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한옥, 옛집과 새집의 공존

매거진 2018. 2. 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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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생활 정리하고 귀향해서 마련한 집

파독 간호사로 오랜 시간을 타국에서 보낸 건축주는 기억 속에 자리한 옛집으로 돌아와 여생을 준비한다. 한 개인의 역사가 오롯이 담긴,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할 집이다.


건축주가 최근까지 살아 온 한옥을 포함한 세 채의 건물. 잘 다듬어진 수목과 길들로 집주인의 성품을 짐작케 한다.  

옛집은 충남 서산시 해미읍의 일락산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었다. 평온한 황락호수까지 끼고 있는 산세 좋은 곳의 소박한 세칸집. 원래는 산을 지키던 사람의 임시 숙소로 쓰였다는데, 건축주는 오래 전 이 집에서 보낸 기억을 갖고 있었다.

파독 간호사였던 그녀는 젊은 시절을 타국에서 보내고 이곳으로 돌아왔지만, 너무 낡은 그 집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맞은편 땅에 한옥을 짓고 살았다. 옛집을 허물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추억의 가치는 그만큼 큰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 이 집을 고쳐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인근에 지어졌던 ‘제로플레이스’라는 펜션을 디자인한 지랩에 건축을 의뢰했다.

지랩의 이상묵 대표는 “전원에서는 대개 주변의 자연을 읽는 것으로 건축을 시작하지만, 이 주택은 접근 방식이 달랐다”며 “건축주의 의중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니 시간이 만든 장소성을 우위에 두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한다.

고목 사이로 보이는 낮은 돌담과 두 채의 집. 바깥채인 옛집과 안채인 신축 건물은 유리 천장으로 이어진다. 

장소가 가진 가장 큰 상징성은 돌담과 작은 집, 이를 둘러 싼 오래된 나무들이었다. 이들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돋보이게 하는 방안에 골몰했다. 오래 다녀 익숙한 길을 그대로 진입로로 쓰고 세칸집은 바깥채로, 새로 증축하는 건물은 안채로 활용하기로 했다. 옛집은 서까래를 복원해 리모델링하고 새집은 기도실과 2층의 메인 침실, 게스트룸으로 구성했다. 이 둘을 연결하는 갤러리 공간에는 건축주가 그동안 수집한 소품들을 전시해 집에 상징성을 더했다.

1940년대 지어진 옛집의 원래 모습. 따뜻한 색의 외벽에 단정한 지붕을 가진 세칸짜리 나무집이었다. 

이 대표는 “세칸짜리 옛집을 처음 봤을 때 이보다 완벽한 건축물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기존의 비례감을 그대로 살리고 원래의 따뜻한 색감을 유지하기 위해 깨끗하게 덧칠하는 선에서 외관을 수리했다”고 말한다. 실내는 반자를 철거하고 서까래를 복원해 옛 정취를 살리고 침실, 거실, 주방, 식당을 오픈형으로 풀어 낮은 천장고와 좁은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완하고자 했다. 여기에 단열을 보완해 공사를 마무리했다.

SECTION ①침실 ②거실 ③주방 ④식당 ⑥욕실 ⑦보일러실 ⑧다용도실 ⑨기도실 ⑩드레스룸 ⑪발코니 ⑫복도 ⑭갤러리 
갤러리에서 본 바깥채. 서까래를 복원한 옛집은 간결하고 소박하게 꾸몄다. 

증축부인 안채는 기존의 돌담이 가진 텍스처와 공간감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계획했다. 돌담 그대로를 건물 하단의 외장으로 보이게끔 하고, 상부는 흑고벽돌로 어둡게 마감했다. 이는 새로 지은 건물이 옛집을 더 돋보이게 하는, 병풍 같은 배경이길 바란 설계자의 의도가 깔려 있다.

안채는 간결하고 소박한 집을 원한 건축주의 취향을 반영해 군더더기 없이 꾸몄다. 실내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남쪽으로 큰 창들을 내고, 계단과 갤러리 천창을 통해 채광도 충분히 확보했다.

1층에는 주방과 식당의 공용 공간과 거실, 기도실을 일렬로 놓았고, 2층은 계단실을 중심으로 메인 침실과 손님방을 나눴다. 실내는 적삼목 각재와 편백 루버로 천장을 마감하고, 벽은 한지와 황토벽돌을 써 자연 고유의 색감이 세세하게 스민다.  특히 메인 침실의 테라스에서는 이 집의 역사나 다름없는 오랜 느티나무와 배롱나무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은행나무와 일락산 골짜기를 마주한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안채와 바깥채를 연결한 유리 천장 갤러리를 통해 실내로 들어선다.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적재적소에 창을 낸 것도 주효하다. 안채와 바깥채의 창은 같은 색과 동일한 디테일로 한 집 같은 통일성을 준다. 여기에 바깥채의 지붕을 오마주한 안채의 지붕선이 아랫쪽 한옥과도 어우러져 하나의 군락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유리 천장이 덮인 갤러리는 바깥채와 안채를 잇는 공간이자, 건축주의 지난 삶과 현재를 관통하는 하나의 매개체다. 또한, 산속 생활을 하는 건축주가 친지나 지인들과 모임을 하면서 새로운 일상을 꿈꾸는 미래의 공간이기도 하다. 현관으로 들어서 제일 먼저 마주하는 곳인 만큼 많은 의미를 담아 낸 것으로 보인다.

HOUSE PLAN

대지위치 ▶ 충청남도 서산시     |    대지면적 ▶ 718㎡(217.57평)     |    건물규모 ▶ 지상 2층    |    건축면적 ▶ 141.07㎡(42.74평)    |    연면적 ▶ 199.52㎡(60.46평)     |    건폐율 ▶ 19.65%    |    용적률 ▶ 27.29%    |    주차대수 ▶ 1대    |    최고높이 ▶ 6.68m

구조 ▶ 기존 건물 - 목구조 에이징 / 증축 건물 – 철근콘크리트    |    지붕마감재 ▶ 컬러강판    |    외부마감재 ▶ 화강암 자연석, 테라코트 슈퍼화인플렉스(테라코코리아), 흑고벽돌(왕도벽돌), 적삼목    |     총공사비 ▶ 약 3억8천만원(설계비 및 인테리어 제외)    |    설계 ▶ Z_Lab(노경록, 박중현, 이상묵) + Flat1103(강해천)    |    시공 ▶ 진용건축

안채는 벽난로가 있는 거실과 주방 뒤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건축주를 위한 기도실이 자리한다. 한옥에 살던 정서를 고려해 한지로 된 벽지와 문 등을 적용했다.   /   2층 발코니에서는 주변 나무와 산세, 골짜기의 바람을 늘 즐길 수 있다.
옛집이 지닌 실루엣을 돋보이게 하는 데 주력한 증축 건물. 산과 또 하나의 켜이자 배경으로 자리한다.

이 대표는 “기존 건축물의 양성화와 증축 등 꽤나 까다로운 절차로 완성한 프로젝트였다”며 “그동안 옛 건물을 재생하는 건축 작업을 해왔지만, 여기에 신축을 더해 아우르는 작업은 우리로서도 하나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가치있는 일이었다”고 자평한다.

어쩌면 건축이라는 하드웨어에 한 사람 생의 정서를 담아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할 지 모른다. 그래서 더 많은 고민과 치열했던 시간이 이 집에 담겨 있다. 그렇게 옛집과 새집, 오래된 한옥은 아름답게 관계 맺고 있다. 노년의 건축주와 열정 가득한 젊은 디자이너들이 함께 만든 서사시처럼.

PLAN      ①침실 ②거실 ③주방 ④식당 ⑤데크 ⑥욕실 ⑦보일러실 ⑧다용도실 ⑨기도실 ⑩드레스룸 ⑪발코니 ⑫복도 ⑬현관 ⑭갤러리 
황토벽돌이 돋보이는 안채 벽면을 따라 계단실이 자리한다.
가는 기둥과 보, 서까래가 장식의 전부인 바깥채의 오픈형 실내

INTERIOR SOURCE

내부마감재 ▶ 천연황토벽돌미니(왕도벽돌), 수성페인트(노루페인트) 댄디울, 실크벽지(LG하우시스), 온고을한지벽지     |    천장마감재 ▶ 삼목루버, 적삼목     |    바닥재 ▶ NDF 8884그레이 반무광(바론세라믹), 예그라나 빈티지 위 투명에폭시, 마천석 버너, 지아마루 녹차(LG하우시스)

욕실 ▶ 타일(바론세라믹), 아메리칸스탠다드    |    계단실 ▶ 멀바우    |    조명 및 실링팬 ▶ 메가룩스, 비엔비라이팅    |    욕실 환풍기 ▶ 힘펠    |    벽난로 ▶ 로고스(삼진벽난로)    |    주방 가구 ▶ 한샘유로     |     데크재 ▶ TARDIVONERO-M(바론세라믹)

안채 창으로 마주보이는 한옥과 옛집은 돌담을 따라 가지런히 놓여 있다.
지랩(Z_Lab) 노경록, 박중현, 이상묵
성균관대학교 선후배 노경록, 박중현, 이상묵 세 사람이 의기투합해 만든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기획·디자인·시공, 감리·스타일링과 브랜드 마케팅까지 총괄적인 프로세스 안에서 공간 브랜딩을 창출하는 데 목표를 갖고 있다. 제주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눈먼고래’가 대표작이며 2017년 굿디자인어워드를 수상한 ‘바구니호스텔’과 ‘브리드인제주’, ‘어라운드폴리’ 등 새로운 스테이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02-732-0106|www.z-lab.co.kr
플랫(FLAT)1103 강해천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건축을 대표하는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아파트(flat)’에서 거주하고 일하는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디자인스튜디오이다. 기존의 틀을 부정하고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또한 우리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새로운 생각과 문화를 담기 위해 고민한다. 집단의 일부로서 만들어지는 공간이 아닌, 개개인의 삶을 드러내어 생겨나는 유기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건축과 도시를 지향한다.   070-8863-0438|www.flat1103.com

취재_ 이세정  |  사진_ 김재경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18년 2월호 / Vol.228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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