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라 잡(JOB)] "맛집 화장실 상태까지 다 적힌 시크릿 노트가 내 영업비밀"

배윤경 2018. 5. 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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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은실 롯데호텔 서울 컨시어지 매니저 인터뷰
#결혼식을 앞두고 드레스 가봉을 하러 가면서도 한 손에 들려 있던 노트가 있다. 전국 맛집과 관광지 목록을 가장 최근 내용으로 업데이트하며 채우는 '나만의 시크릿 노트'다. 관광지를 가기 위한 교통편은 물론 쉽게 풀어 쓴 역사 내용까지 보태지니 노트에서 더 이상의 여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도 디저트가 맛있으면 어김없이 노트를 꺼내든다. 가게 운영시간은 언젠지, 휴무일은 얼마만에 돌아오는지, 화장실 상태까지도 꼼꼼하게 메모하기 위해서다. 비건 레스토랑에 가서 재료나 조미료 등에 문제가 없나 쉐프에게 꼬치꼬치 캐묻다보니 손님을 가장한 경쟁업체 직원으로 의심 받는 것도 수차례다.

세계컨시어지협회가 인정한 최고의 컨시어지만 받을 수 있는 '골든키'를 딴 비결은 다름 아닌 이 시크릿 노트에 담긴 열정과 노력 덕분이라는 우은실(31·사진) 롯데호텔 서울 컨시어지 매니저. 롯데호텔 서울의 유일한 골든키 컨시어지 매니저를 지난 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 라운지에서 만났다. 이 날도 어김없이 우 매니저의 유니폼에는 골든키 배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국내에선 호텔리어로 두루뭉실하게 통칭되곤 하는 컨시어지 매니저는 사실, 투숙객이 필요로 하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 민원 전문가다. 인근 관광지 안내부터 항공 및 교통편 예약, 맛집 추천에 이르기까지 투숙객의 요청이라면 최선을 다해 돕는다.

해외에선 유명 컨시어지가 다른 호텔로 이직하면 투숙객들이 따라서 호텔을 옮길 만큼 호텔의 얼굴 역할을 한다. 국빈을 포함한 VIP 영접과 환송 역시 컨시어지가 주로 맡는다.

특히, 무엇이든 열 수 있는 '황금 열쇠'를 의미하는 골든키는 매년 시험을 통해 선발된다. ▲호텔 경력 5년 이상 ▲컨시어지 경력 3년 이상 ▲객실팀장·총지배인의 추천서 필수 ▲일반 상식과 한국사 등을 포함한 필기 시험 ▲면접 등 까다로운 선발과정으로 특급호텔 소속 국내 130여명의 전문 컨시어지 매니저 중 단 25명만이 이 골든키를 갖고 있다.

황금 열쇠가 교차한 모양의 골든키 배지는 컨시어지 매니저가 유니폼 깃 양쪽 쇄골 아래 달아 호텔 방문객이 쉽게 컨시어지를 찾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다.

우은실 롯데호텔 서울 컨시어지 매니저
어떤 요구에도 최선을 다 하는 게 컨시어지의 자세다. 해외팬의 국내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을 돕거나 리마인드 웨딩을 앞두고 프로포즈가 어색한 노신사를 위해 함께 이벤트 준비에 나선다. 보안상의 이유로 VIP와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경우가 많아 유명 해외 연예인부터 각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담소를 나눌 기회도 종종 얻는다.

우 매니저는 입양된 후 친부모를 찾기 위해 수 십여 년 만에 한국을 찾은 교포가 호텔에 머물면서 함께 가족을 찾아줄 것을 요청받은 적도 있다.

그는 "어린시절 사진과 입양 서류를 정리해 홀트아동복지회에 연락하고 틈틈이 통역이나 관련 서류 준비를 도왔다"며 "결국 한국 가족과 연락이 닿아 함께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우 매니저는 짬이 날 때마다 호텔 앞 명동을 찾아 새로 관광지도를 그려넣는다. 번화가인 명동은 금새 가게가 없어지고 문을 여는 만큼 혹시라도 고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잘 알려진 맛집 외에도 새로 생긴 이색적인 메뉴의 식당, 명동에 즐비한 화장품 로드숍 위치까지 우 매니저는 지도를 그려가며 줄줄 외웠다.

컨시어지 매니저는 주변 여행지는 물론 맛집, 교통편에 대한 이해가 깊어 유럽에서는 지역 전문가, 민간 외교관으로 통한다. 우 매니저도 쉬는 날이면 명동과 삼청동, 이태원 등 서울 일대를 비롯해 부산과 전주, 제주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문화재와 맛집, 외국인 관광객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편을 찾는다.

최근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발달하면서 편리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허울 좋은 사진 뿐인 경우가 많이 직접 발로 뛰는 편이다. 전국 각 특급호텔의 컨시어지들과 협력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제 남편은 이런 제 모습에 두손두발 다 들었다"고 웃으며 말하는 우 매니저는 "컨시어지 매니저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봉사심은 물론 역사와 지역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 타지를 찾은 방문객에게 가장 큰 조력자이자 친구가 되는 만큼 늘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컨시어지가 꼭 갖춰야할 자세로 '센스'를 꼽았다.

우 매니저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동서울종합터미널 가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어디를 가기 위해 동서울터미널을 가는지 먼저 물어봐야 한다. 실제 동서울터미널에서 해당 지역까지 버스가 안 갈 수 있기 때문"이라며 "맛집을 찾는다면 특정 음식에 대한 알러지는 없는지, 가격대는 어느정도를 생각하는지 정확하게 물어 최대한 고객의 만족도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성(古城)의 촛불관리인이란 유래를 가진 컨시어지는 성 곳곳을 살피고 방문객에게 안내하는 것처럼 최근엔 호텔 뿐 아니라 출판, 골프, 쇼핑 등 다방면에서 조언자이자 전문가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쇼핑 컨시어지 등 세분화된 직업이 새롭게 등장하는 추세다.

우 매니저는 "업종별로 전문 컨시어지가 앞으로 더 많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컨시어지는 감성과 전문성을 함께 갖춘 인재인 만큼 앞으로 다양한 서비스 분야에서 활약할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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