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알못도 좋아할 위스키 '글렌모렌지 시그넷'

취화선 2018. 8. 1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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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도 훌륭한데 병의 디자인까지 훌륭해서, 술장에 넣어놓고 보기만 해도 뿌듯해지는 위스키 글렌모렌지 시그넷. 다 먹으면 병을 처분하기 아까울 것 같다. /사진=글렌모렌지 디스틸러리 홈페이지 캡처
[술이 술술 인생이 술술-72] 위스키 글렌모렌지 시그넷을 마신 아내의 동공이 커졌다. "맛있네" 하고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위스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 좋다는 신호였다. 나는 시그넷을 가리키며 "이거 한 병 주세요"라고 기쁜 마음으로 공항 면세점의 글렌모렌지 시음 요원에게 말했다. 시음 요원은 웃으며 계산대로 뛰어갔다. 그 발걸음이 가벼웠다. 술을 팔게 돼 그 또한 기뻤을 것이다. 이 한 병을 팔면, 그에게는 얼마의 인센티브라도 주어지는 것일까. 짐작할 수 없지만 시그넷 덕분에 모두가 기뻤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시그넷은 특별한 위스키다. 250도 고열로 로스팅한 '초콜릿 몰트', 특별히 제작한 '디자이너 캐스크', 그리고 셰리 오크에서 추가 숙성 등 과정을 거쳐 독특한 풍미를 완성한다고 한다. 나는 아직 글렌모렌지 오리지널을 맛보지 못했다. 오리지널의 맛을 모르는데 시그넷 같은 일종의 변종을 사 마셔도 괜찮을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면세점에서 시그넷을 시음하고는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귀국해서 짐을 풀자마자 시그넷부터 찾았다. 면세점에서 한 모금 맛보고는 시그넷 박스를 관상하기만 해야 했으니, 나 같은 '술쟁이'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시간이었다. 묵직한 박스를 열었다. 안에는 아름다운 시그넷 병이 들어있었다. 진갈색 병은 풍만한 곡선을 그리며 완만하게 뻗어 나간다. 중앙에 글렌모렌지 문양과 제품명을 금빛 글씨로 새겼다. 주둥이와 뚜껑은 티타늄색 금속으로 마감했다. 손에 꼽을 만큼 멋진 술병이다.

술병이 아무리 멋지다 한들 맛이 없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제 내 집에서 마음 놓고 시그넷을 먹기로 한다. 잔에 따른 시그넷은 짙은 호박색을 띤다. 시그넷에서는 알싸한 알코올 기운과 함께 캐러멜, 바닐라 냄새가 풍겼다. 입에 머금자 신선한 민트향이 입안에서 휘발한다. 이내 상큼한 오렌지, 따뜻한 계피의 상반된 풍미가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진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기운이 훅 번진다. 동시에 화기(火氣)가 콧구멍으로 빠져나간다. 넘긴 뒤에는 짭조름하면서도 매콤한 맛과 에스프레소, 다크초콜릿 맛이 뒤섞여 올라온다. 쓰고 달고 짜고 매운 것이 아주 매력적인 피니시다. 풍미가 오래 입안에 남는다.

위스키와 초콜릿의 궁합이 좋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시그넷과 초콜릿의 궁합은 더 좋다. /사진 제공=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개성 강한 위스키들은 경험적으로 온더록스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시그넷은 별로였다. 매력적인 향들이 움츠러들거나 흩어지고, 민트향만 부각된다. 온더록스로 먹기에는 술이 아깝다. 추천하고 싶지 않다. 급히 온더록스 잔을 비우고 잔을 바꿨다. 글렌캐언 잔에 시그넷을 따랐다. 냉장고에서 생(生)초콜릿을 꺼냈다. 시그넷을 마셨다. 피니시를 충분히 음미하고 초콜릿을 한입 베어 물었다. 피니시와 초콜릿의 미묘한 조화를 즐기다 다시 한입 시그넷을 머금었다. 녹아내린 초콜릿과 시그넷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나는 기뻤다.

주류전문점에서 700㎖ 한 병에 약 35만원. 면세점가는 160달러 내외.

[취화선/drunkenhwa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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