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칠궁에 서린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의 기운

이기환 논설위원 2018. 5. 1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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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희빈 장씨를 모신 대빈궁. 역관의 가문에서 태어나 국모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5년만에 희빈으로 강등된 뒤 끝내 사약을 받고 죽은 비운의 여인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선시대 임금의 여인, 즉 궁녀의 수는 230(인조)~600명(영조)정도였고, 1000명(연산군)을 육박할 때도 있었다. 그 중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이는 세종의 후궁인 신빈 김씨(1406~1464)일 것이다. 내자시(조달청)의 여종이었던 신빈은 13살 때 원경왕후(태종의 정후)의 선택으로 소헌왕후(세종의 정후)의 지밀나인(수행궁녀)가 되었다. 그러다 세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었다. 세종의 자식을 8명(6남2녀)이나 낳았으며 입궁 21년만에 빈(정1품)이 되었다. 공노비-지밀나인-빈으로 수직출세한 것이다.

신빈과 달리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후궁들이 있었다. 바로 숙종(재위 1674~1720)의 후궁인 희빈 장씨(1659~1701)와 숙빈 최씨(1670~1718)다. 희빈 장씨는 경종(재위 1720~1724), 숙빈 최씨는 영조(재위 1724~1776)의 친어머니다. 두 여인은 숙종의 본부인인 인현왕후(1667~1701)와 얽히고설켜 남편인 숙종을 사이에 두고 맞섰다. 즉 ‘희빈 장씨·남인’이 편을 먹고, ‘인현왕후·숙빈 최씨·서인’이 다른 한편이 되어 피비린내나는 궁중암투를 벌였다. 인현왕후를 쫓아내고 한때 중전의 자리에 올랐다가 다시 희빈으로 강등된 장씨에게 결정타를 먹인 이는 바로 숙빈 최씨였다. “희빈 장씨가 생전의 인현왕후를 무고(巫蠱·남을 저주하는 행위)했다”고 남편(숙종)에게 고변한 것이다. 결국 희빈 장씨는 사약을 강제로 들이켜야 했다. 인현왕후까지 세 여인을 두고 장난질 했던 남편(숙종) 때문에 희빈과 숙빈은 같은 하늘을 두고 살 수 없는 원수 사이가 되었다. 한데 1725년(영조 1년) 영조는 친어머니인(숙빈 최씨)의 명복을 비는 사당을 세웠다. 지금의 청와대 영빈관에 붙어있는 육상궁(사적 제149호)이다.

칠궁 내에 있는 육상궁과 연호궁. 육상궁은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고, 연호궁은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왕인 진종의 생모인 정빈 이씨를 모신 사당이다.

그런데 1870년(고종 7년)무터 곁식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빈궁(희빈 장씨의 사당)이 입주한데 이어 저경궁(선조의 후궁이자 추존 원종의 생모인 인빈 김씨)·연호궁(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진종의 생모인 정빈 이씨), 선희궁(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장조의 생모인 영빈 이씨), 경우궁(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 덕안궁(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 등이 뒤를 잇는다. 결국 후궁이지만 임금을 낳은 생모 7명을 기리는 사당이라 해서 칠궁(七宮)의 이름이 붙었다.

다른 분이야 그렇다치지만 철천지 원수였던 숙빈과 희빈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은 좀 어울리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1887년(고종 24년) 왕명으로 대빈궁을 다시 원래의 위치(낙원동)로 옮겼다가 다시 1907년(고종 44년, 광무 7년) 칠궁으로 돌려놓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아무튼 박정희 대통령 시해(1979년)와 무장공비 침투(1968년) 등 인근에서 일어난 비극을 칠궁과 연결짓는 참새 입방아가 있었다. 여인의 한이 맺힌 동네라는 수근거림이었다. 최근 문화재청이 출입이 제한되던 칠궁의 일반 예약관람을 6월부터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기가 세니 팔자가 세니 하는 허황된 뒷담화는 말고, 오로지 남편의 사랑을 받고자, 아들을 임금의 자리에 앉히고자 노심초사했던 후궁 어머니들의 사연을 더듬어보는 기회로 삼아볼지어다. 인현왕후를 포함해서 세 여인을 두고 이리저리 저울질하며 농락한 ‘못된 남자’ 숙종의 이야기도 빠뜨리면 안된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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