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도서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

2018. 5. 3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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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이다. 그 때 마다 난감한 것은 좋은 책을 추천해도 갸우뚱해하는 반응 때문이다. 고학년인 아이에게 너무 글의 양이 적다고, 혹은 권장도서 목록에서 더 어린 학년에 추천되어 있는 도서인데 정말 괜찮은지 되묻는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라면 평소 그 아이의 성향과 독해력을 알고 있기에 나름 깊이 고민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권해주고 싶지만, 공신력 있는 기관의 학부모용 맞춤 도서목록으로 추천해 줄 때야만 비로소 환영받는 게 현실이다.

학년별 어린이 권장 도서 목록과 유명 대학의 청소년 추천 도서 목록은 늘 깊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어른들이 읽기에도 힘든 책들을 고전과 필독서라는 이유만으로 리스트에 올리는 것은 강력한 미디어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종이책으로부터 아이들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닐까. 입시를 위한 자기소개서 속 독서 관련 서술을 살펴봐도 과연 이 책을 학생 스스로 선택해서 직접 쓴 것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부모가 골라 주는 책들은 대체로 교육적인 것이 많다. 책조차 즐거움이 아닌 공부로 읽어야 하는 아이들. 책장에 원치 않은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고,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을 구별해 가며 의무적으로 읽어내야만 하는 독서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공부거리이자 억압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사진 출처: Unsplash ©jamiehowardtaylor

아이의 책을 고르기 위해서는 성인의 책 선택법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의 저자 ‘후지하라 가즈히로’는 학창시절 읽은 고전으로 인해 책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비즈니스 관련 책을 읽으면서 늦깎이 탐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 후 후지하라는 도쿄의 한 도내 최초의 민간인 출신 교장이 되었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인기 강연가가 되었다. 이처럼 독서로 인생을 바꾼 후지하라는 그의 저서에서 책 선택에 대한 자신만의 <여섯 가지 패턴>을 소개한다. 1. 한 작가의 작품을 도서관에서 가능한 만큼 빌려 오는 패턴2. 표지나 제목을 보고 끌리는 책 다섯 권 정도를 한꺼번에 구매해서 읽는 패턴3.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증정본4. 신간 서평을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패턴5. 아마존의 추천 (단, 아마존의 영업 전략에 빠지지 않기)6. 존경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언급되었던 책을 구해서 읽는 패턴

나의 책 선택 패턴은 그 때 그때 내 삶을 지배하는 키워드로 도서관 서가를 여행하는 것이다. 또한 책 속에서 언급되는 책을 연이어 따라 걷는 독서 산책을 한다. 이처럼 책읽기는 스스로가 찾은 길 위에서 더욱 깊은 몰입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그 길을 찾기 위한 첫걸음으로 도서 목록이 필요하다면 주제별 리스트를 추천하고 싶다. 그것도 과학, 언어, 문화 등 단순 키워드가 아닌 ‘친구와의 관계가 힘들 때’ 등과 같이 보다 세분화된 상황별 도서 목록이 좋다. 시간과 품이 더 많이 들더라도 학년별 권장도서가 아닌 주제별 도서 목록이 일반화 되어야 한다. 그것은 연령별 목록을 통한 책 선택 시 자신의 독해력에 맞지 않는 책으로 인한 열등감을 줄이고, 중도에 읽는 것을 포기하여 독서와 더 멀어지게 하는 일을 경감시켜 줄 것이다.

이러한 리스트는 각 학교 도서관에서 그 책을 직접 읽은 학생들의 한 줄 평가와 별점 카드를 활용해도 좋다. 그것을 성인들의 것과 함께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계속 수정, 보완해 나간다면 단순히 광고 등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책 선택법을 구축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틀에 박힌 권장도서의 압박에서 벗어나 책이 아이들의 마음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유재은 작가/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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