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스토리] '건축계 노벨상' 수상한 인도의 90세 건축가

박수현 기자 2018. 3. 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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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의 40번째 영예는 인도 출신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자이자 발크리쉬나 도쉬(90)에게 돌아갔다. 도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최초의 인도 건축가이자 아시아로서는 여덟번째 수상자다.

시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은 7일(현지 시각) 성명을 내고 “도쉬는 60년이 넘는 활동 기간 100여채가 넘는 건물을 설계하면서 인도와 지역사회에 헌신했다”며 “그는 교육자이자 뛰어난 본보기로서 전 세계 건축가들의 모범이 됐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도쉬는 항상 건물에 인도의 역사·문화·전통 건축 양식과 함께 변화하는 시대상을 담는다”며 “그의 건물은 결코 화려하거나 트렌드를 쫓지 않고 건물이 위치할 곳의 지역적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해 설계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의 건물은 사회·환경·경제적인 면에서 지속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발크리쉬나 도쉬(90). / 프리츠커 건축상 웹사이트

수상 소식을 들은 도쉬는 “내 작품들은 내 삶과 철학, 그리고 건축 정신의 보고(寶庫)를 만들고자 하는 꿈의 연장”이라며 “이번 수상은 스승이었던 르 코르뷔지에(1887~1965) 덕분이다. 그의 가르침은 내게 건물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했고, 지속가능하고 전체적인 주거지에 적합하면서 ‘지역의 특성을 살린’ 현대적 접근을 찾도록 채찍질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도쉬는 또 자신의 성취를 인도의 도시와 경제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쉬는 CNN에 “나보다는 인도가 상을 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인도 정부와 관료들을 비롯한 도시 계획을 담당하는 관계자 모두가 ‘좋은 건축’의 존재를 알고, 지속가능한 건축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눈을 뜰 것”이라며 “그래야 비로소 도시화와 도시 설계를 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 국민, 특히 저소득층에도 영광을 돌렸다. 도쉬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난 지난 60년 동안 농촌에서 인도의 미래를 걱정하며 저가주택을 설계했다”며 “이제 이 모든 경험이 쌓여 내게 ‘우리가 여기까지 이뤄냈다’고 말할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내 평생 작품 활동의 목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라며 “집은 그 자체로 삶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각을 변화시킨다. 이제 그들의 삶은 달라졌고, 그들은 희망을 품게 됐다”고 덧붙였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이날 도쉬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모디 총리는 성명을 통해 “이 명예로운 상은 수십년간 사회에 크게 공헌한 그의 탁월한 업적을 인정한 상”이라고 밝혔다. 프리츠커 건축상 시상식은 오는 5월 캐나다 토론토의 아가칸 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이며, 도쉬는 상금 10만달러와 청동 메달을 수여받는다.

◇ 도쉬, 르 코르뷔지에 가르침 받아 ‘인도 건축의 아버지’로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왼쪽)와 도쉬. 코르뷔지에는 ‘인간을 위한 건축’을 행한 현대 건축의 위대한 거장이라는 평을 받는다. / 프리츠커 건축상 웹사이트

도쉬는 1927년 8월 26일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푸네에서 태어나 뭄바이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영국 건축학회에 들어가는 꿈을 안고 런던 유학을 떠났던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 거장 코르뷔지에가 인도 찬디가르·아마다바드 신도시 계획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고국으로 복귀했다. 이때 도쉬가 설계에 참여한 건축물에는 방직공업자협회 건물(1954)과 쇼드한 빌라(1956) 등이 있다.

1956년부터는 동료 건축가들과 회사(바스투실파·바스투실파 컨설턴트로 이름 변경)를 차리고 코르뷔지에에게서 받은 영향을 바탕으로 현지 감성과 건축환경이 어우러진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바스투실파 컨설턴트가 프로젝트를 맡은 건축물은 100여채가 넘으며, 그 종류는 공공기관부터 갤러리, 개인주택까지 다양하다. 도쉬는 이밖에도 1962년 이후 10년간 아마다바드의 인도경영대학원(IIM)에서 또 다른 세계적인 거장 루이스 칸(1901~1974)과 함께 작업했다.

도쉬는 1966년 아마다바드에 건축전문대학(SAP·CEPT대학으로 이름 변경)을 설립해 교육자로서의 입지도 다졌다. 1978년에는 자신의 회사 이름을 딴 재단을 세워 인도의 사회문화·환경적 상황에 맞는 건축을 위한 후진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 재단은 현재 인도 내에서 학계와 현업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도쉬는 이 같은 공헌과 함께 그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세계 각국에서 10여개에 달하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1년 프랑스 문화훈장을 비롯한 지속가능한 건축 글로벌 어워드 평생공로상(2007), 프랑스건축가협회상(2007), 도시계획·디자인 인도 총리상(2000), 아가 칸 어워드 건축 부문(1993-1995), 프랑스건축학회 금메달(1988), 인도건축가협회 금메달(1988), 인도 파드마 쉬리 훈장(1976) 등이다.

◇ 전세계가 극찬한 ‘포용적’ 건축관…핵심은 ‘인도’

인도 중부 인도르에 있는 아란야 커뮤니티 하우징(1989). / 프리츠커 건축상 웹사이트

도쉬는 미적 감각 외에도 환경과 기술 모두를 고려한 건축관으로 높게 평가받는다. 건물 곳곳에 테라스와 뜰, 보도를 배치해 건물 안과 주변의 햇빛은 적절히 차단하되 공기 순환로는 막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람이 편안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그가 세운 건축학교 CEPT와 방갈로르의 인도경영연구소(1992) 등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역 구성원의 사회경제적 지위도 그가 중점을 두는 요소 중 하나다. 대표 작업으로는 수확과 분배를 고려한 ‘자이푸르 도시 디자인(1984)’, 1인실 단위부터 넒은 주택 규모까지 저소득층과 중산층 거주자 8만여명이 거주하는 ‘아란야 커뮤니티 하우징(1989)’ 등이 있다. 특히 아란야 커뮤니티 하우징의 경우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단이 “세계에서 2번째로 인구가 많고 절대 빈곤율이 높은 인도의 국가적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해결함과 동시에 인도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인도 아마다바드에 위치한 산가스 디자인 스튜디오(1980). / 프리츠커 건축상 웹사이트

하지만 도쉬가 꼽는 최고의 역작은 따로 있다. 바로 자신의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연구소인 산가스 디자인 스튜디오(1980)다.

산가스 스튜디오의 구조는 반지하 형식으로 그 주변 지형에 완벽하게 녹아든다. 건물 자체는 평평하고 굴곡진 형태와 질감의 배열이 특징이며, 여러 곳에서 다양한 규모의 자연광이 스며든다. 지역의 더운 날씨를 고려해 입구 주변에는 평면으로 된 물가를 배치했다. 서로 다른 콘크리트 공간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일궈낸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동반하다’, ‘함께 움직이다’를 의미하는 이름, 산가스와 성질이 같다.

도쉬는 “산가스 스튜디오에 발을 들이면 그동안 방문했던 장소들의 기억이 겹치고,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이곳은 인간이 배우고, 잊고, 잊은 것을 또 다시 배우는 학교”라며 산가스를 “문화와 예술, 지속가능성의 안식처”라고 표현했다. 세계적인 건축 평론가 윌리엄 J.R. 커티스는 그의 저서 ‘발크리쉬나 도쉬: 인도를 위한 건축’에서 산가스 스튜디오를 두고 “길 가던 농부와 지역 노동자들조차 이곳을 찾아 쉬면서 이 건물을 즐겨 감상한다”고 쓰기도 했다.

☞ 프리츠커 건축상

프리츠커 건축상은 1979년 제정돼 올해 40회를 맞았다. 세계 최대 호텔 체인 ‘하얏트’를 소유한 미국 시카고 부호가문 프리츠커 일가가 “건축 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을 보여주어 인류와 건축 환경에 의미있고 일관되게 기여한 생존 건축가를 기린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특정한 건축물이 아니라 해당 건축가의 건축세계를 평가하는 상으로서,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아 흔히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상의 운영과 수상자 선정 절차 면에서도 노벨상을 모델로 한다. 매년 1월 말까지 후보자 추천을 받으며, 후보자는 국적과 인종, 종교 또는 이데올로기 등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심사위원은 건축·비즈니스·교육·출판·문화 등 각 분야의 전문가 5~9명으로 구성되며, 올해는 일본 건축계의 거장 세지마 가즈요 등 9명이 심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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