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이 나이 먹도록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18. 6. 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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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들이 있다. 소중한 친구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머저리, 루저’ 같은 나쁜 말들을 자신에게는 서슴없이 하며, 친구에게 상처 줄 행동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자신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내는 사람들이다. 

친구에게는 나쁜 말들을 서슴없이 하며, 유독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들이 있다. - GIB 제공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고 유독 자신에게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모습을 흔히 보이는데 이들을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완벽주의자(self-critical perfectionist)’라고 한다. 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Dunkley et al., 2003).

1) 지속적인 자기검열을 한다. 2) 자신의 행동에 가급적 부족하다 느끼고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편이다. 3) 그러다보니 심지어 좋은 결과를 내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며 사사건건 스트레스가 크다. 또한 4)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대한 걱정이 심하다. 

3)의 좋은 결과를 내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데에는 자신이 들이는 노고를 평가절하하는 것과도 관련을 보인다. “상위 1%에 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왜 이럴까?”, “일주일씩 밤을 새는 사람들도 있어. 하루 이틀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야” 등이 한 예다. 

우리 모두는 직접 경험할 수 없는 타인의 속사정보다 자신의 속사정에 훨씬 밝다. 따라서 내가 누구보다 나의 수고를 잘 알아야 할 것 같은데도, 때로 우리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의 힘듦을 평가절하한다는 것이다. 나의 싸움을 누구나 ‘다 그 정도는 한다’며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거나 사실 쉽지 않았음에도 별 다른 노력을 붓지 않은 것처럼, 당연한 승리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한 승리라는 게 있을까?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해서 꼭 절대적으로 쉬운 일이거나 고통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걸 그럭저럭 해내는 우리 모두가 대단한 것이지 그 일 자체가 시시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나이가 이렇게나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취한 것이 적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동안 어떤 일을 했냐고 물었다. 다양한 관심사를 가졌고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았음이 드러났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먼 곳으로 이주하기도 했고 낯선 환경에 자신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꾸준히 자신을 비난하며 괴로움에 빠지기도 했고 비교의 고통에 빠지기도 했다. 

GIB 제공

만약 본인의 친구가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아 이와 같은 방황을 했다면 “넌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구나. 네 경험은 다 쓸데없는 것들이야”라고 할 것인지 물었다. 깜짝 놀라며 그러지 않을 거라고 했다. 많이들 하고 있더라도 답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건 여전히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방황에도 많은 노력이 든다. 많은 고민과 괴로움 또한 그만큼 치열하게 자신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힘든 가운데에서도 스스로를 조금 자랑스러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때로 우리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의 힘듦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나에게 소중한 누군가의 싸움이 용감한 행동이라면 나의 싸움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평탄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보다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더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Klein & O'Brien, 2017).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넘어지고 먼 길을 우회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싸움이, 겉으로는 비슷해보일지언정, 실제로는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이다. 타인의 방황이 결코 의미없는 일이 아니라면 나의 방황 또한 의미 없지 않다. 

또한 나의 힘듦이 별 게 아니지 않은 것처럼 타인의 힘듦 또한 별 게 아니지 않다. 실제로 나의 힘듦을 인지하는 것과 타인의 힘듦을 인지하는 것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다. 예컨대 자신에게 가혹하고 자신의 마음 상태에 둔한 부모들은 (의도와는 다르게) 자녀의 힘듦을 잘 눈치채지 못하는 편이다(Barber & Harmon, 2002). 내 힘듦과 노력을 인지할 수 있을 때 타인의 힘듦과 노력도 눈치챌 수 있다는 것이다. 

GIB 제공

“남들은 30분이나 뛰어도 멀쩡한데 나는 왜 이럴까” 라고 하기보다 “내가 5분이라도 뛰었음 정말 잘 한 거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이후 누군가에게 무심코 “그거 뛰고 힘들어하냐??”라며 핀잔을 주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나의 노고를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노고를 인정할 수 있으며, 나를 응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을 응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을 향한 응원을 잘 받아들이는지의 여부가 타인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편인지의 여부와 관련을 보이기도 한다(Cosley et al., 2010).

삶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고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짐을 지고 긴 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이다. 그 길에서 나의 길, 또 타인이 걸어온 길이 쉽지 않았음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며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다. 

* 나에게 처음으로 따듯하게 다가가는 자기자비 연습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이 출간됐습니다. 

[1] Barber, B. K., & Harmon, E. L. (2002). Violating the self: Parental psychological control of children and adolescents. In B. K. Barber (Ed.), Intrusive parenting: How psychological control affects children and adolescents (pp. 15–52). Washington, DC: APA.
[2] Cosley, B. J., McCoy, S. K., Saslow, L. R., & Epel, E. S. (2010). Is compassion for others stress buffering? Consequences of compassion and social support for physiological reactivity to stres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6, 816-823.
[3] Dunkley, D. M., Zuroff, D. C., & Blankstein, K. R. (2003). Self-critical perfectionism and daily affect: Dispositional and situational influences on stress and cop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4, 234-252.
[4]Klein, N., & O'Brien, E. (2017). The power and limits of personal change: When a bad past does (and does not) inspire in the presen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3, 210-229.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 스스로를 돌보는 게 서툰 이들을 위해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를 썼다. 현재는 UNC 의과대학에서 연구원을 하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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