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정현' 발음 유감

강성곤 KBS 아나운서 2018. 2. 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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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곤 KBS 아나운서

그 이름을 만나면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정현 선수. 찾아보니 '나라 정(鄭)'에 '이슬 빛날 현(泫)'이다. 꼭 맞다. 아침 이슬처럼 빛나지 않았는가. 순하고 무던한 인상, 깜짝 반전을 선사한 '한국 영어'의 위엄! 그의 이름은 [정현]이 아니라 [정:현]이다. '정'이 장음(長音)이라 발음을 길게 해야 옳다. 호주오픈 내내 대부분의 방송 앵커가 그저 [정현]이라고 해 적이 실망스러웠다.

정(鄭)씨는 대성(大姓)이다. 2017년 기준 200여만명, 전체 성 중 인구로 따지면 5위다. 특히 그 발음이 뜻깊다. 10대 성씨 가운데 유일하게 장고모음(長高母音)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음 [ㅓ:] [ㅕ:] [ㅝ:], 이 셋은 혀와 입 모양이 달라지면서 독자성을 띤다. 혀의 위치를 조금 올리면서 내밀면 자연스레 입은 아래턱이 약간 앞으로 향하는 상태가 된다. 짧은 [ㅓ] [ㅕ] [ㅝ]보다 길고 그윽하게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검:찰]이라고 해야 서슬 퍼런 엄정함이 느껴지고, 벌받을 자는 [범:인] 해야 걸맞지 않나? [먼:곳]이라야 아득해 뵈고, 입었던 옷은 [헌:옷] 해야 그런 것 같다. [여:론] 해야 두루 묻고 들은 듯하고, [변:화]라야 정말 바뀌는구나 실감이 난다. 억울함은 [원:망]이라야 감이 잡히고 [뭔:가] 해야 사뭇 궁금해진다.

구미어(歐美語)가 억양·강세·어조로 말소리의 맛을 살리는 데 비해 한국어는 장단이 그 소임을 맡는다. 장단음을 지키고 살려야 한국어의 격과 멋이 드러나며 일상 화법도 세련되고 유창해질 수 있다. 장단은 읽기와 말하기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기술이다.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특강에 가곤 한다. 초롱초롱한 눈빛의 체코 여대생과의 문답이다. "어떻게 한국어 배울 생각을 했나요?" "중국말은 이상하고 일본말은 좀 싫었어요. 그런데 한국말은 소리가 참 예뻤어요." 한글이 올바르고 아름다운 한국어로 실현되지 못한다면 악보 속 모차르트와 다름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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