야기다. 특히 아이가 하나인 30~40대 부모들 사이에서 수평적인 가정문화를 이루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 해결 및 의사결정법, 대화법 등에 대한 교육 수요가 높은 편이다.

김태훈 서울시 양천구청 교육지원과 주무관은 “최근 들어 학부모들이 비폭력대화법, 퍼실리테이터 양성 과정을 비롯해 교육?복지 정책 톺아보기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부모뿐 아니라 ‘젊은 조부모’들이 양육과 손주 교육에 적극 참여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 “문 ‘쾅’ 닫는 아이와 대화해보려 공부했죠” 학부모 이상은씨는 지난해 12월 양천구에서 운영하는 ‘학부모 창의대학’에 등록했다. ‘비폭력 대화로 자녀와 소통하기’ 과목을 수강 신청한 뒤 10강에 걸쳐 대화법을 익혔다. 이씨는 “아이의 사춘기를 지켜보면서, 부모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나의 지나간 10대 시절과 지금 우리 아이의 청소년기는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라며 “양천구평생학습관으로 매주 수업 들으러 나가면서, 오히려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도 안 하게 됐다. 스스로 배울 것을 찾고, 책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이니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자연스레 이야깃거리들이 생겼다”고 했다.

이씨는 수업을 통해 ‘관찰-느낌-욕구-부탁’의 단계 깨닫기, 비난하지 않는 말하기, 긍정문으로 묻기, 가족용 메모장과 같은 글로 표현해보기 등 대화와 소통의 방법론을 배운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비폭력대화법 강의를 들으며, 조급한 부모와 성장통을 겪는 자식 사이에도 상처주지 않는 말하기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아이의 좌절감을 토닥거려줄 수 있는 마음의 힘, 10대와 부모세대가 서로를 수용하며 견뎌내는 대화의 방식들을 몸과 마음으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울 양천혁신교육지구 사업의 하나인 학부모 창의대학은 지난 5일부터 오는 10월17일까지 매주 수요일 진행하고 있다.

3040 젊은 학부모들 ‘열공’ 시대 자발적 모임·지자체 등 통해 학부모 대학·학부모 스터디 활성화 비폭력대화법·퍼실리테이팅 배우며 성장통 겪는 아이들 이해하기 건전한 전래놀이 문화 알려주며 지역사회연계 등 공교육 현장 누비기도

지난 2017년 4월20일 전래놀이를 공부하는 ‘강강술래’ 학부모스터디 회원들이 재능기부 프로그램 시연회에 참가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김미정씨 제공

■ 스터디모임에서 공교육 현장 누비는 강사로 “이달에 연구할 전래놀이는 ‘고누’와 ‘실뜨기’입니다. 다들 어렸을 때 많이 해보셨죠?”

경기도 오산시에는 매월 격주 금요일 오전 10시마다 모이는 ’다섯 엄마들’이 있다. 이들은 학부모 스터디 모임인 ‘강강술래’에서 올해로 3년째 전래놀이를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전래놀이의 유래와 규칙, 실제 아이들과 놀이한 기록 등을 월 2회씩 모아둔 게 제법 쌓여 다들 놀이 전문가가 됐다.

보드게임 스터디를 만들어 활동하는 사례도 있다. 박선영씨는 7명으로 구성된 ‘날아라 슈퍼보드’(이하 ‘슈퍼보드’) 학부모 스터디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어른이 무슨 게임 스터디야?’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박씨는 ‘이 매력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10년 동안 가구회사에 다니며 조직 생활 이모저모를 경험했는데,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며 전략을 짜보면 ‘인생 축소판’이 따로 없더라고요. 아이들에게 함께 모여 할 수 있는 건전한 오락의 즐거움을 알려보겠다는 목표도 생겼어요.”

강강술래와 슈퍼보드는 최근 경기도 오산시 초?중학교 돌봄교실에 강의를 나간다. ‘창의인성 체험 한마당’과 같은 시 행사에도 부스를 내고 참여한다. 학부모들의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학습 모임이 ‘교육 나눔’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다.

특히 강강술래는 가족들이 모였을 때 부모·아이 할 것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게 마뜩찮아 시작한 공부 모임이다. 산가지, 사방치기, 구슬치기 등 부모세대에게 익숙한 전래놀이는 요즘 아이들에게도 통한다. 컴퓨터·모바일 게임처럼 아이들에게 ‘아이템’으로 즉각적인 보상을 주지는 않지만 그 ‘느림’이 재미 요소 가운데 하나다. 전래놀이는 시간과 공간을 내고, 규칙을 배워가며 진행하는 ‘슬로 플레이’(slow play)인 것이다. 스터디를 이끌고 있는 학부모 김미정씨는 “우리 고유의 놀이법을 통해 아이들에게 협동심과 사고력을 키워줄 수 있다.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면서 공교육 현장의 정규 교과목 연계 수업 현장에도 설 수 있어 무척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공부하는 학부모 모임들이 많아질수록 공교육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커진다. 학부모 시선이 담긴 교육 정책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 박춘홍 오산교육재단 학습지원팀장은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스터디 모임을 지원하면서, 집단지성을 통한 교육공동체 문화가 조성되고 있다”며 “‘학부모 스터디’라는 이름의 모임들이 8년째 이어지며 시 차원에서도 적극 독려하고 있다. 독서 토론, 인문?고전 분야부터 아동권리, 다문화 감수성 키우기 등 다양한 모임들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학부모 대학, 배움·참여의 마중물 되다 원인 분석-아이디어 발산-수렴-의사결정-액션 플랜. 서울 동작구에 사는 학부모 오혜영씨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에 걸쳐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부모 대학의 ‘진행촉진자(퍼실리테이터) 기본-심화 양성 과정’을 수료했다. 처음에는 아이들 성적 올려주는 학습법, 독서법 공부에 관심이 갔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갈수록 ‘주고받는 말’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됐다. 오씨는 실제 ‘소통을 촉진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 끌려 퍼실리테이터 공부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처음 만난 사람과의 네트워킹에서 ‘마음 열기’, ‘아이스 브레이킹’ 하는 방법, 참여자들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요약·정리하는 기술 등은 익숙한 듯 새로웠다.

학부모 대학의 퍼실리테이터 공부를 통해 오씨는 참여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매주 수업 들으며 토론과 스터디를 반복하다보니 강의실 밖에서도 네트워킹이 이뤄졌고, 이는 다양한 교육 정책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공부하는 학부모에서 참여하는 시민으로 네트워크가 확장된 것이다. 일반 학부모들이 지자체나 교육청 등에서 시행하는 정책, 제도에 접근하기에는 문턱이 높다는 편견도 깨졌다. 한번 ‘발을 들이니’ 교육청과 시청에서 하는 일들에 관심 가질수록 참여와 교육의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것을 체감했다. “서울학부모지원센터 등에서 작은 그룹을 만들어 의견을 내보고, 정책 담당관들과 소통하며 현장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보면서 뿌듯함을 느낍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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