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실파' 유일 생존 작가 백영수 화백 별세..향년 96세

박현주 2018. 6. 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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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실파' 유일한 생존작가였던 백영수 화백이 29일 오후 1시 30분경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생전 이중섭·김환기·유영국·장욱진과 함께 1947년 결성한 국내 신사실파로 활동, '이중섭의 친구'로 더 알려졌다.

백영수 화백은 1922년 수원에서 태어나 두 살 때부터 일본 오사카에서 자랐다.

2012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화업 70주년 개인전을 열었고, 92세인 2016년 서울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어 '신사실파 마지막 현역 작가' 전시로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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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2016년 9월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귀를 쫑긋한채 기자들의 질문을 받던 생전의 백영수 화백.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신사실파' 유일한 생존작가였던 백영수 화백이 29일 오후 1시 30분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고인은 생전 이중섭·김환기·유영국·장욱진과 함께 1947년 결성한 국내 신사실파로 활동, '이중섭의 친구'로 더 알려졌다. 신사실파는 한국 추상미술의 시작을 알린 모임으로 이후 국내미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

지난 2016년 9월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에서 연 개인전에서 백 화백은 "다른 사람은 다 죽었는데 나만 운이 좋아 살아있다"며 "100살까지 살아야겠다. 4~5년 남았는데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한바 있다.

백 화백의 대표작은 50여년간 천착한 '모자상'이다. 고개를 90도 각도로 갸우뚱하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특징이다. 특히 엄마 등에 매달려 엄마와 아이가 한 몸같은 그림에는 백 화백의 평생 그리움이 담겼다. 화백이 두살때, 엄마는 남편을 잃었다. 오빠가 있는 일본으로 아이를 데리고 간 엄마의 나이는 고작 스물살도 안됐고 아이를 두고 생계를 이어야 했다.

백영수 화백은 1922년 수원에서 태어나 두 살 때부터 일본 오사카에서 자랐다.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한국으로 돌아와 목포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했다. 이후 1978년 프랑스 요미우리화랑 전시를 계기로 파리에 정착했다. 30여년간 파리에 살면서 파리, 밀라노, 로마 등 유럽에서 100여회 전시를 열었다. 이후 2011년 경기 의정부 옛 집으로 귀국했다.

2012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화업 70주년 개인전을 열었고, 92세인 2016년 서울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어 '신사실파 마지막 현역 작가' 전시로 화제가 됐다.

지난 4월, 70년대부터 거주했던 의정부(호원동) 옛집을 리모델링해 백영수 미술관을 건립했다. 지상 2층, 전체면적 371㎡ 규모로 현재 상설전을 열고 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 은관훈장을 받았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층 4호실, 발인 7월 2일 오전 10시. 경기 의정부 호원동 성당 미사후 장지 이동. 장지 경기 의정부 신곡2동 성당 하늘의 문. 02-2072-2016.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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