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기사 삭제와 죽은 기사 되살리기

이균성 총괄 에디터 2018. 8. 2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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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 칼럼] 이상한 비즈 모델

(지디넷코리아=이균성 총괄 에디터)데스킹을 하다보면 불가피하게 승인된 기사를 삭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엠바고 탓입니다. 엠바고(embargo)가 언론 용어로 쓰일 때는 ‘일정 시간까지 어떤 기사에 대하여 한시적으로 보도를 중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대개는 정부나 기업 등 정보 제공자가 요청하고 언론이 받아들여서 엠바고를 지키게 되지요. 가끔 소통 착오로 이를 깼을 때 기사를 삭제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하지요.

엠바고는 일종의 신사협정이고 특히 ‘출입기자단’ 제도가 강한 한국 언론계에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엠바고를 깨면 심할 경우 출입기자단에서 퇴출되는 등 여러 가지 불이익이 가해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들 지킵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엠바고도 많은 것 같기는 합니다. 정부나 기업이 단순 홍보용 자료를 내보내면서도 엠바고를 단 경우가 많고 언론은 그것마저 꼬박꼬박 지키고 있죠.

이런 경우 기사를 뺀다고 크게 문제될 건 없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다시 기사가 나가기 때문이죠. 기사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설사 특정 기사가 사라져도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큰 문제는 없습니다.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내용의 기사가 수십 개 존재하기 때문에 그 기사가 없다한들 독자에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기록돼야 할 일이 사장되는 것도 아닐 거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래의 경우는 어떨까요.

펜. 이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상관 없습니다(사진=씨넷)

지난 20일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제목은 이렇습니다. ‘00000가 언론에서 삭제된 기사를 보내드립니다.’ 메일에는 사라진 기사 20개의 목록이 있었습니다. 기사마다 키워드, 제목, 링크주소, 언론사, 입력시간 그리고 원문보기로 구성돼 있더군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링크주소를 클릭하면 현재 대부분 차단되어 접속되지 않을 거고 원문보기를 누르면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였죠.

20개 기사 중 단 하나를 빼곤 모두 기업을 비판하는 기사입니다. 특히 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CEO)를 비판하는 기사가 많았고, 누가 봐도 기업 이미지에 영향을 줄 만한 내용의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른 하나의 기사는 꽤 유명한 정치인에 관한 거였죠.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으로 당선된 사람입니다. 기사 대부분이 무엇인가를 고발하는 내용이었죠. 꽤 필요해 보이는 뉴스.

매일 하단에 ‘더보기’ 메뉴가 있어 누르고 들어갔지요. 더 많은 사라진 뉴스가 있더군요.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고 계속 사라진 뉴스를 모아가고 있는 듯했습니다. 홈페이지에 구독신청 코너가 있는 건 이해할 만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결제란이 있더군요. 눌러봤지요. 무료가 있고, 월 3만 원 짜리 ‘스탠다드 패키지’도 있더군요. 사라진 뉴스를 돈을 내고라도 보고자 하는 수요가 있다는 뜻일까요.

점점 재밌어지네요. 사이트 인터넷 주소를 봤습니다. 도메인 확장자는 '.io'입니다. 생소하군요. 네이버에 검색해봤죠. 위키백과에 따르면 ‘영국령 인도양 지역의 인터넷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이라는군요. 또 ‘영국령 인도양 지역’은 인도양에 있는 총 62개 섬이구요. 더 재밌는 건 결제는 현재 비트코인으로만 할 수 있다네요. 00000은 왜 해외에서 사라진 국내 뉴스를 보여주는 것일까요.

고발 기사는 사실 작성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들여야 하죠. 자칫하면 소송의 대상이 되니까요. 크로스체크를 통해 확실하게 팩트를 확인하고 보도할 공익 가치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야만 하죠. 그렇게 공들인 만큼 그런 기사가 사실 세상을 바꿉니다. 기사로서 가치가 높은 거죠. 그런 기사가 슬쩍 사라지고 그 사라진 기사를 다시 살려내니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이죠.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쓰였다 삭제되고 다시 캐내지는 게 과연 정의감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왜 굳이 해외 인터넷 주소를 쓰고 비트코인으로만 결제할까요. 그래서 정의감보다 비즈니스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것도 법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저작권법 위반 같은. 기사를 삭제한 언론사들이 가만있을 것 같지도 않구요. 언론을 상대로 이런 비즈니스가 나올 수 있다니 세상 참 요지경이네요.

대체 얼마나 많은 비판 기사가 쓰였다가 지워지기에 이런 비즈니스가 가능할까요. 언론들은 왜 그 많은 비판 기사를 삭제했을까요. 그리고 누가 이 사이트에 돈을 지불할까요. 00000이 고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혹시 비판 아이템을 찾아 헤매는 다른 언론이 그 고객이 되는 걸까요.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무네요. 참으로 잔머리 하나는 잘 굴리는 나라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균성 총괄 에디터(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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