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학교](5)너도밤나무반 친구들..'특수학교'라고 하자 반대를 멈췄다

글래스고|글 남지원·사진 배동미 기자 2018. 7. 5. 15: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5월29일 아침, 영국 글래스고의 헤이즐우드 학교에서 보조기구를 착용한 7살 윌리엄이 선생님과 함께 걷기 연습을 하고 있다. 윌리엄은 한발 한발 떼다가 힘에 부치자 고개를 숙이곤 입으로 똑딱 하는 소리를 냈다. 목이 마르다는 의사 표시다.

스코틀랜드 날씨는 변덕스럽고 을씨년스럽기로 유명하지만 5월의 마지막 주는 내내 햇살이 좋았다. 호텔 직원부터 버스 기사까지, 마주치는 사람마다 “오늘 날씨 정말 좋다”며 인사를 건넸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 글래스고,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벨라하우스톤 공원의 나무와 잔디 위로 봄날 오전의 햇살이 부서졌다. 드넓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공원을 나서면 울창한 나무 사이로 지붕이 야트막하고 몸체가 구불구불하게 뻗은 건물이 나타난다. 이곳의 이름은 헤이즐우드 학교. 2세부터 18세까지의 장애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다.

빨간 카디건에 까만 바지를 입은 15살 리아가 학교 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눈을 꼭 감고, 오른손에 든 지팡이로는 발이 움직이는 쪽 땅을 더듬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리아가 바깥에서 걷는 것을 지도해주는 이동 전담 선생님 샤론이 반 발짝 뒤를 따르며 끊임없이 속삭였다. “도로 쪽으로 나가보자. 차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생각해볼까?” “되도록 길 가운데로 걷도록 연습해보자.” 리아는 귀로 소리를 듣고 지팡이로 땅의 굴곡을 느껴가며 위치를 가늠해야 했지만 한 번도 길을 잃거나 휘청이지 않았다. 리아가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라는 사실을 순간순간 잊어버릴 정도였다.

리아는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지만 지팡이만 있으면 꽤 능숙하게 걸어다닌다. 이날 리아가 스쿨버스에서 내린 것은 오전 8시50분. 스쿨버스는 휠체어를 내릴 수 있도록 돼 있고 보조교사들도 버스에 함께 타지만 리아는 혼자 지팡이로 계단을 짚어가며 가뿐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 코르크 길을 따라 걷다 학교는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계단이나 턱이 없는 것은 기본이다. 학교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를 가득 메운 짙은 베이지색 코르크 벽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눈을 감고 손이 자연스럽게 닿는 위치를 더듬어보면 가로로 길게 홈이 파여 있다. 벽의 가로줄이 어느 순간 끊겼다면, 바로 옆에 교실이 있다는 뜻이다. 바닥을 지팡이로 더듬으면 교실 방향으로 안내해주는 가로줄을 느낄 수 있다.

“학교에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코르크 길을 따라 걷지만, 학교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지팡이만 있으면 쉽게 다닐 수 있어요.” 담임교사이자 이 학교의 부교감인 폴이 설명했다. 리아는 이제 학교 안에서는 지팡이 없이도 교실까지 찾아갈 수 있다. 현관을 지나 왼쪽 세 번째 교실이 리아가 다니는 너도밤나무반이다. 교실 문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복도가 약간 넓어지는데, 좁은 공간에서 넓은 공간으로 이동할 때 발소리의 울림이 달라진다는 것만 알면 찾아갈 수 있다.

리아는 세 번째로 복도가 넓어지는 지점에서 정확히 좌회전한 뒤 지팡이를 교실 앞에 세워두고 문을 열었다.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들은 다른 감각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 부족한 감각을 보완한다.

지난 5월30일 오전 헤이즐우드 학교 너도밤나무반 리아(오른쪽)가 걷기 전담 교사 샤론과 함께 학교 밖에서 지팡이를 이용해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자, 모두들 대답해 봐요. 어젯밤에는 뭘 했나요?” 선생님이 묻자 리아와 아이들이 앞다퉈 대답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췄어요. 맛있는 걸 먹었고요.” “네가 뭘 먹었는지 알겠구나. 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치킨커리를 먹었지?” 폴이 학교 일을 보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보조교사 헬렌과 린지, 아담이 임시교사와 함께 아이들을 챙겼다.

리아와 마찬가지로 눈이 보이지 않는 스코트(14)와 케이틀린(15), 귀가 들리지 않아 수화로 대화하는 캐머런(13), 지체장애로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베스(15), 자폐증이 있는 케이티(15)가 한 반에서 공부한다. 캐머런도 어제 한 일을 수화로 말했다. “저는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았고 샤워도 했어요.” 캐머런의 말을 가장 잘 알아듣는 것은 청각장애가 있는 보조교사 아담이다. 스코트도 질세라 “저는 집에만 있었어요. 화장지를 아무데나 버려서 엄마한테 혼이 났어요”라며 한 마디 거들었다.

■ 너도밤나무반 아이들 매일 아이들은 등교하면 학교 한가운데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모여 잠시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교실로 들어온다. 오늘은 몇 월 몇 일 무슨 요일인지,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일과를 시작한다. 한 반 아이들은 6명씩이고 보통 교사 1명과 보조교사 2~3명이 함께 아이들을 챙긴다. 장애의 유형도, 필요한 것도 제각각인 아이들을 교사 한두 명이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교생이 59명인 학교에 교사와 보조교사, 돌봄전담 직원, 요리사와 스쿨버스 기사 등 직원만 60명이다. 간호사와 음악교사같이 외부에서 초빙되는 이들은 뺀 숫자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스스로 하도록 유도했다. “스코트,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궁금하지 않아? 식당에 가서 점심 메뉴가 뭔지 보고 올래?” 스코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교실 밖으로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오늘 점심은 토스트와 로스트치킨이에요.” 닭고기를 좋아하는 리아가 활짝 웃더니 “리아는 로스트치킨을 먹을 거야!”라고 말했다. 리아는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하는 버릇이 있다.

케이틀린이 학교 복도를 걷고 있다. 케이틀린은 빛과 어둠을 구분할 정도의 시력을 갖고 있지만 혼자서 능숙하게 교실을 찾아간다. 케이틀린 옆으로 코르크 벽이 보인다.

화창한 날씨에 선생님이 뒷마당으로 통하는 교실 문을 열어줬다. 비슷한 장애가 있어도 아이들 성격은 저마다 다르다. 활달하고 말이 많은 리아에 비해 스코트는 겁이 많고 조용한 편이다. “그네가 비어 있다”는 소리에 리아가 빠른 걸음으로 그네로 향하는 동안, 스코트는 문 앞 의자에 앉아 조용히 햇볕을 쪼였다. 케이틀린은 열다섯 살이지만 몸집은 어린아이처럼 작고 발달도 느리다.

캐머런은 뒷마당 놀이터에서 케이틀린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두 아이는 놀이터 한켠의 통나무집 안에서 마주보고 앉아있는 걸 좋아한다. 캐머런은 똑똑하고 독립적이다. 점심시간에도 다른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캐머런은 교실에서 커다란 주사기와 튜브, 플라스틱 병에 든 유동식을 들고 카페테리아로 나와 친구들 옆에 앉았다. 감각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한두 가지 신체적 장애를 더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입으로 섭취하는 음식으로 영양공급을 받을 수 없는 캐머런 같은 아이들에게는 위에 직접 연결된 피딩튜브로 음식을 넣어줘야 한다. 200㎖정도 되는 불투명한 우유병 2개에 담긴 유동식이 오늘의 점심식사다.

캐머런이 스스로 상의를 걷고 피딩튜브를 연결한 뒤 주사기에 유동식을 부어넣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보조교사 헬렌이 다가와 귀띔했다. “캐머런은 배를 드러내고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시간에는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다가가는 걸 부끄러워하고 싫어해요. 평소에 순하고 착한 아이지만 지금은 가까이 가면 때릴 수도 있으니 물러서세요.” 휠체어에 누워 있는 베스에게는 선생님이 피딩튜브로 음식을 넣어준다. 한참 동안 그네를 타다가 학교 밖 산책까지 하고 온 리아는 배가 고팠는지 순식간에 로스트치킨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 “리아 지금 이케아 가요!” 다음날 오후. 점심식사를 마친 너도밤나무반 아이들이 겉옷을 챙겨입고 현관문 앞 의자에 쪼르르 앉았다. 어디에 가냐고 묻자 리아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리아 지금 이케아 가요!”

너도밤나무반 아이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이면 학교 밖에 나가서 수업을 한다. 그날그날 배우는 내용에 따라 박물관에 가기도 하고, 공원에 가기도 한다. 오늘은 쇼핑몰 체험을 하는 날이다. 헤이즐우드 학교로 교생실습을 나왔다가 곧 떠나는 페이지에게 선물할 액자를 사오는 게 오늘 쇼핑의 목적이다. 아이들과 보조교사들이 스쿨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출발했다. 캐머런이 지팡이를 짚은 리아와 스코트의 손을 번갈아 잡아주며 버스에 타는 걸 도왔다.

너도밤나무반 아이들이 교실에 모여 전날 밤 뭘 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교사들은 모든 대화를 수화로 통역한다. 청각장애, 언어장애, 시각장애 등 아이들이 가진 증상은 다양하다.

가구와 생활용품을 파는 이케아는 학교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선생님과 몇 번 와본 곳이지만 대형 쇼핑몰은 익숙해지기 어려운 공간이다.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고가 터졌다. 선생님을 따라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쇼핑몰 입구를 찾아가던 리아가 인도 끝에서 순간 발을 헛디뎌 휘청했다. 아주 낮은 턱도 시각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위험하다.

학교 안에서는 어디서나 자신있게 걷던 리아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짧은 비명을 지르더니 양손으로 귀를 막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넘어질 뻔 하자 깜짝 놀란 것이다. 폴이 얼른 달려가서 아이를 다독였다. “괜찮아. 걷다가 실수한 거야. 우리 어디서 넘어졌는지 찾아볼까?”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던 리아가 용기를 내서 지팡이로 넘어진 곳을 더듬어본다. “지팡이를 잘 써야 넘어지지 않아. 지금부터는 지팡이를 땅 위에서 잘 움직이며 걸어보자.” 담임교사 폴과 보조교사 피오나에게 번갈아 한참을 안겨 있던 리아가 지팡이를 반원형으로 움직이면서 용기를 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쇼핑은 순탄하지 않았다. 케이티는 시시때때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빨리 차로 돌아가서 유튜브로 듣던 음악을 계속 듣고 싶다는 거였다. “안 돼, 케이티. 지금 우리는 쇼핑을 하러 왔잖아. 액자를 사고 나서 차로 돌아가면 다시 음악을 듣게 해 줄게.” 피오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헤이즐우드에서 교사들은 아이들을 오냐오냐 하면서 키우지만은 않는다. 바깥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바닥에 주저앉거나 혼자 돌아다니는 일이 없도록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킬 만큼 강하지 않고, 학교를 졸업하면 바깥 세상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만 한다.

평일 오후였지만 쇼핑몰은 꽤나 혼잡했다. 휠체어에 탄 아이 하나, 지팡이를 짚은 아이 셋, 시시때때로 주저앉는 아이 하나, 그리고 교사들과 취재진의 행렬은 붐비는 쇼핑몰에서 돌아다니기에는 대가족이었다. 하지만 30분 정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매장을 구경하고 필요한 물건을 고르는 동안, 불편한 기색을 보이거나 아이들을 꺼리는 쇼핑객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지팡이를 짚은 아이들이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길을 터줬고, 아이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줬다.

놀이 시간, 캐머런(왼쪽)과 케이틀린(오른쪽)이 정원 오두막 안에서 놀고 있다. 오두막 안에 흔들면 소리가 나는 페트병과 만지면 다양한 촉감이 느껴지는 물건들이 놓여 있다.

폴에게 물어봤다. “이곳 사람들은 장애아에 대한 편견이 없나요?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서 차별을 받거나 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필요는 없나요?” 폴은 “편견은 사실 크지 않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적었지만, 지금은 그럴 기회가 많아요. 아이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친절하고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해요. 방법을 모를 뿐이죠.”

■ ‘홀로서기’를 돕는 건축 영국에서 신체장애나 정신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일반학교와 특수학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일반학교에서도 장애아들에게 알맞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하고 필요한 시설을 설치해줘야 하지만, 헤이즐우드처럼 처음부터 배리어프리(장애물이 없는) 학교로 설계된 곳은 많지 않다. 코르크 길 뿐 아니라 바깥으로 나가는 길 주변에는 벽에 타일을 붙여 소재를 다르게 했다. 벽을 만지면서 걸으면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어디 쯤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벽을 만져보거나 약한 시력을 뚫고 들어오는 빛을 가늠하는 정도만으로 위치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갖고 혼자서 학교를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이다.

벽에는 되도록 아무것도 붙이지 않았고, 복도와 벽과 출입문을 모두 강렬하게 대비되는 보색으로 칠했다. 시력이 약한 아이들이 색을 조금이라도 구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자연채광을 극대화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눈이 약한 아이들에게 심한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교실은 직사광선을 피한 북향으로 창문을 냈다. 빛이 아래로 떨어지는 조명과 위로 올라가는 조명을 적절히 섞어 그림자가 덜 생기도록 배려했다.

학교는 아이들의 감각을 깨우는 시설로 가득하다. ‘감각의 방’에 들어서자 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가인 ‘렛잇고’가 흘러나왔다. 깜깜한 방 안에는 누르면 소리가 나고 빛이 흘러나오는 감각판, 소리가 나는 은박지, 거울로 만들어진 공간이 들어 있다. 아이들이 노는 뒷마당에도 곳곳에 바스락거리는 모빌이나 종이 장식품이 매달려 있다. 아이들이 움직이며 소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케아로 현장학습을 간 너도밤나무반 친구들. 캐머런이 계산을 척척 끝낸 뒤 교사인 아담에게 장난을 치고 있다.

한쪽에는 물 온도가 언제나 36도로 유지되는 수영장이 있다. 지체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휠체어를 매달 수 있는 리프트 시설도 갖췄다. 트램플린으로 재활훈련을 하는 방, 마사지를 받는 교실도 있다. 화장실은 모두 남녀 구분이 없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공립학교라 학비는 무료다.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시의회가 부담한다. 글래스고 출신이 아닌 아이들의 학비는 해당 도시에서 부담한다. 특별한 치료나 마사지가 필요할 때만 약간의 본인 부담금을 낸다.

헤이즐우드 학교는 2007년 지어졌다. 원래 이 동네 가까이에 특수학교 2곳이 있었는데, 시설이 너무 낡은데다 환경도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글래스고 시의회는 학교를 새로 짓기로 하고 건축가를 공모했다. 시내에 고급 호텔을 짓고 건축상까지 받은 유명 건축가 앨런 던롭이 선정됐다. 유명인이 학교를 짓겠다고 나서자 모두들 놀랐다고 한다.

던롭은 설계 과정에서 감각장애가 있는 아이들, 특수학교 교사와 직원들, 전문가들을 만나가며 의견을 들었다. 직접 안대를 쓰고 복도를 다녀보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는 길에 타일을 설치한다든지, 코르크벽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안내한다든지 하는 아이디어는 이런 과정을 거쳐 나왔다. “독립심을 길러주는 동시에 아이들에게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감각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무섭고 벅차거든요.” 운동복 차림으로 학교를 안내하러 나선 교감이 말했다. 장애아들의 의견을 반영해 설계하는 데만 18개월이 걸린 이 학교는 세계의 여러 건축단체와 매체에서 뛰어난 학교 건축물로 선정됐다.

■ “반대했죠. 특수학교인 줄 몰라서” 학교 근처에는 서른 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 있다. 주민들은 처음에 학교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조금 반대했다고 한다. 학교가 들어설 부지 바로 옆에 너무 큰 도로가 있어 등하교길이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휴식시간에 근처를 오가면서 조용한 마을을 시끄럽게 할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헤이즐우드 학교 전경. 시각장애가 있는 아이들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아이들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학교 건물 전체에 계단은 물론 턱이나 장애물이 없다. 벽을 만지기만 해도 대략 위치를 가늠할 수 있어 학교 안에서만은 자신있게 걸어다닐 수 있다.

“그 학교가 특수학교라는 걸 몰랐어요. 특수학교라는 걸 알고 나서는 반대가 완전히 사라졌죠.” 이 마을에서 33년을 살았다는 로다(77)가 말했다. 이웃에 사는 캐롤라인(61)도 거들었다. “우리는 일반 학교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이 걸어서 학교에 올 줄 알았거든요. 여기 아이들은 다들 스쿨버스나 차로 학교에 다니더라고요.”

주민들은 종종 학교를 찾는다. 크리스마스나 학기말 콘서트 때에는 학교가 주민들을 초대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학교에서 행사를 하면 10~15명 정도는 꼭 참석한다. 주민들은 콘서트 티켓이나 바자회 물건을 사주는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작년 크리스마스 행사에도 갔었어요. 학교에서는 긴 테이블을 놓고 기부받은 물품을 팔고, 게임에 참여하거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티켓도 팔아요. 그런 걸 사면서 자연스럽게 펀드레이징에 참여하게 돼요. 학교에 가면 즐거워요. 아이들이 노래를 정말 잘하거든요. 노래할 때는 언제나 웃고 있더라고요.” 로다가 말했다.

한국에서는 지역주민들이 특수학교가 들어오는 걸 반대해 문제가 됐다고 말하자 캐롤라인과 로다의 표정이 굳었다. “끔찍하네.” 캐롤라인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로다가 말을 이었다. “글래스고 사람들은, 차 한잔과 집에서 만든 케이크만 있으면 따뜻한 분위기가 된다고 말해요. 헤이즐우드 학교에 가면 그런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혹시 특수학교 아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주민들과 학생들이 같이 참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조금 더 소통이 되지 않을까요?”

캐롤라인도 덧붙였다. “맞아요. 학교에 가보기 전에 그 학교는 ‘슬픈 곳’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봉사활동을 오래 해보니 전혀 아니었어요. 안에 있다 보면 아이들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도 잊게 돼요. 그냥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 바깥 세상에서 살아가기 헤이즐우드의 가장 중요한 교육 목적은 아이들이 자립해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졸업해 사회에 나가서는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건물부터 교육과정까지 학교의 모든 요소가 여기에 맞춰졌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지도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가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장애물을 만난다. 예를 들어 앞이 보이지 않는 스코트는 낯선 것을 만지거나 먹는 걸 무서워한다. 앞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다. 선생님들은 스코트가 이것저것 시도해보도록 가르친다. 맛있는 냄새를 맡게 해 주고, 이것저것 만져보라며 용기를 북돋워준다.

지역 주민들이 봉사활동으로 학교 기물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학교는 주민들이 아이들과 교류하고 학교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열어놓았다.

아이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도 다 다르다. 말하고 듣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각자의 의사소통 방식을 배운다. 귀가 들리지 않는 캐머런은 수화로 의사소통을 한다. 이 학교 선생님들은 전부 수화를 할 줄 알기 때문에 소통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캐머런에게 “언제 수화를 배웠느냐”고 물어보다가 한참 동안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언제 말을 배웠는지 물어본 꼴이다. 캐머런에게는 수화가 곧 말이다.

의사소통이 아예 힘든 아이들도 있다. 발달지연, 인지장애를 일으키는 스미스-마제니스 증후군을 가진 아론(14)이 그렇다. 숫자나 알파벳도 이해하고 남이 하는 말도 알아듣지만 몸이 불편해 말은 하지 못한다. ‘예’와 ‘아니오’로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대화하는 상대방이 두 가지 선택지를 주며 양손을 내밀면 한 손을 잡는 방법이다. 담임교사 엠마가 “아론, 너는 너도밤나무반이니 소나무반이니?”라고 묻자 아론은 망설이지 않고 선생님의 오른손을 잡았다. 소나무반이라고 말할 때 선생님이 오른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눈동자로 조절하는 컴퓨터를 쓰는 아이들도 있지만, 아론은 눈을 정확히 움직이기를 어려워해 컴퓨터를 활용하기도 힘들다. “두 가지 사이에서 고르는 방법만으로도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시키고 있다”고 엠마가 말했다.

아이들은 각자 잘하는 게 있다. 리아는 음악을 좋아하고 피아노를 잘 친다. 리아가 다른 반 친구들과 함께 듣는 음악 수업을 따라가 봤다. 선생님이 “리아는 절대음감”이라고 칭찬하며 리아가 얼마나 음정을 잘 잡는지 보여주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피아노로 연주해주는 코드를 리아는 틀림없이 짚어냈다. 오늘의 목표는 합주다. 아이들은 레이디 가가의 노래 ‘본 디스 웨이’를 계속해서 연습해왔다고 했다. 리아는 키보드를 맡았고 옆 반 친구 존이 기타를 잡았다. 다른 아이들은 드럼을 하나씩 끼고 앉거나 노래를 따라불렀다.

수화로 노래를 따라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박자와 코드에 맞춰 멜로디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리아를 보며 선생님이 다가와 속삭였다. “한번도 어떤 음을 치라고 가르쳐 준 적이 없어요. 노래를 몇 번 들려줬더니 스스로 멜로디를 찾아내 연주하고 있는 거예요.” 키보드 앞에 앉은 리아는 집중하는 듯 찌푸렸다가 이내 환하게 웃기를 반복했다.

5월30일 ‘절대음감’ 리아가 음악 시간에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 합주에 맞춰 피아노를 치고 있다.

캐머런은 그림을 잘 그린다. 너도밤나무반 앞에는 까만 배경에 나뭇잎과 흰색 물감이 장식된 그림이 있다. 캐머런이 그리고 정원에서 모은 나뭇잎들로 꾸몄다. “나비나 작은 곤충을 그리는 걸 좋아해요. 그림을 그리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활동적인 캐머런은 방과후 교실에서 하는 수영과 볼링을 늘 손꼽아 기다린다.

■ 마이키의 졸업식 아이들은 18세가 되면 학교를 떠난다. 5월의 마지막 수요일, 중학교 과정을 마친 마이키와 에이미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오후 1시30분에 졸업식이 시작한다고 예고됐지만 로비에 아이들과 교사들이 모두 모인 건 2시가 다 돼서였다. 먼저 나와 있던 아이들도 많았지만 누구도 불만이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은 헤이즐우드에서 조금 늦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교장선생님 캐런이 마이크를 잡고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지금은 헤이즐우드 시간으로 1시 30분이죠? 이제 졸업식을 시작할게요.”

이날 졸업하는 마이키는 학생회장이다. 흰 셔츠에 ‘헤드 보이’라고 적힌 배지를 자랑스럽게 달았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마이키는 일반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2012년 중학생이 되면서 헤이즐우드로 왔다. 졸업식에 온 엄마 린은 처음 마이키가 입학했을 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의젓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6년 전의 마이키는 어린아이 같았고 자신감도 없었어요. 모든 면에서 서툴렀고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패닉 상태에 빠졌어요. 사춘기라 예민했고, 초등학교 친구들과 헤어져서 속상해하기도 했고요.”

마이키는 졸업하기 전 2년 동안 목요일과 금요일마다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카페에서 일했다. 보조교사가 따라가서 옆을 지켰다. 카페를 청소하고, 채소를 씻어 다듬고, 샌드위치를 만들고, 차와 커피를 날랐다.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단계다. 린은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보조교사가 함께 가니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이키는 이미 도전할 준비가 돼 있었고 도전하고 싶어했어요. 일하면서 자신감도 키웠고요. 이제 많이 성숙해졌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어엿한 젊은이가 됐어요. 자립할 수 있도록 가르친 것은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졸업식은 축제였다. 떠나는 친구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액자에 담긴 사진이 졸업 선물로 전달됐다. 교장선생님이 “잠시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자”며 신나는 음악을 틀어주자 잠시 춤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이키는 친구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같이 춤출래?”라고 의젓하게 물었다. 마지막 순서는 마이키의 연설이었다. “여러분, 와줘서 고마워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창문도 닦고 엄마를 위해서 다림질도 해요. 내 요리 실력은 엄청나죠.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부엌 바닥도 내가 닦는답니다!”

■ 이제 홀로 설 준비 안전하고 편안하고 언제나 도와줄 사람이 있는 학교를 떠나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헤이즐우드에서 보내는 몇 년은 아이들이 홀로서야 할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상태에 따라 상급학교에 올라가기도 하고, 직업을 찾기도 한다. 영국 아이들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5년이 끝나면 한국의 고등학교 2~3학년에 해당하는 후기중등학교나 예체능·직업관련학과를 운영하는 컬리지(실업학교)에 진학한다.

5월30일 헤이즐우드 학교 학생회장인 마이키의 졸업식이 열렸다(위 사진). 졸업식을 마친 마이키가 졸업앨범을 들어보이고 있다.

마이키는 컬리지에 갈 예정이다. 거기서 글쓰기와 요리 같은 삶의 기술들을 더 배워야 한다. 마이키처럼 학교를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다른 친구들은 꿈을 키운다. 졸업식 내내 마이키 옆에 앉아 있던 캐머런은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마이키처럼 저도 컬리지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카페에서 일했던 마이키처럼 아이들은 각자 학교 밖에서 사회활동을 하고, 꿈을 기르며 미래를 준비한다. 발달장애가 있는 홀리(14)는 매주 한 번씩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는 연습을 한다. 금요일에는 지역 푸드뱅크에서 커피를 포장하고 음식을 나눠주는 자원봉사를 한다. 자기가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기쁘다고 홀리는 말했다. “친구들이 움직이는 걸 도와주고 돌봐주는 걸 좋아해요. 친구 마이클과 아담을 웃게 만들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요.” 미래의 꿈을 묻자 홀리는 “지금처럼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코르크 벽에 손을 대고 조심조심 걷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벽에서 떨어져서 걸을 수 있게 되듯이, 홀로서는 연습을 한 아이들은 나중에 학교를 떠나도 자기만의 인생을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곳 아이들은 대부분 보호자가 필요하다. 어른이 되더라도 도움받고 의존할 사람이 필요한 아이들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도움 없이 말하고, 표현하고, 움직이고, 만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할 수도 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조금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끝없이 독려한다.

“우리는 일단 ‘벽 가까이 서 있으라’고 조언하면서 용기를 북돋워주는 거죠. 처음에는 가까이 서 있어야 두렵지 않겠지만, 익숙해지면 점점 떨어져 서 있을 수 있겠죠. 물론 남에게 많이 의존해야 하는 아이들이지만, 자기 인생을 스스로 살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거잖아요.” 교감선생님 빈센트가 몇 번이고 강조한 말이다.

■ 특별취재팀

장회정(토요판팀), 남지원·노도현(정책사회부), 박효재·심진용(국제부), 이석우·정지윤·강윤중·권도현(사진부), 배동미(디지털영상팀) 기자

■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

<글래스고|글 남지원·사진 배동미 기자 somnia@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