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라서 행복했어..뭉클했던 '남북 탁구 통일'

김은진 기자 2018. 5. 4. 22:5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북 김송이, 5세트 접전 끝 분패 남북 여자 탁구 단일팀의 김송이가 4일 스웨덴 할름스타드 아레나에서 열린 2018 국제탁구연맹 세계선수권 여자 단체전 일본과의 준결승 2경기 도중 왼쪽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할름스타드 | AP연합뉴스

2월에는 얼음 위에서, 5월에는 녹색 테이블 위에서 남북이 하나가 됐다.

2월의 첫 만남은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어색했다. ‘급조’ 논란 속에 처음 만난 그들은 긴장했고 서로를 경계하며 어색하게 웃어야 했다. 평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열흘 이상 함께 훈련했지만 첫 경기를 뛴 뒤에야 ‘언니’가 됐고 ‘동생’이 됐다. 스위스전 0-8 참패의 아픔을 나눈 뒤 북한 선수 김향미의 생일파티를 열며 그제야 마음을 열었다.

5월에 탁구로 이어진 남북의 첫 만남은 사뭇 달랐다. 갑자기 이뤄진 만 하루짜리 단일팀이었지만 모두가 함께 웃었다. 어색함도, 경계심도 없었다. 남과 북의 선수, 감독, 관계자 모두는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듯 활짝 웃으며 손잡을 수 있었다. 한반도에 찾아온 따스한 봄처럼 세계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KOREA(코리아)’라는 이름으로 27년 만에 남과 북의 탁구가 한 팀이 돼 후회 없는 승부를 펼쳤다. 1991년 지바에서 현정화와 북한의 리분희가 함께해 여자단체전 8연패 중이던 중국을 무너뜨렸던 금메달의 영광은 재현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도 뜨겁게 하나를 느꼈다.

남북 여자 단일팀은 4일 스웨덴 할름스타드 아레나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준결승에서 일본에 0-3으로 졌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했기에 더 강한 마음을 모아 ‘강호’ 일본을 몰아붙였다.

일본 여자 탁구는 팀 랭킹 세계 2위다. 현재 5위인 한국 탁구가 정체된 사이 급성장해 ‘최강’ 중국을 위협하고 있다.

안재형 감독은 경기 전 미팅을 소집했다. 전지희, 유은총(이상 포스코에너지), 서효원(한국마사회), 양하은(대한항공), 김지호(삼성생명), 북한의 김송이, 김남해, 차효심, 최현화로 구성된 ‘코리아’ 선수단 앞에서 “중국을 이기고 우승했던 지바의 기적을 기억하자. 우리도 한마음으로 나서면 이길 수 있다”며 27년 전 ‘녹색 테이블의 반란’을 재현하자고 외쳤다.

1경기에는 귀화선수인 한국 에이스 전지희(세계랭킹 35위)가 나섰다. 일본에서 가장 랭킹이 낮지만 세계 7위인 이토 미마를 상대했다. 0-3(2-11 8-11 9-11)으로 졌다.

감독도 한마음 남북 여자 탁구 단일팀의 전지희(왼쪽)가 4일 스웨덴 할름스타드 아레나에서 열린 2018 국제탁구연맹 세계선수권 여자 단체전 일본과의 준결승 1경기 도중 안재형 한국 감독(가운데)과 김진명 북한 감독으로부터 작전 지시를 듣고 있다. 할름스타드 | AP연합뉴스

아쉬움은 2경기에 나선 북한 김송이의 매서운 드라이브에 흥분으로 바뀌었다. 세계랭킹 49위지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단식 동메달을 따낸 실력자 김송이는 ‘탁구천재’로 불리는 일본 최강 에이스 이시카와 가스미(랭킹 3위)와 대접전을 벌였다. 1세트를 4-11로 내줬으나 2세트에서 안정적인 랠리 끝에 11-6으로 역전했다. 3세트에서 8-11로 무릎을 꿇었지만 4세트를 듀스 접전 끝에 13-11로 가져와 마지막 5세트까지 이시카와를 몰아붙였다. 14-14까지 팽팽한 듀스 승부를 벌인 김송이는 결국 마지막 두 포인트를 내주며 세트스코어 2-3으로 패했다. 아쉬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떨리는 흥분이 채 가시기 전, 3경기에 남측 양하은(27위)이 나섰다. 세계 6위 히라노 미우를 맞아 2세트를 내리 뺏긴 양하은이 3세트를 11-9로 따내자 다시 ‘코리아’는 힘을 냈다. 작전타임에는 김진명 북한 감독이 양하은에게 적극적으로 주문을 하기도 했다. 결국 양하은이 4세트를 내주고 세트스코어 1-3(4-11 5-11 11-9 6-11)으로 지면서 복식 없이 단식만 5경기를 치러 3선승제로 끝나는 단체전에서 ‘여자 코리아’ 팀은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누구도 울지 않았다. 서로 어깨에 손을 얹고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수고했다”며 격려인사를 온 토마스 바이케르트 국제탁구연맹(ITTF) 회장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밝게 웃었다. 가장 큰 응원을 받은 김송이는 경기 뒤 “(단일팀이) 처음이니까 잘하려는 욕망도 강하고 팀에 유익한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좀 많이 아쉽다”면서도 밝은 소녀의 미소를 지었다. 선수들은 ‘다음’을 기약하기도 했다. 유은총은 “이제 떨어지게 돼 아쉽다. 그렇지만 슬픈 분위기는 아니었다. 또 볼 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초 대진상 8강전에서 맞대결할 운명이던 남과 북의 여자 선수들은 지난 2일 바이케르트 회장의 주선 속에 양측 관계자들의 뜻이 한데 모이면서 전격적으로 한 팀이 됐다. 만 하루의 남북 단일팀은 비록 결승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짧은 시간에 하나가 돼 가장 아름다운 3위로 기억되며 웃음 속에 대회를 마쳤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