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미 성남시장 "한 끼에 6천원 백반집, 소박한 이곳이 내 마음의 고향"

김경도,지홍구 2018. 7. 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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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자체장의 맛과 멋 ◆

은수미 성남시장이 12일 오전 7시 30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지하철 8호선 단대오거리역 근처에 있는 단골 식당 `엄마밥집` 에서 매생이탕을 아침식사로 먹으며 대화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지난 2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너도나도 "내 고장 주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들이 힘을 줘 강조하는 스토리는 뭘까. 무슨 철학으로 어떻게 정책을 만들어 펼쳐 나가고, 어떻게 서민들의 삶을 어루만져줄 것인가. 매일경제는 그들이 가장 편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곳'에서 그런 지자체장들의 의지를 한 꺼풀 벗겨 들어보고 그 도시의 미래를 그려봤다. 은수미 경기도 성남시장(55)이 그 첫 테이프를 끊었다.

"아유, 우리 시장님 오셨네. 이제야 축하드립니다."

12일 오전 7시 10분, 경기도 성남시 중앙동에 있는 '엄마밥집' 음식점. 이른 아침 출근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던 주인 이혜자 씨(63)와 남편 탁종근 씨(67)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출입문 앞으로 달려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은 은수미 성남시장(55). 은 시장과 이씨 부부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스킨십을 했다. 선거캠프를 다른 지역에 차려 6·13 지방선거 기간 식당을 찾지 못했다는 은 시장은 "이제야 내 집에 온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은 시장이 찾은 '엄마밥집'은 역세권 골목에 있지만 4인용 좌식 테이블 6개가 꽉 찰 정도로 비좁다. 메뉴 구성도 매생이탕, 김치찌개 등 일반 식당과 다를 바 없어 '한턱 낼게'라며 분위기를 낼 곳은 아니었다. '허름' '소박' 그 자체다. 재선 배지를 위해 중원구에 사무실을 열고 돌아다니던 중 은 시장은 사무실과 가까운 '엄마밥집'을 발견했다. "초년생 여성 정치인인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면서 "이후 매일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이 식당으로 모신다"고 했다. "제겐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모처럼 들른 탓인지 식당 곳곳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손뼉을 친다. 주인 부부의 손녀인 김나혜 양(9)이 그린 그림을 보고서다. 6세 때 만난 김양은 식사 중인 은 시장을 모델 삼아 인물 스케치를 하곤 했다. 은 시장이 의원 시절 작성한 의정보고서 활동 사진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김양이다. "취학 전 나혜는 식당을 자주 찾곤 했다. 밥을 먹으러 오면 항상 나혜가 있어 같이 놀곤 했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매생이탕에 5가지가 넘는 밑반찬. 모두 합쳐 6000원이라니 입이 딱 벌어진다. 밑반찬은 김치 빼고 매일 바뀐다고 한다. 단골손님이 매일 찾는 이유가 있다.

은 시장은 6·13 지방선거에서 57.6%를 득표하며 민선 7기 성남시장이 됐다. 인구 100만 거대 도시를 4년 동안 이끌 성남시 첫 여성 시장이자 전국 226개 기초단체장 중 8명에 불과한 여성 당선인 중 한 명이다. 특히 100만 도시 중 여성 단체장 탄생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남시 면적은 141.65㎢로 서울시 면적(605.21㎢)의 5분의 1가량 된다. 인구 96만명이 거주하며 올해 예산 규모만 해도 3조423억원에 달한다. 재정자립도는 작년 말 기준 63.5%로 경기도 3위, 전국 5위권이다.

7월 취임해 12일째 시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은 시장은 성남시 업무를 상당 부분 파악한 상태였다. 그는 다른 당선인들과 달리 스스로 성남시장 인수위원장이 됐다. "제3자를 인수위원장으로 선임하면 시장 취임 후에도 공무원들이 시장, 인수위원장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업무를 빨리 파악하고 공무원 업무도 줄이기 위해 인수위원장을 직접 맡았다"고 했다. 그 때문일까. 취임한 지 열흘도 안 돼 그는 기획재정부로 가 정부가 삭감했던 고도정수장 처리 예산 144억원을 따왔다.

그 역시 여느 단체장처럼 지역경제,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결은 많이 다르다. 그는 "산업혁명 시대 기업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가정신은 달라져야 한다"면서 "이제는 기업이 지역에 환류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먼저 생각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가 구상 중인 '아시아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이다. '아시아실리콘밸리'는 지난해 문을 연 프랑스 파리 외곽의 세계 최대 규모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센터 '스테이션 F'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은 시장은 "기업들에 '스테이션 F'와 같은 완전히 열린 투자를 적극 제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후 산업단지로 인정된 중원 하이테크밸리에 1조원 정도 민간 투자를 받아 스타트업 캠퍼스 등을 만들고 여기서 만들어진 아이디어를 기존 제조업 기반, 판교테크로 밸리 등과 연계하면 대규모 스타트업 조성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은 시장은 바로 직전 성남시장을 지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는 다른 복지 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가장 차별화될 정책으로 '아동 정책'을 들었다. 그는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을 더 확충하고 조례를 개정해 민간·국공립 구분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0~12세 돌봄 정책을 확대해 여성·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동시에 여성의 경력 단절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노동전문가답게 '주 52시간 근무제'를 거들기도 했다. 그는 "노동법이 제대로 중심을 잡아주면 유연하게 풀 수 있으나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관련 법을 안 지키는 것을 최고로 아는 경향이 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인권도 확립돼 있지 않기 때문에 넘어야 할 단계라고 본다"면서 "(노동법이 중심을 잡을 때까지)불편하겠지만 견뎌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질문과 대답이 오가며 식사 속도가 느려졌다. 가볍게 "성남이 강남급 아니냐"는 농을 던졌다. 무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산업혁명이 엄청난 부를 만들어 낸 것 같지만 그만큼 양극화의 그늘도 더 커졌다. 성남도 마찬가지다. 외국은 기존 원도심 재생과 연계해 신도시를 만들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성남시는 원도심인 중원구·수정구에 60만명이 산다. 분당신도시를 만들면서 연계가 없었다. 같은 도시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 산업·도시 발전의 현실을 극복하는 데 힘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은 시장은 부자 동네인 판교와 분당, 위례신도시 등과 상대적으로 가난한 원도심 지역 간 '링크'가 잘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중원구 2·3공단 지역을 도심형 첨단 지역 제조업 거점의 '하이테크 밸리 권역'으로 선정해 부가가치를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성남시 첫 여성 시장이란 무게감이 궁금해졌다. 은 시장은 "인구 100만 도시의 시장으로 여성이 처음 당선되다 보니 불안해 하는 시민이 있는 것을 잘 안다. 앞으로 여성 후배들이 시장, 도지사, 대통령을 꿈꿀 수 있도록 제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기 4년을 20년처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스스로 15년 주기로 인생의 판이 바뀌어 왔다고 말해왔다.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선 20~35세는 운동권 학생이자 실천가로, 36~50세는 연구자로, 50세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살고 있다. 55세로 보기 힘든 동안이지만 노동운동 시절 안기부 고문 후유증으로 장 절제 수술, 폐렴, 폐결핵, 종양, 밀실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은 시장은 "35세까지 수감생활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와 남은 생은 덤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지금 이 순간 태어난 아이들이 앞으로 십수 년 뒤에 현재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정치를 할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196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 신림초, 신림여중, 미림여고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해병대 장교인 부친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지만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92년 초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수감돼 6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안기부 고문 후유증으로 폐렴, 폐결핵, 종양 등 복합 질환에 걸려 고생했다. 민주당 19대 국회의원(비례)으로 활동했고 성남시장 출마 직전까지 문재인정부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을 지냈다.

[만난 사람 = 김경도 전국취재부장 / 성남 =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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