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장치 박자감이 주는 게임의 쾌감 '팩토리오'

이경혁 2018. 7.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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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91] ◆도미노, 골드버그 장치. 기계적인 박자감의 즐거움들

네모난 블록들을 세워 길게 바닥에 늘어놓으며 선과 모양을 만들어 내고, 마지막에 첫 블록을 툭 건드리면 차례로 쓰러지는 도미노 놀이는 단순한 방식의 놀이임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의 실수로 와장창 무너질 만큼 크게 만들기에는 나름의 난이도를 자랑하기도 하는 놀이다. 단순히 블록들을 연쇄적으로 쓰러뜨리는 놀이지만, 유튜브 등에서 거대한 도미노가 차례로 넘어져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시간을 잊게 만드는 몰입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차르르르 소리를 내며 질서 정연하게 무너지는 도미노의 쾌감은 파괴적인 측면이라기보다는 질서 정연함에서 오는 듯하다. 제작자가 세워 둔, 준비된 모양이 순차적으로 넘어지는 과정에서 도미노의 즐거움이 드러난다.

도미노의 무너짐이 앞 블록과 뒤 블록이라는 단순한 인과관계의 질서정연함에 기반한다면, 이보다 조금 더 발전한 단계로는 골드버그 장치라고 불리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미국 만화가 골드버그가 만화 안에 그려내면서 이름을 얻은 이 장치는 처음엔 단지 그림 안의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실제로 골드버그 장치의 작동을 구현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이들로부터 현실의 도미노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장치가 되었다. 도미노보다 복잡하고 기계적인 법칙들이 많이 들어가면서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작동 논리 덕에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끌 수 있었던 골드버그 장치는 여러 텔레비전 CF나 유튜브 동영상 등에 출몰하면서 이제는 꽤나 익숙한 놀이장치가 되었다.

골드버그 장치는 여러모로 쓸모 없어 보이는 자동화 기기이지만 그 자체로 상당한 흥미를 이끌어내면서 고유명사의 지위를 얻은 바 있다.

잘 작동하는 기계장치를 들여다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정확하게 맞물리는 톱니바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꽉 맞물리는 목재의 이음새와 같은 일회성의 편안함을 넘어 복잡한 기계장치가 수십 수백 개의 프로세스들을 정확하게 수행해 내는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볼거리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만들어보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착착 맞아떨어지는 자동화 공정 설계의 즐거움, '팩토리오'

'팩토리오'는 그 이름부터 뭔가 공장을 떠올리게 하는 인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영문 모를 행성에 불시착한 상태로 시작한다. 알 수 없는 적들로부터의 습격도 이어지는 이 행성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게임이 제공하는 방법은 자동화된 생산이다. 초반에는 돌이나 광석 같은 물건들을 직접 캐고 가공하지만 아주 잠시일 뿐, 생존과 탈출, 방어에 필요한 많은 물건은 사람의 손으로 캐 내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의 자원 수급과 생산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플레이어에게는 여러 가지의 자동화 기계장치들이 선택지로 제공된다.

게임 구성은 간단하다. 매 스테이지마다 클리어를 위해 요구되는 건물을 짓거나 제품을 생산하면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생산에 들어가는 자원과 작업량이 만만치 않은 관계로 플레이어는 자원을 생산하고 가공한 뒤 만들어진 부품을 자동으로 조립하는 과정까지를 하나의 프로세스로 자동화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는다.

컨베이어 벨트, 위치 A에서 위치 B로 물건을 옮기는 자동 크레인 장치, 스스로 움직이는 화물열차 등을 적절하게 배치해 거대한 자동화 생산공정을 만들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팩토리오'의 골격이다. 초반 튜토리얼에서 플레이어는 철광석을 캐 용광로에 녹여 철괴를 만들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직접 광석을 캐다가 자동 채굴기를 완성시키면 채굴기 옆에 광석들이 모이게 되고, 이를 컨베이어 벨트까지 운반하는 크레인을 건설하고 작동시키면 이후부터는 광산의 광석이 저절로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용광로로 들어가 주괴로 가공되는 결과물을 보게 된다.

`팩토리오`의 핵심은 모든 생산과 제조의 자동화다. 철광석과 석탄은 자동 추출기를 통해 캐내어진 뒤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용광로에 투입된다. 게임은 갈수록 자동화 루트를 늘려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팩토리오'는 이러한 과정을 중첩시켜 나가도록 밀어붙인다. 철괴는 또 다른 컨베이어에 실려 톱니바퀴가 되거나 파이프로 가공되고, 각각의 부품들이 또 다른 자동화 과정에서 새로운 엔진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또 다른 부품이 붙으면서 복합기계를 탄생시키는 식의 중첩을 플레이어는 자신의 자동화 공정 속에 이뤄내야 한다. 스테이지를 진행할수록 요구되는 결과물은 점점 더 복잡한 구조의 생산물이며, 최종적으로는 로켓을 완성해 행성을 떠나는 과정까지를 달성하는 것을 '팩토리오'는 플레이어에게 목표로 제시한다.

◆기계적 합치감과 관리의 즐거움이 만드는 교묘한 배합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기계장치들을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거대한 자동화 공정을 완성시켜 나아가는 '팩토리오'의 게임 구조는 누가 봐도 자동화된 현대 산업사회의 그것으로부터 모티프를 가져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초에 깔려 있는, 마치 현실의 물리법칙과도 같은 개별 부품들의 기본 알고리즘이 조합을 통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결과물로 나타날 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즐거움의 원천이 산업사회의 자동화 공정을 따라하는 데서 나온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좀 더 설득력 있는 입장은 자동화 공정 자체가 만들어내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주는 쾌감이 존재한다는 정도이다.

고전 게임인 '요절복통 기계(Incredible Machine)'는 톱니바퀴와 지레, 추, 선풍기 등 매우 간단한 물리법칙들이 작용하는 장치들을 요령 있게 배치하여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의 게임으로 적지 않은 이들의 시선을 끈 바 있었다. 골드버그 장치를 게임공간 안에서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은 게임이 가진 조금은 유머러스한 물리법칙의 적용을 통해 상당히 유쾌하면서도 기계장치들의 동작이 주는 합치감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은 게임으로 '요절복통 기계'의 의미를 만들어 낸 바 있었다.

기계장치가 만드는 정박의 합치감은 '요절복통 기계'의 1차적 성취를 넘어 '팩토리오'에 이르면 유희에서 생산으로 의미를 전환하면서 2차적인 성취로 도약한다. 기계장치의 정확한 합치감이 주는 쾌감은 '팩토리오'에서 자동화 생산으로 자리 잡히면서 일종의 게으른 즐거움으로 거듭난다. 굳이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일일이 하지 않아도 대규모의 생산과 제작이 이루어진다는 점은 1차적인 기계적 합치감의 의미에 일정 부분의 즐거움을 덧붙인다. 생산의 현장이 갖는 고단함 대신 자동화된 프로세스를 그저 관리 정도만 해 준다는 것은 생산의 틀로부터 벗어난 유유자적함으로서의 의미를 추가하면서 '팩토리오'를 좀 더 새로운 재미로 이끌어 낸다.

고전 게임 `요절복통 기계` 는 골드버그 장치의 재미를 옮겨 온 게임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팩토리오`는 한편으로 기계적 합치감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생산의 개념과 엮어 풀어낸다.

도미노나 골드버그 장치 같은 간단한 기계장치의 즐거움은 생산체계 안에서 조금 더 다차원적인 즐거움으로 의미 지어진다. '팩토리오'의 재미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관리의 즐거움이라는 '심시티' 계열의 운영 시뮬레이션과도 맞닿아 있지만, '요절복통 기계'류의 메카닉한 즐거움으로부터의 계보가 갖는 의미에 훨씬 더 무게가 실리는 편이다. 유튜브에서 도미노나 자동 기계장치를 무심히 자동 재생하면서 즐겨 보는 사람들이라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게임이다. 물론, 영상에 비해 게임의 기계장치는 '관리의 귀찮음'이 존재할 수도 있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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