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준의 법정&영화]'유죄율 99.9%' 일본 형사재판의 급소를 찌른 독백.."난 아니야"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2018. 5. 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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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감독 수오 마사유키, 2007년 일본)

만원 전철에서 자신의 치마 안에 손을 넣은 사람이 가네코 뎃페이라고 확신한 여중생은 그를 따라 내려 팔목을 붙잡는다. 위드시네마 제공

입사 면접 가려고 초만원 전철에 오른 주인공, 여중생 성추행범으로 몰려 결국 유죄를 선고받는데…

“열 명의 죄인을 놓친다 하더라도 죄 없는 한 사람을 벌하지 말지어다.” 극장에 불이 꺼지고 떠오르는 이 엄숙한 자막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누명을 쓰고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딱한 사연을 알려주겠노라고 선포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하지만 자막이 끝나고 시작되는 이 영화는 촌스럽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일본에서 수사와 재판이란 무엇인지 세밀하게 드러내며, 논문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형사사법을 분석해낸다. 한국 사법연수원에서 갓 입소한 연수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는 이유다.

주인공 가네코 뎃페이(가세 료)는 입사 면접에 가기 위해 초만원 전철에 오른다. 닫히는 전철 문에 옷자락이 끼여 꼼짝달싹 못하다가 목적지 역에 간신히 내린다. 하지만 어느 여중생이 뎃페이의 손목을 붙들고 치한으로 지목한다. 이렇게 짧은 도입부가 지나면 치한 피의자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수사와 재판이 시작된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한 자막이 결론을 뻔히 암시하는데도, 관객은 진실이 무엇인지 혼란을 겪게 된다. 이유는 법정에 출석한 증인들이 뎃페이를 치한으로 지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영화는 두 개의 축으로 움직인다. 뎃페이가 정말로 치한인지, 그가 무죄를 선고받을지다. 뎃페이의 재판을 보면서 관객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과 이를 처벌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일 수 있다고 고민한다. 99.9% 유죄율을 자랑하는 일본의 형사재판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나쁜 제도가 아닐지 의심한다.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재판이란 무죄를 받았어도 결백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 것이지,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들 가운데 억울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른다.

영화는 대사 하나, 상황 하나로 일본 형사재판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법률과는 이력이 무관한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얼마나 철저하게 시나리오 취재를 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가령 증인들이 자신에게 질문하는 검사나 변호인을 보면서 대답할 때마다 변호인이 재판장을 보고 답하라고 고쳐준다. 이런 모습이 거듭 등장하는데 현실 법정에서 흔한 일이기도 하지만 재판의 주재자가 누구인지를 관객에게 환기시킨다. 또 재판장이 피고인의 증거 신청을 거부하자 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항의 사실을 공판기록에 남겨달라고 나지막이 요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변호인이 재판부를 압박하는 아주 현실적인 방법이다. 여느 한국 영화의 변호인 같았으면 느닷없이 판사에게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영화에서 검사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이 나오면 손가락으로 볼펜을 돌린다. 증언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법정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의도치 않은 행위였다면 검사가 긴장해서일 수도 있다. 이런 연출은 검사를 출세에 눈이 멀어 무고한 사람을 붙잡아 넣는 집단으로 묘사하는 안일하고 편협한 수준을 넘어선다. 오히려 일본 형사재판의 문제점이 손쉬운 구속을 바탕으로 피의자의 (허위) 자백을 받아 사건을 끝내는 인질사법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한다. 그래서 기소가 곧 유죄인 현실이 비정상이라고 지적한다. “무서운 건 99.9%의 유죄율이 재판의 결과가 아니라 전제가 되는 상황입니다.” 뎃페이의 변호인 아라카와 마사요시(야쿠소 고지)의 대사다.

이렇게 12번의 공판을 거쳐 뎃페이는 유죄를 선고받는다. 선고공판에서 재판장은 판결 이유를 길게 설명한다. 다양한 논리를 만들어 뎃페이가 여중생을 성추행했다고 결정한다. 재판장의 선고를 듣고 있으면 뎃페이가 치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헌법에 따라 판결은 구체적인 사실을 확정하도록 권위를 부여받았을 뿐인데, 우리는 이 제도적 권위를 현실적 능력과 착각하기 때문이다. 재판장의 선고가 끝나고 나오는 뎃페이의 독백을 통해서야 오심임을 관객들은 확실히 알게 된다.

“진실은 신만이 알고 있다? 그건 틀렸어…최소한 나는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재판관은 알아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얼마나 재판이 혹독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타이르면서도 ‘정말로 하지 않았으니까 유죄가 될 리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진실은 신만이 알고 있다’고 말한 재판관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틀린 말이다. 최소한 나는,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재판에서 정말로 심판을 할 수 있는 이는 나밖에 없다. 최소한 나는 재판관을 심판할 수 있다. 당신은 실수를 범했다. 나는 결백하니까. 나는 처음으로 이해했다. 재판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 아니다. 재판은 피고인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모아들인 증거를 가지고 임의로 판단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유죄가 되었다. 그것이 재판소의 판단이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

일본 형사사법이 후진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수사기관의 강력한 권한에 있다. 구속수사가 기본이자 원칙인 나라다. 경찰이나 검찰이 피의자로 지목하면 재판소(법원)는 체포영장을 발부한다. 예외는 법정형이 벌금, 과료, 구류에 해당하는 경미한 범죄다. 영화 개봉 무렵을 기준으로 체포된 피의자의 93%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99%가 발부됐다. 2005년까지 99.5%이던 영장발부율은 2014년에야 97.3%가 됐다. 이뿐 아니다. 피의자 대부분이 구속되는데 구속기간도 무제한이다. 일본 형사소송법 60조는 특별한 이유 없이도 구속기간이 1개월마다 갱신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16년 동안 구속된 사례로 2001년 유죄가 확정된 1995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용의자인 옴진리교 간부들이 있다.

한국의 형사사법도 후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사 중계 보도를 하고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피의자를 단죄하는 언론도 한몫한다. 검찰이 피의자를 소환한다고 발표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한다. 한국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검사에게 피의자를 소환할 권한이 있다는 규정은 없다. 재판을 시작한 법원만이 피고인을 소환할 수 있다. 형소법 제68조(소환)가 ‘법원은 피고인을 소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출석을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왜곡의 시작은 일제 식민지 조선 검찰이 피의자 소환권을 불법적으로 만들어낸 데 있다. 당시 일본 본토의 다이쇼 형소법에 따르면, 소환은 출석 의무를 발생시키고 불응하면 강제구인이 가능했다. 판사의 영장으로만 가능한 강제처분이다. 그래서 본토 검사들은 출석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의 검사들은 조선형사령에서 소환권이 유추된다고 주장해 일제강점기 내내 행사했다. 이에 더해 지금 언론은 사전적으로 ‘부른다’는 뜻일 뿐인 소환(召喚)을 마치 검찰에 출석해야만 하는 것으로 둔갑시켜 ‘소환 통보’ 같은 어법에도 안 맞는 표현을 쓰고 있다. 검사가 부르면 나가야 한다는, 식민지 시절 몸에 밴 노예적인 생각을 없애기는커녕 ‘소환=출석’으로 강화시킨 것이다.

손쉬운 구속을 바탕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일본 ‘인질사법’의 후진성…과연 한국의 사법은 어떤가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영화가 개봉되고 4년 뒤인 2011년 일본 법무부 법제심의회 형사사법제도특별부회에 위원으로 참여한다. 26명의 위원과 14명의 간사(발언권이 있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지만 표결권은 없다) 가운데 유일한 문화예술인이었다. 법조계와 무관한 사람이 6명 더 있었지만 일본사법지원센터 이사나 일본노동조합연합회 사무국장 등 사회 분야 사람들이었다. 도쿄고등검찰청에서 열린 첫 회의에서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말한다. “저는 <으랏차차 스모부>나 <쉘 위 댄스> 같은 비교적 밝으면서도 희망적으로 미래를 보는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 한 치한사건이 도쿄고등재판소에서 무죄로 뒤집혔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 형사재판이란 무엇인지 면밀히 취재를 시작했고, 의문과 분노를 가득 안게 되면서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만들었습니다.”

형사사법의 문외한으로 살던 그는 실상을 알고 충격을 받았노라고 고백했다. “미스터리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훌륭한 검사와 변호사가 있구나, 판사는 이렇게 대단하다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제멋대로 상상한 것이었지만 이 모든 것을 뒤엎는 현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형사재판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일본 재판을 접하게 되면 이렇게 느낍니다. (중략) 오늘 이 방에 들어서면서 어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당혹스러웠습니다. 제가 참여해온 회의들은 이런 분위기가 아닙니다. 영화 기획 회의가 이런 분위기라면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습니다. 법률과 영화는 다르겠습니다. 저는 전문가 여러분의 의견을 잘 이해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디 성과가 있었으면 합니다.”

특별부회는 30차례 회의를 거쳐 2014년 개선안을 발표한다.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사건의 조사 과정을 녹음이나 녹화토록 하거나, 국선변호를 구속 이전 단계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를 반영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2016년 일본 국회를 통과했고 2019년 시행된다. 이렇게 후진적인 일본 형사사법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우리 형사사법은 뒷걸음을 치고 있다. 식민지 이후 사법부는 검찰이 작성한 조서는 판사 앞에서도 부인하지 못하게 했다. 대법원은 2004년에야 부인이 가능하게 판례를 변경했다. 검사실에서 하던 형사재판을 이때야 법정으로 옮겨온 셈이다. 하지만 2015년 양승태 대법원은 부인은 가능하지만 믿지는 않겠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놓아 역사를 후퇴시켰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같은 영화가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좋았을 터이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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