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58] 폭탄먼지벌레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2018. 2. 13.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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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일명 '방귀벌레'라 불리는 딱정벌레가 있다. 정식 명칭은 '폭탄먼지벌레(bombardier beetle)'인데 잘못 건드리면 항문에서 피식 소리를 내며 매캐한 독가스를 내뿜는다. 냄새가 역겨운 건 둘째치고 엄청나게 뜨겁다. 펄펄 끓는 물의 온도인 100도에 달한다.

과산화수소와 하이드로퀴논을 복부 주머니에 따로 저장하고 있다가 위협을 느끼면 판막을 열어 배설강으로 내보내 한데 섞이게 하면 순식간에 끓어오르며 수증기 상태로 분사된다. 평범한 딱정벌레인 줄 알고 집어삼키려던 포식동물은 "어마 뜨거라" 하며 줄행랑을 친다.

찰스 다윈이 어렸을 때 이 벌레에 혀와 입천장을 덴 일화는 유명하다. 딱정벌레를 양손에 한 마리씩 잡은 상태에서 또 한 마리를 잡으려고 오른손에 쥐고 있던 딱정벌레를 입안에 잠시 털어 넣었다가 봉변을 당한 얘기가 그의 자서전에 적혀 있다.

최근 일본 고베대 생태학자들이 다윈이 겪었던 고통을 두꺼비는 어떻게 견뎌내나 연구했다. 놀랍게도 실험 과정에서 두꺼비가 삼킨 폭탄먼지벌레 중 거의 절반(43%)이 광명을 되찾았다. 두꺼비 배 속에 들어간 지 짧게는 12분, 길게는 1시간 47분 만에 끈적끈적한 점액에 휩싸인 채 토해진 벌레들은 제 발로 사고 현장을 빠져나가 17일에서 무려 562일 동안 제2의 삶을 누렸단다.

지금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경기를 즐기고 계신 분들을 위해 폭탄먼지벌레 핫팩을 개발하면 어떨까 싶다. 이처럼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자연이 먼저 개발해 놓은 원리나 기술을 베껴다 사용하고자 하는 시도를 '생체 모방' 또는 '자연 모사'라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싹트기 시작한 이른바 '청색 기술'을 탐구하는 이 학문 분야에 나는 '의생학(擬生學)'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하버드대 뷔스연구소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각축을 벌이기 시작한 이 새로운 분야에 우리 정부도 드디어 팔을 걷어붙였다. 다짜고짜 시장에 내놓을 기술에 코부터 박지 말고 기초부터 제대로 다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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