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시장 전전했던 '월평동 다둥이 엄마'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

이호기 2018. 8. 2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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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자살 사건' 한경닷컴 보도의 전말 (1)

[ 이호기 기자 ] 지난 24일 ‘최저임금 부담, 식당서 해고된 50대 여성 숨져’란 한경닷컴 기사가 당일 오전 11시42분부터 오후 6시27분까지 게재됐다 삭제된 뒤 논란이 일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사실을 허위로 가공했다는 ‘가짜뉴스’ 주장이 일부 인터넷 매체에서 제기되더니 급기야 기사의 팩트 및 삭제 배경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까지 공방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더 이상 이 논란이 커지기 전에 해당 기사를 취재했던 경위와 삭제 배경 등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두 꼭지 기사를 싣습니다. 첫번째 <①구직시장 전전했던 '월평동 다둥이 엄마'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는 한경닷컴에 올렸다 삭제한 기사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보강취재한 내용입니다. 두번째 <②한경은 ‘가짜뉴스’를 만들지 않았습니다>는 한경이 이 사건을 접하게 된 보도 배경과 취재 과정, 사실 여부 등을 밝힌 것입니다.

한국경제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깎아내릴 의도를 갖고 이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으며, 작성 당시에도 없던 사실을 만들어내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대전 월평동에 살던 고(故) 김모 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 자녀를 남겨둔 채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새 임대주택에 입주한 김 씨 막내딸(초3)이 할아버지 옆에서 설거지를 돕고 있다. /이호기 기자


①구직시장 전전했던 '월평동 다둥이 엄마'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

“엄마는 생전에 저희들 학교 보내고 나면 항상 일거리부터 알아보셨어요. 그런데 올들어 알바 자리 하나 못구하셨죠.”(김모 군·중1)

김 군 어머니인 김모 씨(35)는 지난달 10일 대전광역시 월평동의 한 다세대주택 단칸방에서 3남매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전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관할인 둔산경찰서는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이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자살 동기는 ‘생활고 비관’으로 기록됐다.

김 군은 아직도 그날 아침을 잊을 수 없다. 화장실 문이 잠겨 있었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혼자 문을 열려고 낑낑댔다. 역부족이었다. 근처에 사는 같은 반 친구들을 불러 함께 자물쇠를 땄다. 엄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다둥이 엄마’인 김 씨는 미혼모였다. 김 군이 엄마 성을 따른 이유다. 김 씨의 유년 시절도 불우했다. 서울에서 택시 운전을 했던 친정 아버지는 김 씨가 초등학교 시절 이혼했다. 홀로 김 씨를 키웠다. 김 씨는 가난했지만 심성만은 착했다. 김 씨 아버지는 “(김 씨가) 어렸을 때 밖에서 떠도는 개가 보이면 다 데려왔다”며 “좁은 집구석에서 20~30마리는 족히 키웠다”고 회고했다.

김 씨는 가난이 싫어 가출을 반복했다고 한다.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여기저기 떠돌다 13년 전 강원도 양구에서 남편을 만났다. 김 군 아래로 남동생(초6)과 여동생(초3)이 잇따라 태어났다. 남편은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김 씨는 아이들만 데리고 수 차례 이사를 다녔다. 경기 남양주, 전남 고흥, 광주, 강원 춘천 등을 거쳐 3년 전 대전에 왔다. ‘보증금 50만원짜리 월셋방’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는데 마침 대전 월평동에 저렴한 셋방이 몰려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김 씨를 포함한 네 식구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 18만원짜리 비좁은 원룸에서 살았다. 그 일대에서도 가장 낡은 빌라의 꼭대기층이었다. 아이들은 매일 가방이나 짐을 들고 3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렸다. 김 씨는 붙임성이 좋은 막내딸을 항상 옆에 끼고 잤다.

김 씨는 3남매를 부양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처음엔 집근처 갑천역 앞에서 붕어빵 노점상을 했다. 이후 전단지 배포, 액세서리 포장, 식당 종업원 등 일용직을 전전했다. 올해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일거리가 뚝 끊겼다. 주변에선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탓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군은 “엄마가 올해 일을 제대로 못하셔서 생활비 때문에 더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월평동 노인정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김 씨가 잘못되기 전까지 식당에 나가는 걸로 알고 있었다”며 “생활이 어려웠지만 내색은 잘 안했다”고 전했다. 인근 슈퍼 주인은 “애들 여럿 키우면서 월세 내려고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가 작년 말 일했던 한 식당의 여주인은 “얼마 전 김 씨가 다시 일할 수 없느냐고 전화를 걸어왔는데 우리도 여력이 없어 거절했다”며 “힘들어하는 목소리였다”고 전했다. 이 식당에선 점심 때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 명 쓰고 있지만, 손님이 많은 저녁에는 가족들이 모두 나와 일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김 씨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월 94만원의 수급비에만 기대야 했다. 그런데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김 군의 교복값으로만 30여만원이 나갔다. 초등학교 6학년인 김 군 남동생은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막내딸 우윳값도 연체됐다. 에어컨조차 없는 월셋방에서 3남매와 함께 폭염을 고스란히 감내했던 김 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3남매의 양육권을 갖게 된 아이들 할아버지는 교회와 학교 측의 도움을 얻어 모처에 새 거처를 구했다. 아이들도 최근 전학 절차를 마쳤다.

아이들 할아버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고 명랑하게 자라준 3남매가 고마울 따름”이라며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만큼 애들이 학업을 마칠 때까지 무슨 일이라도 해서 제대로 키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저임금 자살 사건' 한경닷컴 보도의 전말
②"한경은 '가짜뉴스'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08290890i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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