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선 여전히 존경 받고 사랑 받는 선생님"..'국경 없는 교사회' 꿈꾸는 현직 교사모임 '아꿈선'

이유진 기자 2018. 8. 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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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글 캠퍼스 내 미팅룸에서 직접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현직 교사들의 모임인 ‘아.꿈.선’ 교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고은, 박보영, 한도윤, 노원준, 김선왕 교사.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6학년 2학기 1단원 생물과 우리생활 해캄(녹조 식물)과 짚신벌레 관찰하기 편을 시작하겠습니다.” 교실로 보이는 장소에서 하얀 실험가운을 입은 한 남성이 인사했다. “해캄을 채집하러 왔습니다.” 화면이 바뀌자 남자는 어느새 한 손엔 집게를, 다른 손엔 채집통을 들고 논두렁에 서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픈 이 동영상은 현직 교사 모임 ‘아꿈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아꿈선 초등 3분 과학’에 올라온 영상이다. 영상 속 남자는 전남 무안 현경초등학교 과학 전담 교사인 한도윤씨(33)다.

‘아꿈선’은 ‘아이들에게 꿈을 선물하기 위해 모인 현직 교사들의 모임’의 줄임말로, 서울·경기·전남·전북·광주·경남의 현직 교사들과 광주 교대생까지 총 29명이 활동 중이다. 초등학교 3~6학년별 교과 과정과 연계된 과학 영상을 제작하고 있으며, 유튜브를 통해 이를 무료 배포한다. 지난해 1월 개설된 유튜브 채널에는 200여 개의 영상이 올라와 있으며, 18일 기준 구독자 수는 1100명·총 동영상 조회수는 18만이다. 교과서 속 과학 개념을 실험이나 동요로 쉽게 풀어 아이들이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했다.

현직 교사 모임 ‘아꿈선’이 운영하는 ‘아꿈선 초등 3분 과학’ 유튜브 채널의 메인 화면. 유튜브 갈무리
전남 무안 현경초등학교 과학 전담 교사이자 ‘아꿈선’ 대표인 한도윤씨(33)가 해캄을 채집하기 위해 논두렁을 찾았다. 유튜브 갈무리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에서 아꿈선 대표인 한씨와 아꿈선 선생님 김선왕씨(28·광주 계수초), 김고은씨(28·순천 도사초), 노원준씨(30·광주 삼육초), 박보영(30·광주 삼육초)를 만났다.

아꿈선은 한씨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한씨가 일하는 무안의 현경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00명도 되지 않는다. 그는 “현경초는 그나마 무안에서 큰 학교에 속한다”고 했다. 2011년 전남 강진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맡은 담임 반 학생 수가 11명, 6명, 6명으로 모두 10명 안팎이었다. “과학 교육 콘텐츠는 대부분 유료였어요. 시골 학생들이 무료로 볼 수 있는 과학 실험 영상은 없을까. 궁금한 것이 있을 때 곧바로 찾아볼 수는 없을까. 선생님들이 직접 답해줄 수는 없을까. 이런 물음에서 아꿈선이 출발하게 됐죠.”

그렇게 뜻이 맞는 교사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다른 교사들의 고민도 같았기 때문이다. 6년차 교사 김선왕씨는 “다들 학습하고자 하는 의욕은 많은데 방법을 몰랐다. 지방엔 공부 자료도 적고, 교육 시설도 없어서 학생들이 좌절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한씨는 “과학이란 과목은 학습 성취감을 쌓아가면서 흥미를 느껴야 하는데, 시골 학생들은 이 성취를 느낄 대안이 없다”며 “아꿈선이 성취가 부족한 학생들이 집에서 스스로 학습하고 교실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대체재이자 플랫폼이 됐으면 했다”고 말했다.

현직 교사 모임 ‘아꿈선’이 운영하는 ‘아꿈선 초등 3분 과학’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간이 보온병 만들기’ 영상. 광주 계수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선왕씨(28)가 실험가운의 한쪽 옷깃이 올라간 채로 실험 재료를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아꿈선의 영상들은 어설픔이 매력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교사들이 대본 작성부터 영상촬영, 편집, 업로드까지 전 과정을 맡고 있다. 한씨는 “대본팀, 사전 실험팀, 실험팀, 영상편집팀, 수업 후기팀 이렇게 총 다섯 개 팀으로 이뤄져 있다”며 “대본을 만들어 실험 영상을 찍어 올리면 영상편집팀이 일괄적으로 편집을 해서 순차적으로 유튜브에 업로드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아니다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는 “처음엔 간단한 포토샵 작업 하나에도 4일이 걸렸다”며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편집 동영상을 보면서 독학을 했고, 지금은 영상 한 편을 찍어 업로드하는 데 6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담임 교사들이 대부분인 만큼 영상 제작은 주로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박보영씨는 “학생들이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데 그걸 다 기다려주고 남는 시간에 촬영을 한다”며 “경비 아저씨가 학교 문을 닫아야 하니 밤 10시쯤 되면 나가달라고 하시는데 그땐 촬영이 끝나지도 않을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선왕씨는 “경비 아저씨들이 저희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걱정을 많이 해주신다. 방학에 주로 촬영을 몰아서 하는데, ‘선생님들이 방학 때 쉬지도 못하고 어떡하냐’는 말씀을 많이 했다”고 했다.

아꿈선이 출범한 지 1년이 지나자 성과가 조금씩 나왔다. 한씨는 “아이들이 과학에 흥미를 갖고 적극적으로 댓글을 다는 학생들이 늘었다”며 “가르치는 학생들이 전남 학생과학발명품 경진대회 은상, 전국청소년과학탐구대회 은상을 수상하는 등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아꿈선의 영상을 챙겨보는 학생이 늘었다. 그는 “호주에 사는 한 학생이 저희 영상을 보고 과학실험을 공부한다고 댓글을 달았더라”며 “이용 통계를 보면 동남아, 이집트, 미국에도 구독자가 있더라”고 말했다.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글 캠퍼스 내 미팅룸에서 직접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현직 교사들의 모임인 ‘아.꿈.선’ 교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노원준, 김선왕, 박보영, 한도윤, 김고은 교사.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교사들은 학생들의 유튜브 이용에 대한 우려 섞인 사회적 시선에 대해 “양질의 콘텐츠를 많이 제공한다면 유튜브를 통해 얻을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 답했다. 김고은씨는 “학부모님들 중에 아이들이 집에서 유튜브를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실제로 학교 선생님이 영상에 나오고, 아이들이 실험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니 ‘감동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점차 늘었다”고 했다. 한씨는 “현재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장래희망 1위일 정도로 유튜브의 영향력이 크다”며 “무조건 막기 보다는 올바른 사용 방법을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좋은 콘텐츠를 추천한다면 아이들의 미디어 사용 역량을 길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경 없는 의사회처럼 국경 없는 교사회를 만드는 게 저희 최종 목표예요.” 아꿈선 교사들의 꿈은 확고했다. 노원준씨는 “과학은 전세계 공통의 언어”라면서 “유튜브는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용하는 플랫폼인 만큼 우리의 선한 영향력이 널리 뻗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광고 수익은 일절 내지 않고 무료 나눔, 봉사 개념으로 일하자고 선생님들끼리 약속했다”며 “배움에 목말라있는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의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교사의 지방 기피 문제가 연일 뉴스에 나오고, ‘공교육이 위기다, 교권이 위기다’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며 “하지만 시골에서 선생님은 여전히 존경 받고 사랑 받는 직업이다. 많은 선생님들이 이런 기회를 가져봤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 만큼 베풀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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