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사람' 대신 '경전'만 떠받드는 宗敎 근본주의자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18. 9. 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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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는 鐵路 보수 안 되고 베일 안 쓰면 화재 구조도 안 해
종교가 경전 字句에만 집착하면 위험에 빠지는 건 인간 존엄성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유대교 이야기다. 작년 11월 26일 이스라엘 집권 연정의 한 축인 유대교 정당 소속 보건장관이 갑자기 사임했다. 정부가 안식일에 철로 보수공사를 강행했다는 이유였다. 공사를 지시한 담당 장관이 나서서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한 최소한의 필수 작업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은 계명을 어겨 신성모독을 범했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간신히 수습은 되었지만 자칫 연정이 깨질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이슬람 이야기다. 2002년 3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한 여자중학교에서 화재가 일어나 15명의 어린 학생이 생명을 잃었다. 이 비극에는 믿기지 않는 논란이 뒤따랐다. 종교경찰이 베일을 걸치지 않고 뛰어나오는 학생들의 구조를 막았다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지는 못했지만 종교경찰 때문에 학생들이 희생당했다는 휴먼라이트워치 중동 책임자 한니 메갈리의 증언은 선명했다. 유혹하는 어떤 것도 드러내지 말라는 경전의 명령 때문에 여학생들이 생명을 잃은 사건으로 알려졌다.

기독교 이야기다. 홍수 이후 노아는 술 취한 자신을 부끄럽게 한 아들 함(Ham)을 저주한다. 창세기 9장의 이 저주는 단순한 옛날이야기로만 남지 않았다. 함의 후손이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가설과 맞물려, 노동력이 필요했던 유럽과 미국의 노예제도를 뒷받침하는 구실이 되었다. 경전이 인종 차별을 보증한 셈이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이러한 왜곡이야말로 신성모독이라고 한탄할 만큼 광범위하게 퍼졌었다. 일부 소수 교단은 여전히 이 구절에 근거한 백인우월주의 성향을 견지하고 있다.

물론 위의 사례는 각 종교의 주류(主流) 이야기는 아니다. 근본주의자들의 사례다. 그러나 여전히 억압의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지역에서 발원한 위의 세 종교는 모두 유일신을 믿고 텍스트인 경전을 중시한다. 유대교의 토라, 이슬람의 코란(꾸란) 그리고 기독교의 성서 모두 각 종교의 골간이자 생활 규범이다. 인간편의 탐색을 통해 형성된 경전이 아니라, 절대자로부터 내려받은 계시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더 엄위하게 지키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경전 준수에는 필연적인 고민이 뒤따른다. 오래전에 써졌기에 현대적 맥락, 즉 컨텍스트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한쪽은 문자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바뀐 세상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괴리가 갈등을 일으키는 셈이다. 안식일 준수를 위해 철로 공사를 중단하면 다음날 출근 마비뿐 아니라, 시민의 안전도 위협을 받게 된다. 엄격한 복식 규정을 지키려다 여성의 인권과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모순에 마주한다. 노아 시대의 텍스트가 인종을 차별하고 비참한 노예제를 옹호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자 자체가 아니다. 신(神)이 텍스트에 담은 정신이 본질이다. 종교의 핵심 가치는 인간의 존엄 아니던가? 안식일의 의미는 쉼을 통한 인간의 보호에 있다. 복식 규정의 원래 의도는 약자인 여성 보호였다. 노아의 저주가 차별을 정당화한 것은 텍스트의 전형적인 도구화다.

경전의 문자적 집착은 오히려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곤 한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컨텍스트에 맞게 텍스트의 본질, 즉 인간의 존엄을 되살리는 것이 경전 해석의 본령이다. 이 시대의 종교인들은 한 손에 경전을,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고 둘의 조화를 위해 부지런히 탐구해야 한다. 그들이 선지자다.

비단 종교뿐이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념과 가치 그리고 이념은 시대 변화에 따라 늘 새롭게 해석되고 변화해야 한다. 조류에 따라 배가 방향을 틀면 나침반의 자침 역시 정북과 정남을 찾아 쉴 새 없이 탐색한다. 자침이 고정된 나침반은 결코 길잡이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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