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소셜미디어, 누군가에겐 꼭 하고 싶은 이야기

2018. 7. 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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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삶과 나를 연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즉, 다른 사람의 일기를 살펴보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계가 늘어날수록 지나치게 많은 정보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 방 청소를 하거나 혹은 이삿짐을 싸다가 오래전에 쓴 일기장이나 다이어리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것의 페이지를 펼쳐 보고야 만다. 일기장 안에는 고작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맛있었다거나 친구 집에 갔다가 비디오게임 몇 판을 해서 너무 좋았다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물론 얼굴도 또렷이 기억나지 않는 동창생들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은 청소를 미룰 좋은 핑계가 된다. 다이어리 귀퉁이에는 뭘 이렇게 사소한 것을 메모해 두었는지 의아한 순간도 있고, 잊고 지낸 것에 대한 감정이 돌아와 잠시 주춤하는 때도 있다. 다행히 나의 과거 기록이 그냥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일기장을 남겨두었던 것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 중 한 장면 / 이봄

일기장 같은 소셜미디어

지금은 따로 일기를 쓰진 않지만, 소셜미디어가 아마도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맛있는 것을 먹으면 몇 마디를 보태어 사진을 올리고, 특별한 경험이 생기면 간단하게라도 글을 써서 남긴다. 그리고 함께 지내는 고양이들의 모습도 열심히 쌓아가고 있다. 반대로 지난 번에 갔던 식당이 어디인지, 그때 사고 싶었던 신간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으면 소셜미디어를 되감으며 내가 올렸던 기억을 찾아낸다. 형식은 조금 다르겠지만 소셜미디어는 이미 우리의 일기장을 대신하고 있다.

유난히 일상을 잘 포착하는 작가가 있다. 이미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린 마스다 미리가 바로 그녀다. 에세이도 쓰고,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동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건 만화 ‘수짱 시리즈’였다. 35살 수짱과 친구들의 일상을 통해 현대여성의 고민을 따스하게 품은 이 시리즈로 마스다 미리는 순식간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그녀는 일본 30~40대 여성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게 되었다.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타인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주로 격려와 응원을 보내기 때문이다. 소개할 〈오늘의 인생〉도 이런 작품세계의 연장선에 있다.

〈오늘의 인생〉은 마스다 미리가 자신의 일상을 자유롭게 기록한 작품이다. 때로는 겨우 2칸짜리 만화로, 때로는 2페이지에 걸친 글과 그림으로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다. 책에는 요코하마에 가서 추천요리 투어를 마치고 나니 체중이 2㎏이나 늘었다는 소식처럼 개인적인 이벤트부터, 관광객이 길을 물어와 안내했더니 일행이 열다섯이나 되었다는 둥 혼자서 키득거렸을 사연, 카페에 들어갔으나 커피가 700엔이나 해서 그냥 나왔다는 소심한 고백들 따위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무익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열거하면서 그녀는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없습니다”라고. 그렇게 평범한 하루하루가 어쩌면 특별하고 새로운 것이 된다.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을 읽고 일기와 소셜미디어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 작품이 마치 그녀의 일기장이나 소셜미디어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담았다는 점에서 일기와 같았고, 이것이 독자와 소통하기 때문에 소셜미디어를 닮았다고 보았다. 물론 〈오늘의 인생〉에서 보여준 마스다 미리의 모습이 그녀의 진짜 모습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책으로 내어서 독자들에게 소개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편집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남겨두었다.

나의 일기장도 마찬가지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 일기를 써야지 마음 먹었을 리는 없다. 선생님에게 검사받기 위해, 결국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썼던 것이다. 그런 목적이었기에 일기에 솔직한 속마음만 채워 넣지는 않았을 것 같다. 숨기고 싶은 모습은 숨기고, 자랑하고 싶은 것들은 과장하며 삐뚤삐뚤하게 써내려갔을 것이다. 관성적으로 행복했다, 감사했다, 고마웠다를 반복했을 테다. 그뿐만 아니다. 방학이 끝나가면 친구의 일기장을 빌려 날씨를 베껴 쓰고, 넘겨진 달력을 돌리며 기억을 재조립해서 한 달치의 일기를 몰아서 쓰기도 했다. 당연히 정확할 리가 없다. 게다가 그리 충실한 내용도 아니다. 엄마와 시장에 갔다. 생선도 사고, 채소도 샀다. 참 재미있었다, 정도로 쓰인 그림일기를 지금 발견하면 정말 쓸모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늘의 인생〉을 읽고 이런 사소한 하루하루가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소셜미디어로 옮겨온 일기(라고 부르기로 한다) 쓰기에서는 더욱 많은 문제가 벌어진다. 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통적인 일기 검사와는 규모가 다르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상황이 생긴다. 소셜미디어는 자신의 취향을 전시하고, 나아가 과시하는 장소다. 초라하게 차려진 밥상은 찍어 올리지 않지만, 비싼 레스토랑에서 먹는 근사한 접시는 찍어 올리고 싶은 그런 욕망이 있다. 이런 인정욕구가 지나치게 강화되면 타인의 삶을 복사하고 속이는 일까지 벌어진다. 여기에 중독성도 문제이다. 자체적으로 진단해 보면 나 역시 소셜미디어에 중독되어 있다. 수시로 알림 숫자를 확인하고, 새로운 뉴스가 없는지 끊임없이 뒤적인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검색하고, 그날 점심 메뉴는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다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이 돈가스가 맛있겠군’처럼. 너무 익숙해서 전화기를 손에서 떼어 놓기가 힘들다. 가끔은 나의 경험을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까지 느낀다.

‘왜 이런 걸 올리지’ 하는 의문

소셜미디어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삶과 나를 연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즉, 다른 사람의 일기를 살펴보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계가 늘어날수록 지나치게 많은 정보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슈가 생기면 그것에 대한 수많은 첨언이 쏟아지고, 매우 높은 확률로 싸움이 벌어진다. 똑같은 논평을 반복해서 보는 것도 괴롭다. 때로는 사람들은 왜 이런 것까지 일일이 흔적을 남기려고 하는지 의아할 때도 있다. 미니홈피,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상세한 규칙과 레이아웃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일기장과 같다. 그리고 대체로 다른 유저가 볼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곳에서 20억(페이스북 2017년 월 이용자 기준)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올린다. 피로한 경험이 될 수밖에.

솔직히 말하면 많은 경우 속으로는 소셜미디어에 이런 걸 왜 올리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그랬다. 하지만 마스다 미리의 한마디가 나의 불만을 가시게 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행복한지는 그 사람만 안다. 그렇기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의 행복을 가볍게 보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대목을 읽고 너그러워졌다. 아니 당장은 그러자고 다짐했다. 나에게 조금 불필요한 이야기가 있어도 누군가에겐 꼭 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마스다 미리처럼 각자의 〈오늘의 인생〉을 쓰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것을 다시 꺼내 보게 될 것이다.

<황순욱 초영세 만화 플랫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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