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견인차가 경찰보다 먼저 온 이유..카센타 이실장의 '도청'

고성민 기자 2018. 9. 3. 11: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현장에 출동했는데, (경찰 순찰차보다) 견인차가 먼저 와있어요. 어찌 된 영문인지…"
"새벽에 출동하는데도 견인차가 순찰차를 스쳐 앞질러가요. 현장에 가보면 바로 그 차야. 사고 소식을 경찰보다 먼저 안 거지."

전북 지역 교통경찰 사이에서는 수년 전부터 이런 ‘견인차 괴담’이 떠돌았다. 112 신고를 접수하고 가보면 견인차가 ‘귀신’처럼 먼저 와있더라는 것. 지역 견인업계에서는 현장에 맨 먼저 도착한 견인차가 사고 차량을 끌어가는 것이 불문율이다. 경찰은 ‘일착 견인차’가 수상쩍었지만 이들을 잡아들일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전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경찰 무전을 도청해 부당이익을 챙긴 견인차 기사 17명을 검거했다. /그래픽=정다운

전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견인차 암수범죄(暗數犯罪·수사기관이 파악하지 못한 범죄)’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 6월부터였다. 견인차가 무슨 수로 경찰차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하는지부터 알아내기로 했다. 광수대 소속 형사 30여 명은 ‘맨땅에 헤딩’ 식으로 견인차 기사 하나하나를 만나는 탐문 수사에 돌입했다.

현장에서 만난 견인업자 하나가 형사에게 이런 소리를 했다. "걔들 때문에 먹고 살지를 못해. 경찰 무전을 도청(盜聽)한다니까요? 순찰차보다 먼저 가 있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더 빨리 갑니까."
"어떤 애들인데요?"(형사)
"어휴, 말 못 하지. 보복당할 수도 있어요."(제보 견인업자)

정상훈(45) 광수대 형사는 이때부터 끈질기게 제보자에게 달라붙었다. 점심시간마다 찾아가서 "밥이나 한끼 하자" 불러냈다. 이러기를 장장 4개월. 제보자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OO카센터 이민범(가명)영업실장 한번 파보세요. 그 사람이 경찰 무전을 엿듣는다고 하던데… 전주에서는 경찰 무전을 감청하는 무전기를 따로 팔기도 한답디다."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광수대는 문제의 카센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경찰차보다 더 빠른 견인차 기사’들도 압축해나갔다. 용의자들의 동선을 확보하는 데만 4~5개월이 걸렸다.

피의자들이 경찰 도청에 능숙한 상황이라, 이번 수사의 생명은 바로 ‘통신보안’에 있었다. 김현익(53) 전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은 "수사 정보가 새는 순간 끝"이라면서 "수사에 앞서 광수대 형사들의 입단속부터 철저히 했다"고 말했다.

전북청 광수대는 지난 2월 전북 익산에서 도청 견인기사 8명, 지난 5월 군산에서 도청 견인기사 9명을 잡아들였다. 현장에서 도청 무전기가 발견된 견인차 기사 4명은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나머지 13명은 "경찰 도청이라니 무슨 소리냐"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이들 차량 블랙박스에는 경찰의 무전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들에게 ‘도청 무전기’를 판매한 정모(74)씨 등 2명도 전파법 위반 혐의로 함께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견인차 기사 박모(51)씨 등 17명은 도청 무전기를 사들인 뒤, 도로에 대기하면서 경찰의 교통사고 무전을 기다렸다. 무전이 들리면 총알처럼 현장으로 달려가는 식. 경찰 무전 도청으로 이들은 한 달에 다섯 차례 이상을 경찰보다 먼저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견인차량들은 파손 차량을 카센터로 끌고 가면, 이들은 전체 수리비용의 30%를 공임으로 받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교통사고를 ‘OO’라는 무전 음어(陰語)로 달리 불렀다. 가령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OO발생’이라고 무전을 치면, 바로 이곳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는 의미다.

도청 견인기사들은 경찰의 암호인 OO의 뜻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OO가 무슨 뜻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의경(의무경찰)출신들에게 자문을 구했다"며 "다른 견인기사보다 먼저 도착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 경찰이 ‘무전 도청’ 견인차 기사들로부터 압수한 무전기(오른쪽)가 실제 작동되는지 확인하고 있다./전북지방경찰청 제공

서울, 부산, 인천 등 대도시 경찰들은 감청이 불가능한 디지털(TRS) 방식 무전기를 사용하지만, 일부 ‘지방경찰’들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무전을 주고받는다. 주파수를 맞추면 감청이 가능한 것이다. 견인차 박씨 등은 "도청 무전기 판매업자가 (경찰 무전)주파수를 알려줬다"고 진술했고, 도청 무전기 판매업자 정씨는 "인터넷에서 경찰 무전 주파수 정보를 입수했다"고 경찰에 말했다.

붙잡힌 견인차 기사 17명 가운데 3명은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무전기 감청에 ‘조직’이 개입했는지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