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자전거 헬멧 쓰기를 거부한다 / 김규원

2018. 8. 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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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동차 운전자이고 보행자이며, 자전거 운전자이다.

자전거 운전자나 보행자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동차 운전자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교통사고를 피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 자동차 운전자들이 보행자, 자전거 운전자, 다른 자동차 운전자에게 양보 운전을 한다면 그날부터 교통사고 건수는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도로는 자동차 운전자뿐 아니라, 자전거 운전자나 보행자가 함께 세금을 내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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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규원
사회2 에디터

나는 자동차 운전자이고 보행자이며, 자전거 운전자이다. 출퇴근과 일상에서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사용할 때가 많다. 그래서 최근 자전거와 관련해 가장 뜨거운 이슈인 안전모(헬멧)에 대해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오는 9월28일부터 자전거 헬멧 쓰기가 법적 의무가 된다. 자전거 단체들은 모두 반대하고 있고, 나 역시 반대한다.

개정된 도로교통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전거 교통사고의 책임을 자전거 운전자에게 묻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전거 사고의 대부분은 자동차 운전자와 관련된 것이다.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2~2016년 일어난 1만8105건의 자전거 사고 가운데 76.8%인 1만3912건이 자전거 대 자동차 사고였다. 또 자전거 사고 사망자 143명 가운데 83.2%인 119명이 자동차에 희생됐다. 이 통계가 맞는다면 국회와 행정안전부, 경찰청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제재를 가한 셈이다.

본질적으로 도로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심각하게 다치게 하는 일은 자동차 운전자만 할 수 있다. 자전거가 서로 부딪치거나, 자전거가 보행자와 부딪쳐 인명을 살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더욱이 자전거 운전자가 자동차 운전자를 살상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피해자가 누구든 교통사고 가해자의 대부분은 자동차 운전자다. 자전거 운전자나 보행자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동차 운전자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교통사고를 피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교통사고 피해자를 줄이는 일은 의외로 쉽다. 자동차 운전자에게 더 강력한 주의를 요구하고 더 엄중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 예를 들어 경찰이 자동차 운전자들의 음주, 과속, 난폭 운전을 강력히 단속한다면 도로에서의 인명 살상은 그날부터 크게 줄어들 것이다. 또 자동차 운전자들이 보행자, 자전거 운전자, 다른 자동차 운전자에게 양보 운전을 한다면 그날부터 교통사고 건수는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국회와 행정안전부, 경찰청은 오히려 자전거 운전자에게 칼을 빼들었다. 한마디로 “알아서 몸조심하라”는 것이다. 앞으로는 보행자들에게도 ‘교통사고 때 머리 부상을 줄이기 위해’ 헬멧을 쓰라고 요구할지 모르겠다.

정부가 늘어나는 자전거 운전자들을 진정으로 보호하려면 헬멧 대신 이런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먼저 모든 도로의 맨 바깥 차로를 자전거 전용이나 우선 도로로 지정해야 한다. 자전거 운전자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차로가 필요하다. 둘째로 차도의 너비를 줄여야 한다. 불필요하게 넓은 차도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과속, 난폭 운전을 부추긴다. 셋째로 일반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50㎞ 이하로 낮춰야 한다. 사실 시속 50㎞도 사고 때는 치명적이다.

도로교통법은 자전거도 차량으로 보고 차도의 맨 바깥 차로로 다니게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버스 전용 차로를 제외한 모든 차도는 자동차 운전자에게 독점돼 있다. 도로는 자동차 운전자뿐 아니라, 자전거 운전자나 보행자가 함께 세금을 내서 만들었다. 그러나 도로에서 자전거 운전자와 보행자의 권리는 제한되거나 박탈돼 있다.

국회와 행정안전부, 경찰청에 요구한다. 하루빨리 ‘탁상 입법’인 이 엉터리 도로교통법을 재개정하라. 자전거 헬멧 쓰기 의무화 조항을 폐지하라. 자전거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자동차 운전자와 동등한 도로 이용권을 보장하라. 교통사고의 주범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라. 나는 이 엉터리 도로교통법에 항의하는 뜻으로 9월28일 이후에도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쓰지 않을 것이다.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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