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맞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33번째 앨범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문학수 선임기자 2018. 3. 27. 17: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워너클래식스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고희(古稀)를 맞았다. 지난 26일은 그의 일흔번째 생일이었다. 이를 기념해 통산 33번째 음반 <아름다운 저녁>(Beau Soir)을 워너클래식스에서 내놨다. 27일 음반 발매를 기념해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씨는 “이제 음악가인 내게 중요한 것은 사랑과 평화”라고 했다. “(무대에서든 스튜디오에서든) 언제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연주했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라고도 했다.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는 정말 뜨겁게 살았죠. 그때 내게 중요한 것은 열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가지면서 삶에 변화가 생겼어요. 나만 생각하던 삶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 같더라고요. 2005년에는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를 중단해야 했죠. 은퇴를 하다시피 하고 줄리어드음악원으로 가서 교수 노릇을 했어요. 그때 힘이 됐던 것은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긍정적인 가르침이었어요. 저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는 없었지만 머릿속으로 계속 음악을 공부했죠.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33번째 음반을 낼 수 있으리라고는, 그때는 거의 상상하지 못했어요.”

워너클래식스 제공

6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정씨는 13세에 줄리아드음악원에 유학해 명교수 이반 갈라미언(1903∼1981)을 사사했다. 19세였던 1967년에 미국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해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공식적인 국제무대 데뷔는 1970년 영국 런던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앙드레 프레빈 지휘로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하면서였다. 그는 “지금부터 5분 뒤에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을 할 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1965년에 이자크 펄만이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걸 지켜봤습니다. 그와 저는 같은 선생님의 제자였어요. 하지만 저는 상상하지도 못했죠. 불과 2년 후에 그 콩쿠르에서 제가 우승하리라는 것을요.”

이번에 고희를 기념해 내놓은 음반은 프랑스 음악의 성찬이다.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맨앞에 수록했다. 이어서 몇 곡의 소품을 배치했다.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 포레의 ‘자장가’,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 등이다. 마지막으로는 특이하게도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보너스 트랙으로 담았다. ‘자장가’에 대해 정씨는 이렇게 말했다. “손자보다는 손녀를 갖고 싶은데 아쉽게도 아직 없어요. 아들 재곤이 부부가 딸을 낳았으면 좋겠는데.(웃음) 손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장가를 연주했죠.”

정씨는 “이번 녹음에 사용한 바이올린은 ‘막시밀리언 요제프’라는 별칭을 지닌 170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밝혔다. “크기는 좀 작지만 볼륨은 부족하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체력도 달리고 활에서 깨끗하지 않은 소리가 날 때도 있다”라면서도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음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애쓴다”라고 했다. “내 음악이 듣는 이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지 늘 생각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