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스토리] "내 책상, 사무실 아닌 현관 입구에 배치하다니"

2018. 4. 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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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 "공익제보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어요."

몇 년 전 회사 비리를 공익신고했던 황모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경험했던 바로는 대한민국 공익신고자 보호법 체계 아래에서는 비리를 알더라도 공익신고를 안 하는 게 낫다"며 "나는 공익신고 후 회사로부터 해고당하고 민사소송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익신고 전 회사 감사실에 조사와 문제 해결을 요청했지만 1년 넘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했다. 고민 끝에 외부에 문제를 알렸던 그는 "실명을 비공개 해도 공익제보자가 밝혀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최대로 해줄 수 있는 게 회사 복직인데 온갖 탄압과 박해, 왕따당하며 제대로 직장생활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비단 황모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단체 공익제보자모임은 29일 "공익제보자 명예회복과 처우개선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폐를 청산하려면 공익제보가 있어야 하지만, 사회의 부패와 부정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한 공익제보자들이 파면·구속되거나 긴 소송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각종 조사에 따르면 공익신고자 보호는 열악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조직 내 따돌림, 해고 및 징계 등으로 인한 사회적·경제적·정신적인 피해를 당하지만 마땅히 보호할 장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공익제보자에게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고, 보복성 인사 조처를 하는 회사에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익제보자들 대통령 면담 촉구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열린 공익제보자 명예회복을 위한 대통령 면담요청 회견에서 공익제보자 모임 회원들이 공익제보 사건 전수조사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hkmpooh@yna.co.kr

◇교수·연구원 80% "공익신고자 보호제도 부족해"

지난 2012년 2월, 한 대기업 통신사는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전화투표를 조작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수사결과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를 공익신고했던 김모 씨는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받고 출퇴근만 5시간 30분이 소요되는 지사로 전보조치됐다.

같은 해 10월 회사는 김모 씨의 병가 신청을 불승인하고 결국 해고 조치했다. 그로부터 4년 뒤 대법원의 보호조치 확정판결로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던 김모 씨는 "내가 한 행동에 후회는 없지만 남에게 공익제보를 권할 자신은 없다"며 "신고한 뒤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 공익신고자들이 처한 딜레마"라고 씁쓸해했다.

전문가들도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제도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가 국공립·사립대학 교수와 연구기관 박사급 연구원 62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 설문조사한 결과, '현행 공익신고 보호제도는 공익신고자 보호에 부족함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9%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공익신고 보호를 위해 개선이 가장 시급한 사항으로 '공익신고자에 대한 비밀보장'(34명, 54.8%)이 꼽혔다. 다음으로 '불이익 조치로부터 보호'(18명, 29%), '신변보호 강화'(5명, 8.1%),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상제도 강화'(3명, 4.8%) 순이었다.

작년 9월에는 공금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던 한 복지재단이 공익제보자를 지목해 모욕감을 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복지재단은 공익제보자로 지목된 직원 3명의 책상을 사무실이 아닌 현관 입구에 배치했다. 한 관계자는 "재단이 공익신고자 색출을 구실로 직원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공익제보자로 지목된 직원들 책상 [독자 제공=연합뉴스]

◇ 공익신고자 경제적 어려움, 건강 악화 겪어

인권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경제적 위기다. 인권시민단체인 호루라기 재단은 '내부공익신고자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에서 공익제보자 42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66.7%(28명)는 신고 이후 생계유지가 힘들거나, 소득 하락, 배우자의 경제활동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특히 응답자의 70%가 공익제보 직후 1년까지 심각한 불면증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좌절감, 분노, 극심한 우울증 등 감정적 변화에 시달렸으며, 응답자 59%는 자살 충동까지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김미덕 정치학 박사는 관련 보고서에서 “공익제보자들은 '파면·해고, 경제적 어려움, 가족 갈등, 건강 악화'가 하나의 공식처럼 보인다"며 "인권침해 실태가 생각보다 열악하고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포상금과 구조금 지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공익신고 접수 건수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총 2만4천73건이 접수됐다. 공익신고 보상금 상한액은 기존 10억 원에서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으로 2016년 1월부터 20억으로 상향 조정됐다.

'부패·공익신고자 보호 기금 마련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권익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6년까지 1억 원 이상 고액 보상금 지급은 1건도 없었다. 보상금 1건 당 평균 지급액은 80만 원 수준에 불과해 공익신고자가 체감하는 경제적 지원 효과는 적었다.

다만, 이런 문제점들이 지적되면서 권익위는 지난해 수입 주류 유통회사 부당 행위를 신고한 사람에게 1억2천400여만 원, 올해 3월에는 영상가요반주 업체들이 자신들의 담합행위를 자진 신고하기에 앞서 사전모의를 했다는 사실을 제보한 공익신고자에게 2억6천728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심준섭 중앙대 교수는 "포상금과 구조금의 지급도 늘려야 한다"며 "포상금은 2016부터 2017년 9월까지 총 4건에 대해 965만 원이 지급됐으며 구조금은 2011~2017년에 총 4건에 대해 100만 원이 지급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공익신고자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와 지원을 강화하려면 '공익신고자 보호기금' 등을 설립·운영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보상금 지급대상은 내부 공익신고자에 한정되며, 국가 및 지자체의 직접적인 수입의 회복 또는 증대를 가져왔을 경우 지급된다. 포상금은 내·외부 공익신고자가 대상이며 제도개선, 사회재난 예방 등 비금전적 처분이 공익증진에 기여하는 경우 지급된다. 구조금은 변호사 비용 등 공익신고 등으로 지출되는 비용에 해당한다.

◇"공익신고자 법으로 보호하는 방안 필요"

"미국 당국의 조사에 협조한 내부고발자 3명에게 888억여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19일(현지시간) 밝힌 내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SEC는 2016년 BoA 메릴린치에 고객자산 오남용 혐의로 벌금 4억1천500만 달러(약 4천440억 원)를 부과하는 데 도움을 준 내부고발자 3명에게 총 8천300만 달러(888억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EPA=연합뉴스)

보상금이 종전 최고액인 3천만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SEC는 "기록적인 보상금은 내부고발자가 당국이 심각한 법 위반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은 신고자에 대한 보상금 등 보상체계가 발달했다. 2012년 내부신고자법을 개정해 공익신고자는 금전적 손해, 의료비용, 변호사 비용 등을 보상받을 수 있다. 내부고발로 인해 각종 쟁송절차에 소요되는 비용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공익신고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내부고발자를 확실히 보호하기 위해 '임시구제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는 공익신고자가 법원의 판결이 날 때까지 소송 기간에는 고용계약 기간의 종료 여부와 관계없이 고용상태가 유지돼 신분보장을 받게 되는 제도다.

심준섭 교수는 "만약 기업이 공익신고자를 해고하는 등 불이익을 줄 경우 2천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지만,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되는 금액이 아니다"며 "권익위의 강제집행이나 조사권 등 대폭적인 권한 강화 방안들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 공익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 영국과 같은 분명한 고용상태 유지에 대한 신분보장 조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는 30일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결정의 미이행 시 이행강제금의 상한액(2천만 원→3천만 원)을 늘리고, 변호사를 통한 비실명 대리신고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익신고자 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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