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0년 無파업' 현대차 체코공장, 죽은 도시 살려냈다

노소비체(체코)=진상훈 기자 2018. 3. 1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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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은 현대자동차(005380)에서 더 오랜 기간 일하고 많은 경력을 쌓는 것입니다. 이 곳은 저를 포함한 체코의 젊은이들에게 경력을 키우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현대차 체코공장에서 조업 중인 현지 생산직 근로자들/진상훈 기자

지난 9일(현지시각) 체코 오스트라바시 인근에 위치한 노소비체. 수도 프라하에서 280km, 기차로 약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 소도시에는 현대차 체코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서 만난 체코인 생산직 근로자 라우에르 야로슬라프씨(26)는 “글로벌 시장의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의 일원으로 일하는데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체코공장은 현대차가 유럽시장에서 판매하는 소형차,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생산을 전담하는 생산기지다. 현대차는 지난 2008년 노소비체에 1조2000억원을 투입하고 60만평 규모의 부지를 조성해 체코공장을 준공했다. 현재 이 곳에서는 투싼과 i30, ix20 등을 생산하고 있다.

체코공장에서 만드는 차량은 독일과 영국, 스페인 등 유럽은 물론 호주, 뉴질랜드와 중동, 중남미 등 세계 각 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출범 이듬해인 2009년 14만대 수준이었던 생산대수는 현재 35만대로 약 2.5배 증가했고 근로자수도 약 2000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 3200여명으로 늘었다.

양동환 현대차 체코법인장(전무)은 “체코공장 출범 초기인 2008년에서 2009년은 금융위기의 여파로 유럽 자동차 시장의 경기가 악화돼 어려움이 많았다”며 “노사가 긴밀히 협력해 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면 출범 10년만에 높은 성과를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죽은 도시’도 살린 현대차 체코공장…도요타 제치고 현지 생산량 2위 업체로

지난 9일 노소비체는 동유럽의 겨울 날씨를 대변하듯 강추위와 찬 바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공장 내부는 조업에 여념이 없는 생산직 근로자들의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현대차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입은 ‘벽안(碧眼)’의 체코 근로자들은 각자 맡은 파트에서 사소한 대화조차 생략한 채 연신 땀방울을 훔치며 조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현대차 체코공장 전경/진상훈 기자

2017년말 기준으로 체코의 전체 자동차 생산량은 141만3881대. 현대차 체코공장은 35만6700대를 생산해 현지 생산순위 2위를 기록했다. 1895년 설립돼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체코의 국민기업 스코다(85만8103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도요타·푸조·시트로앵의 합작법인인 TPCA(19만9078대)는 큰 격차로 앞질렀다. 특히 TPCA가 현대차보다 훨씬 앞선 2002년부터 체코에 진출한 점을 감안하면 더욱 눈에 띄는 성과다.

체코 자동차 판매시장에서도 현대차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는 체코에서 2만1420대를 판매해 현지시장 점유율 7.9%를 기록했다. 1위는 8만4138대를 판매한 스코다, 2위는 2만6942대의 폴크스바겐이었다.

현대차가 체코공장을 조성하던 2008년 당시 노소비체 인근의 도시인 오스트라바는 주력 산업이었던 철강업의 쇠퇴로 몰락하고 있었다. 일자리가 줄어들자 젊은이들은 수도 프라하나 인근의 슬로바키아 등 다른 국가들로 떠났다. 그러나 현대차 체코공장 설립 후 매년 일자리가 늘면서 노소비체는 물론 오스트라바의 경제까지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3200여명을 고용하는 현대차와 함께 현대모비스(012330), 동희 등 동반 진출한 부품사와 협력업체의 고용 규모까지 합산하면 체코공장 출범으로 파생된 일자리는 2만여개에 이른다”며 “납세액도 현지 제조업체 가운데 2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 체코공장 성장 일군 원동력은 ‘10년 무분규’ 노조의 상생 의지

양동환 법인장을 포함한 현대차 주재원들은 체코공장이 출범 10년만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데는 현지 생산직 근로자들의 확실한 상생 의지와 노사의 협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체코공장 내부 벽면에 붙은 현지 생산직 근로자들의 품질경영 결의문/진상훈 기자

현대차 체코공장은 2008년 설립 후 10년간 파업을 포함한 노조의 쟁의 활동이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매년 임금협상을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협상을 시작한 지 1~2개월만에 원만히 타결에 이르렀다.

생산성도 매년 빠르게 개선되는 추세다.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체코공장의 차량 1대당 평균 생산시간(HPV·Hour Per Vehicle)은 지난 2014년 15.1시간에서 지난해 13.8시간으로 단축됐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올리버 와이만이 발표하는 ‘하버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회사들의 경우 평균 HPV는 20시간대 수준이다. 특히 지난달 폐쇄 결정이 내려진 한국GM 군산공장의 HPV는 체코공장의 4배가 넘는 60시간에 육박한다.

국내 자동차 회사 노조가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체코공장 노조 역시 체코금속노조(KOVO)를 상급 단체로 두고 있다. 그러나 각 산하 노조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국내 금속노조와 달리 체코의 자동차 기업들에게 금속노조가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현대차 체코공장 노조 역시 금속노조의 지침과 별개로 독자적인 협상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 체코공장이 10년만에 높은 성장세를 보이긴 했지만, 중간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2010년 이후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현지 자동차 시장의 경기둔화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그러나 회사의 사정을 감안한 노조가 임금협상에서 회사측이 제시한 임금안을 이견없이 받아들이면서 체코공장은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 노조 ‘통 큰 양보’에 더 높은 임금 인상률로 화답한 회사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노조는 회사측에 ‘통 큰 양보’를 했다. 1년마다 열리는 임금협상을 앞으로 2년에 한번씩 열기로 합의한 것이다. 매년 임금협상으로 서로가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협상 주기를 2년으로 늘리고 생산과 성장에 더욱 집중하기로 노사가 뜻을 모은 셈이다. 2년마다 열리던 단체협약 개정도 4년 주기로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현대차 체코공장은 지난해 11월 체코 국가품질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현지에서 확실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왼쪽부터 체코 산업통상부장관 이르쥐 하블리첵 (Jiri Havlicek), 현대차 체코공장 법인장 양동환 전무, 현대차 체코공장 페트르 바넥 (Petr Vanek) 이사, 체코 품질협회장 로베르트 슈르만/현대차 제공

노조의 결단에 회사도 확실한 보상을 했다. 체코공장 출범 후 지난 2016년까지 생산직 근로자들의 연평균 임금 인상률은 2~3%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협상에서 현대차 체코공장 노사는 4.6%를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스코다, TPCA 등 경쟁사들의 임금 수준을 감안하면서 10년간 빠른 성장세를 유지하게끔 뒷받침한 노조에게 주는 회사의 화답이었다.

확실한 노사 협력에 따른 현대차 체코공장의 성공은 동반 진출한 협력사들의 성장과 현지 고용 확대 등의 효과를 낳고 있다. 현대차와 함께 체코에 진출한 부품사는 총 35개 업체로 이 가운데 11개사가 폴크스바겐, 볼보 등 다른 유럽 자동차업체들과 신규 거래를 체결하며 현지 시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현대차는 체코공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 동안 주재원들이 담당해 오던 업무의 일부를 체코인 근로자들에게 맡기며 그 동안 생산직에 치우쳤던 고용의 범위까지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체코에서 현대차는 외국계 기업에 해당된다”며 “유럽 시장에 확실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전략 소형모델의 생산을 과감히 전담시킨 현대차, 낯선 외국 기업과의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노조의 상생 의지가 함께했기 때문에 체코공장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 체코공장의 성공은 같은 외국계 기업으로서 최근 극심한 노사 갈등과 생산성 하락으로 철수 가능성이 대두된 한국GM 사태에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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