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씀바귀·소쿠리·알뿌리.. 봄 사러 시장 가자

박근희 기자 2018. 3. 30. 04: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봄]
[Cover Story] 미쉐린 맛집 셰프·살림 전문가·건축가 .. 3인 3색 봄맞이 시장 투어
단골가게서 득템, 주인장 꿀팁까지.. 스타 셰프도 살림꾼도 "市場이 내 아이디어 창고"

"지금은 울릉도 자연산 산마늘(명이)이랑 땅두릅이 맛있을 때예요. 방풍나물이랑 냉이는 향이 진하니 입맛 없을 때 된장이나 간장 소스 살짝 넣어서 무쳐 먹거나 국 끓일 때 넣어 먹으면 좋고요. 지리산 하동 산취랑 쑥, 씀바귀도 봄나물 하면 빼놓을 수 없죠. 사실 유채는 꽃이 피기 시작하면 대가 질겨져서 맛이 없어져요."

“적어도 열흘에 한 번은 와요. 저한텐 학교 같은 곳이에요.” 미쉐린가이드에 실린 레스토랑 ‘류니끄’대표 류태환 셰프가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의 단골 나물집 ‘청정나물집’을 찾아 봄나물을 고르고 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미쉐린 맛집 셰프도 전통시장 나물 집 '나물박사' 상인 앞에선 고개를 끄덕끄덕, 귀를 쫑긋 세운 학생이 된다.

가로수길 맛집 '류니끄'로 '미쉐린가이드'에 2년 연속 실린 류태환 셰프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적어도 열흘에 한 번꼴로 류니끄가 있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성수대교를 건너 강북의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경동시장'에 간다. 교통 체증만 없다면 차로 20분 정도 거리다.

"싱싱한 제철 채소와 과일을 살 목적도 있지만 '학교' 가는 기분으로 레스토랑 브레이크타임을 이용해 가요." 류 셰프는 "시장에 나와 보면 지금 어떤 식재료가 제일 맛있는지 알 수 있다"며 "상인들이 좋은 식재료 고르는 법이나 조리법도 알려주는데 거기서 요리에 영감(靈感)을 얻는다"고 했다.

목욕재계하고 키 맞춰 가지런히 누워 있는 하얀 도라지, 다소곳하게 스티로폼 팩에 담겨 마트 진열장에 놓인 두릅 대신 이제 막 땅을 뚫고 올라온 듯한 투박한 자태의 냉이와 머위, 부지깽이, 두릅 등이 수북하게 쌓인 경동시장 나물 집은 봄 향기로 그득했다.

살림 전문가 이효재(왼쪽)와 건축가 최시영.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거나 식재료상에서 재료를 받아쓰기만 하면 생생한 제철 재료를 느낄 수 없어요. 정갈하게 다듬어진 재료로는 창의적 요리도 할 수 없고요. 나물 하나만 보더라도 원하는 크기와 길이, 색깔을 고를 수 있으니 시장을 사랑할 수밖에 없답니다." 류 셰프의 말이다.

류 셰프를 비롯해 각 분야에서 감각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문가 3명이 봄을 사러 시장에 갔다. 모두 시장 사랑이 각별하고 단골집이 있을 만큼 시장에서도 유명한 인물들. "제철 봄나물 활용 요리를 고민 중"이라는 류 셰프를 제기동 경동시장과 경기도 양평군 양평 5일장에서, "봄이면 소쿠리와 바구니 사러 시장으로 사뿐사뿐 나들이 간다"는 한복 디자이너 겸 살림 전문가 이효재씨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드디어 여름 알뿌리 식물 살 때가 돼 설렌다"는 '농사 짓는 건축가' 최시영씨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화훼공판장(양재꽃시장)에서 만났다. 3명이 봄 시장에서 고른 아이템을 구경하고 활용 팁도 들었다.

시장 마니아인 각 분야 전문가 3명과 봄 시장을 찾았다. 윗쪽부터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봄나물을 만져 보고 있는 류태환 셰프, 남대문시장 죽제품 전문점에서 대나무 도시락을 구경하는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양재동 aT화훼공판장에서 정원 꾸밀 알뿌리를 고르는 건축가 최시영. / 양수열·김종연·이광재 영상미디어 기자


[셰프의 봄나물 사냥] 류태환의 제기동 경동시장

고수는 고수였다. 3월 23일 오전 9시 셰프 복장 그대로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에 도착한 류태환 셰프는 잰걸음으로 NH농협은행 경동시장점부터 갔다. "여기서 먼저 장 볼 비용을 출금하고 화장실에 들른 다음 본격적으로 시장 투어를 하죠(웃음)."

ATM 기기에서 출금한 류 셰프는 들어온 문 대신 반대편인 ATM 기기 옆 화장실 쪽 좁다란 출구로 향했다. 건물의 반대편 출구로 나섰을 뿐인데 거짓말처럼 시장 속, 청과물상들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이 지름길을 이용하면 나물가게 밀집 골목 찾아가는 동선을 20분 정도 절약할 수 있어요. 여기서부터 저만의 코스가 시작되죠."

출구에서 50~60m쯤 갔을까. 그의 발걸음은 청정나물집(02-967-4051)이란 간판을 단 나물가게 앞에서 멈췄다.

마침 도매시장이 끝나 소매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던 주인 임경자씨가 류 셰프를 보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완연한 봄을 맞아 '봄나물 사냥'에 나선 류 셰프가 머위 잎을 살짝 뜯어 먹어 보고 울릉도 자연산 산마늘 향을 맡더니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가 생각났다"며 씨익 웃었다. 류 셰프는 나물을 고르며 주인에게 틈틈이 이것저것 물었다. 주인은 그때마다 류 셰프에게 나물 다듬는 법, 맛있게 먹는 법 등을 친절하게 알려줬다. 류 셰프는 "해외에서 요리를 배워 한국적 식재료에 대해 궁금한 게 참 많았는데 이곳에서 많이 배워간다"고 했다.

청정나물집 앞 국수 노점에서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운 류 셰프가 이어 간 곳은 인근의 청과물집 신재상회(010-6314-4422). 단내 풍기는 새빨간 딸기와 함께 대저토마토가 한창이었다. "대저토마토는 지금부터 4월까지가 제일 맛있어요. 푸르스름하면서도 주홍빛이 살짝 감도는 걸 골라야 달고 짭짤한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고요. 단단하면서 크기도 어린애 주먹만 한 게 대체로 맛있더라고요." 청과물 직원의 말에 류 셰프는 자두만 한 크기의 대저토마토를 몇 개 골라 담았다.


류 셰프는 지난 3년간 '쿡방'(요리 방송) 열풍을 철저히 외면하고 전국의 좋은 식재료를 찾아다니는 '산지(産地) 투어'를 꾸준히 했다. 18년 동안 요리를 해온 그만의 매너리즘 극복법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전국 주요 오일장도 돌아다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때마침 양평 5일장이 열리는 날(매월 3·8일로 끝나는 날)이라 내친김에 차를 달려 양평 5일장도 찾았다.

5일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고소한 기름내를 풍기는 튀김집 앞에 섰다. "개구리튀김은 없어요?" 빙어·더덕·참나물·미꾸라지 등 이색 튀김을 본 류 셰프가 묻자 튀김집 주인이 농(弄)을 던졌다. "개구리는 지금 출산하러 갔어요."

장 보고 나오는 길, 모퉁이 모종 집에선 실파 모종을 한 판 샀다. 레스토랑 앞 허브 텃밭에 심어뒀다가 필요할 때마다 뽑아서 쓸 용도란다. 특히 고기 요리 위에 곁들이면 파향이 은은하게 퍼져 일품이라고 했다.

"6년 전 가로수길에 파인 다이닝인 '류니끄'를 오픈할 땐 기술적이고 실험적인 요리를 선보이려 했지만 요즘은 요리할 때 재료의 진정성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류태환 셰프 추천 봄나물 3종

울릉도 자연산 산마늘: '명이'라고 불리는 산마늘은 일반인들도 봄에 즐겨 먹는 나물. 고깃집에서 반찬으로 내는 장아찌 스타일도 좋지만 울릉도 자연산 산마늘은 향이 좋아 고온에 살짝만 데쳐 오리엔탈 소스 등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전호나물: 잎이 당근 잎처럼 생긴 전호나물은 식용 허브 중 '처빌'과 비슷한 모양이라 요리 시 모양내기에 좋다. 향긋하지만 주재료를 해치지 않는 나물로 완성된 요리에 얹기만 해도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두릅: 두툼한 모양이 고급스럽고 씹는 맛, 향이 좋은 두릅은 데쳐서 먹는 게 진리다. 아스파라거스처럼 살짝 구워 생선구이에 곁들이거나 밥을 지을 때 콩 대신 송송 썰어 넣어 먹으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자연주의 살림꾼의 시장 나들이]이효재의 남대문시장

"남대문시장 '소쿠리 집'에 종종 가고,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엔 사랑하는 '굴비집'이 있어요. 황학동 시장에도 가끔 구경하러 가는데 봄이면 아무래도 남대문시장 '소쿠리 집'이죠."


자연주의 살림꾼으로 유명한 한복디자이너 이효재씨는 소쿠리·바구니 수집가. 봄가을이면 가방 대신 바구니를 들고 소풍 다닌다. 올봄엔 커다란 소풍 바구니도 사고 봄떡 쪄 먹을 대나무찜기(딤섬 찜기)도 하나 살 겸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나들이에 나섰다.

이씨가 단골집으로 추천한 남대문시장길 신흥상회(02-752-2977)는 한자리에서 1대 김종완씨부터 2대 김준모씨, 3대 김진섭씨까지 3대째 이어오고 있는 100년 노포(老鋪)다. 화문석, 돗자리, 죽 제품, 문발 등과 해외에서 수입한 왕골 가방, 라탄 제품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전체 4층 중 판매 및 전시장인 1~2층을 오가며 제품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던 이씨가 말했다. "여기 오면 전남 담양 대나무 숲에 서 있는 듯 기분이 보송보송해져요."

소쿠리, 바구니 '덕후'답게 주인과 죽 제품부터 공예 장인까지 해박한 지식을 공유하며 제품들을 살펴보던 이씨가 대나무 도시락통 하나를 들어 보였다. "이런 건 봄가을에 소풍 갈 때 도시락 싸서 넣어도 좋고 멸치 같은 건어물 선물할 때 직접 손질해 담아주면 센스 있는 선물이 될 수 있어요." 김밥 마는 도구인 김발은 생선구이를 얹어낼 때 깔개로 깔면 멋스럽다는 팁도 잊지 않는다.

신흥상회 2층엔 요즘 유행하는 '왕골 쇼핑백'인 마르쉐 가방과 라탄 미니 핸드백 등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다. 가죽을 덧댄 마르쉐 가방은 8만원대부터, 라탄 미니 핸드백은 3만원부터 다양했다. 이씨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커다란 갈색 바구니. "이건 와인과 도시락 담아 한강 소풍 갈 때 가져가면 좋겠어요. 소풍 갈 때 바구니가 좋은 점은 바닥이 평평해서 넣어둔 것들이 뒤엉키지 않는 거예요. 크게 흔들지 않는 이상 처음에 바구니에 넣을 때 모습 그대로 유지되는 게 바구니의 매력이랄까요? 큰돈 들이지 않고도 폼 나잖아요."

최근 스튜디오 겸 작업 공간을 서울 성북동에서 경희궁 인근으로 옮긴 이씨는 "마음이 어수선할 때마다 갔던 남대문시장과 가까워져 행복하다"며 '득템' 한 바구니를 들고 경희궁 방향으로 사뿐사뿐 걸었다.

효재식 초간단 봄떡 해먹기


재료: 떡가루(쌀가루) 300g, 물과 소금 가루 약간, 야생화(진달래·제비꽃), 대나무찜기, 깔개.

만드는 법

1 여러 번 체 친 떡가루 300g에 물과 소금 가루를 약간 넣은 뒤 쥐어서 뭉쳐질 정도로 반죽한다.

2 대나무찜기에 깔개를 깔고 ①의 반죽을 깔개에 편다.

3 칼끝으로 ②에 원하는 떡 크기의 선을 긋는다.

4 ③을 15분간 찌고 5분간 뜸 들인다.

5 ④의 김이 빠지면 깨끗하게 씻은 야생화를 떡에 얹는다.

[농사짓는 건축가 꽃시장 탐험] 최시영의 양재 화훼공판장

"봄엔 알뿌리(구근류 식물)죠. 겨울 땅을 뚫고 힘 있게 툭 솟아오른 튤립 싹을 보면 '아, 봄이구나!' 해요. 제겐 봄의 전령사 같은 식물이랍니다." 건축가 최시영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경기도 광주의 농장에 심을 알뿌리를 사러 28일 이른 아침 서울 양재동 aT화훼공판장 태광식물원(02-579-2249)을 찾았다.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하며 알게 돼 벌써 5년째 단골이란다.


태광식물원은 aT화훼공판장에서도 유일하게 구근류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 "알뿌리에 관한 한 없는 게 없을 정도"라는 게 최씨 설명이다. "튤립 등 봄에 꽃 피울 알뿌리 사기엔 이미 늦었어요. 이번엔 여름에 꽃 피울 알뿌리를 사러 왔지요. 깜빡하면 이렇게 한 계절을 놓쳐요." 올봄 새로 선보인 겹겹의 클레마티스를 비롯해 매장 구석구석 수놓은 알뿌리 식물들을 살펴보며 주인 백순자씨에게 부지런히 이것저것 물었다.

'하남 나무시장' '하남 꽃시장'이라 불리는 경기도 하남시 미사대로 '하남화훼단지'에도 농장을 오가며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르곤 한다. aT화훼공판장에 비하면 규모가 크진 않지만 '스타필드 하남'에서 가까이 있어 가기 편하다.

"나무시장이나 꽃시장에 나와 상인들과 얘길 나누다 보면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란 생각이 들죠. 어떤 식물과 꽃이 나왔는지 구경하다 보면 고정관념이 깨질 때도 있어요. 농장을 운영하며 건축하는 제게 나무시장과 꽃시장은 계절의 교과서 같은 코스랍니다."

1시간 동안 매장에서 주인과 꽃 이야기를 나눈 최씨는 클레마티스, 숙근 제라늄, 작약, 튤립 등을 여러 개 구입했다. "쿠르쿠마나 제라늄은 오래가서 좋아요. 한 번 심어 놓으면 넉 달은 충분히 버텨요. 특히 제라늄은 봄부터 서리 내릴 때까지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해요. 참 기특하죠."

최씨는 "꽃 키우는 입장에선 오래가는 꽃이 좋다"고 했다. "보라색 무스카리는 튤립과 함께 심어 놓으면 참 잘 어울립니다. 매년 3~5월 튤립 축제를 여는 네덜란드 리세의 쾨켄호프 공원에 가면 튤립과 함께 무스카리가 조화롭게 피어 있어요." 봄 정원 꾸밀 때는 여러 식물로 채우는 것보다 한 가지 식물을 조금씩 심어가며 군락처럼 꾸며 공간에 힘을 주라고 조언했다. "정원이 있다면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수크령이나 억새 일종인 모닝라이트 같은 식물 한 가지를 선택해 조금씩 심어가며 군락처럼 가꿔 보세요."

최시영의 구근 잘 키우는 노하우

1 구근은 배수가 잘되는 비탈진 땅에서 잘 자란다. 실내보다 정원이나 농장에서 키우길 권한다.

2 물기가 많으면 썩기 쉽다. 물을 자주 주는 건 금물! 겨울엔 뿌리를 캐내 양파 망과 같은 망에 보관했다가 시기가 다가오면 다시 심는 게 오래가는 비결.

3 구근을 심어 꽃 피우기에 실패했다면 차라리 꽃봉오리 상태의 화분을 사는 게 답이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