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만난 단일팀에 '웃음 꽃' 피다

김은진 기자 2018. 5. 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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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자탁구 남북 단일팀이 4일(한국 시간) 스웨덴 할름스타드 아레나에서 열린 일본과 세계선수권 여자단체전 준결승전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EPA

2월에는 얼음위에서, 5월에는 녹색 테이블 위에서 남북이 하나가 됐다.

2월의 첫만남은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어색했다. 조별리그 상대국들조차 반대한 ‘급조’ 논란 속에 처음 만난 그들은 긴장했고 겁이 났다. 처음보는 서로를 경계하며 어색하게 웃어야 했다. 평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열흘 이상 함께 훈련했지만 첫 경기를 뛰고나서야 ‘언니’가 됐고 ‘동생’이 됐다. 스위스에 0-8로 참패한 뒤였다. 북한 선수 김향미를 위해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며 그제야 서로가 마음을 열었다. 평창에서 마지막을 나눌 때는 서로를 뜨겁게 안았다. 최유정, 엄수연, 김희원 등 단일팀 막내들은 “북측 언니들이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이제 그리울 사람들”이라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5월에 탁구로 이어진 남북의 첫만남은 사뭇 달랐다. 모두가 함께 웃었다. 대회중에 갑자기 성사돼 오히려 아이스하키보다 더 ‘급조’ 됐지만 어색함도, 경계심도 없었다. 남과 북의 선수와 감독과 관계자들 모두는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난 듯, 불과 며칠 만에 함께 활짝 웃으며 손잡을 수 있었다. 한반도에 찾아온 따스한 봄처럼 세계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KOREA(코리아)라는 이름으로 27년 만에 남과 북의 탁구가 한 팀이 됐다. 1991년 지바에서 현정화와 북한의 이분희가 함께 하며 여자단체전 8연패 중이던 중국을 무너뜨리고 금메달을 따냈던 세계선수권대회에 27년 만에 단일팀으로 나섰다.

남북 여자 단일팀은 4일 스웨덴 할름스타드 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단체전 준결승에서 일본을 만나 0-3으로 졌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했기에 더 강한 마음을 모아 ‘강호’ 일본을 몰아붙였다.

4일 (한국시간)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린 단체전 준결승전에서 ‘코리아’의 김송이 선수가 일본의 이시카와에 선수와 경기를 치르고 있다. EPA

일본 여자 탁구는 팀 랭킹 세계 2위다. 현재 5위인 한국 탁구가 정체된 사이 급성장해 ‘최강’ 중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5경기에 이어 우크라이나와의 8강전까지 6경기에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다. 랭킹 22위인 북한과 합세해도 넘기가 쉽지 않은 상대였다.

남북 여자 탁구 단일팀의 김송이가 4일 스웨덴 할름스타드 아레나에서 열린 2018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선수권 여자 단체전 준결승 2경기 도중 왼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할름스타드 | AP연합뉴스

안재형 감독은 경기 전 미팅을 소집했다. 전지희, 유은총(이상 포스코에너지), 서효원(한국마사회), 양하은(대한항공), 김지호(삼성생명), 북한의 김송이, 김남해, 차효심, 최현화로 구성된 ‘KOREA’ 선수단 앞에서 “1991년 중국을 이기고 우승했던 지바의 기적을 기억하자. 우리도 한마음으로 나서면 이길 수 있다”고 27년 전 ‘녹색 테이블의 반란’을 재현하자고 외쳤다.

1경기에는 귀화선수인 한국 에이스 전지희(세계랭킹 35위)가 나섰다. 일본에서 가장 랭킹이 낮지만 세계 7위인 이토 미마를 상대했다. 0-3(2-11 8-11 9-11)으로 졌다.

벤치에는 안재형 한국 감독과 김진명 북한 감독, 그리고 한국와 북한의 선수들이 한 명씩 섞여서 나란히 앉은 채 경기에 집중했고 소리쳐 응원했다. ‘혹시나’ 기대했던 첫 경기를 내준 아쉬움은 2경기에 나선 북한 김송이의 매서운 드라이브에 흥분으로 바뀌었다. 세계랭킹 49위지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단식 동메달을 따낸 실력자 김송이는 ‘탁구천재’로 불리는 일본 최강 에이스 이시카와 카스미(랭킹 3위)와 대접전을 벌였다. 1세트를 4-11로 내줬으나 2세트에서 안정적인 랠리 끝에 11-6으로 역전승, 3세트에서 8-11로 무릎을 꿇었지만 4세트에서 듀스 접전 끝에 13-11로 다시 승리해 마지막 5세트까지 카스미를 몰아붙였다. ‘코리아’ 선수단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팽팽한 접전, 5-5에서 내리 2점을 내준 김송이가 긴 랠리 끝에 이시카와의 범실을 유도해 7-7로 동점을 만들자 코리아 벤치의 함성은 최고조가 됐다. 남북이 하나가 돼 만든 함성과 박수는 일본 선수단의 응원을 압도했다. 이후 한 점씩, 대접전의 긴장감은 모두를 한 시선으로 끌어모았다. 14-14까지 팽팽한 듀스 승부를 벌인 김송이는 결국 마지막 두 포인트를 내리 내주며 2-3으로 패했다. 아쉬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떨리는 흥분이 채 가시기 전, 3경기에 남측이 양하은(27위)이 나섰다. 세계 6위 히라노 미우를 맞아 2세트를 내리 뺏긴 양하은이 3세트를 11-9로 따내자 다시 ‘코리아’는 힘을 냈다. 작전타임에는 북한의 김진명 감독이 양하은에게 적극적으로 주문을 하기도 했다. 결국 양하은이 4세트를 내주고 1-3(4-11 5-11 11-9 6-11)으로 지면서 복식 없이 단식만 5경기를 치러 3선승제로 끝나는 단체전에서 ‘여자 코리아’ 팀은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누구도 울지 않았다. 서로가 어깨에 손을 얹고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남과 북의 어린 여자 선수들은 “수고했다”며 격려인사를 온 토마스 바이케르트 국제탁구연맹(ITTF) 회장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밝게 웃었다.

당초 대진상 8강전에서 맞대결 할 운명이었던 남과 북의 여자 선수들은 지난 2일 바이케르트 회장의 주선 속에 양측 관계자들의 뜻이 한 데 모이면서 전격적으로 한 팀이 됐다. 다음날 1시간 50분 정도 합동훈련을 처음 치렀고 또 다음날에는 4강전을 치렀다. 비록 결승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짧은 시간에 하나가 된 ‘코리아’는 가장 아름다운 3위로 기억되며 웃음 속에 대회를 마쳤다. 한국은 2012년 도르트문트 대회 동메달 이후 6년 만에, 북한은 2016년 쿠알라룸푸르 대회 동메달에 이어 2회 연속 메달을 수확했다. 27년 만에 성사된 탁구 단일팀은 그렇게 짧고 강렬한 여정을 마무리 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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