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이 '1급 발암물질'?..학부모 불안 조장하는 환경부

2018. 7. 2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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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암연구기관 발암물질 분류 '1그룹'을 '1급'으로 홍보
석면 학교 학부모 "1개 노출돼도 큰일" 과도한 불안 초래
위해도 고려한 합리적 학교 석면 대책 어렵게 하는 '자충수'

[한겨레]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소개한 환경부 석면관리종합정보망

”석면은 한 개라도 몸에 들어갔을 때, 그건 감당이 되지 않는 부분이잖아요.” 최근 학교 석면 문제를 주제로 열린 행사에 참석했던 한 학부모의 말이다. 이런 학부모에게 어린 아들딸이 학교에서 석면이 함유된 천정재를 머리에 이고 공부하는 상황은 불안을 넘어 공포일 수밖에 없다.

석면이 위험한 물질인 것은 맞다. 호흡기를 통해 폐 속에 들어온 석면이 배출되지 않고 폐암과 불치의 악성중피종 등의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하지만 이 학부모가 우려하듯이 하나만 몸에 들어가도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까지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석면조사자와 석면해체·제거 관리·감독자, 석면건축물 안전관리인 등을 교육하는 화학안전보건협회 김정만 회장(동아대의대 명예교수)은 “석면이 유해한 물질은 맞지만 과도하게 알려졌다. 백 퍼센트 석면 먼지를 마시는 것과 석면 함유 물질에 섞여 있는 먼지를 마시는 것을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농도 개념, 기준치 개념, 사람이 유해물질을 방어할 수 있는 기전 이런 것을 복합적으로 생각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침묵의 살인자 석면>의 저자인 안종주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사회안전소통센터장도 “석면의 법적 기준이 공기 1㏄에 0.01개라는 것은 교실 크기 공간에 몇백만개의 석면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석면이 워낙 많이 쓰여 거의 모든 사람들 폐 속에 이미 수십 수백만개 들어있는데, 석면의 위해성을 너무 과도하게 보면 석면이 한 개라도 몸에 들어가면 나중에 암이 생길 수 있다고 잘못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민들이 석면에 과도한 불안감을 갖도록 유도하는 잘못된 유해물질 정보의 주요 발신지는 정부다.

환경부는 국민들에게 석면 관련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공식 누리집인 ‘석면관리종합정보망’(https://asbestos.me.go.kr/user/main.do)에서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소개하고 있다. 언론에 제공하는 석면 관련 보도자료에서도 마찬가지다. ‘1급 발암물질’이라는 표현은 하위 등급의 발암물질들이 있고, 석면이 이런 하위 등급 발암물질들보다 발암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소개한 환경부 보도자료

하지만 ‘1급 발암물질’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기관(IARC)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1000여개 물질의 인간에 대한 발암성 여부를 조사해 발암물질( Carcinogenic to humans) 을 ‘그룹 1’,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 Probably carcinogenic to humans 및 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을 ‘그룹 2A’와 ‘그룹 2B’, 발암성을 분류할 수 없는 물질(Not classifiable as to its carcinogenicity to humans)을 ‘그룹 3’, 발암 가능성이 없는 물질(Probably not carcinogenic to humans)을 ‘그룹 4’로 구분하고 있다.

석면은 이 가운데 라돈, 경유차배기가스 등과 함께 ‘그룹 1’으로 분류된 120개 물질 가운데 하나다. 여러 등급의 발암물질 가운데 가장 강력한 ‘1급 발암물질’이 아니라 단순한 ‘발암물질’일 뿐이란 얘기다. ‘그룹 2A’를 포함한 나머지 그룹은 아직 확실한 발암물질이 아니거나 발암 가능성이 없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국제암연구기관의 구분에 따르자면 석면은 ‘발암물질’이나 ‘1군(그룹) 발암물질’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환경부가 굳이 ‘1급 발암물질’로 표현하는 것은 학부모들에게 석면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결국 과학적인 위해성 평가에 바탕을 둔 합리적 학교 석면 대책을 어렵게 만드는 ‘자충수’인 셈이다.

안종주 센터장은 “학부모들이 석면에 무지해서도 안 되지만 과도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도 숲을 바라보는 합리적인 위험관리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짚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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