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사제보다 군용이 좋다"..'잇템' 대접받는 PX 상품들
육군 모 부대에 설치된 PX에서 부대 개방행사에 참석한 군인 가족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
똑같은 장갑인데도 군용 장갑을 끼면 손가락 끝이 시리거나 찢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부대 밖에서 구입한 장갑은 따뜻하고 질기다. 위장크림도 부대에서 지급한 것을 쓰면 잘 지워지지도 않고 피부 트러블도 발생하지만 사제 위장크림은 그렇지 않다. 군용 건빵에는 병사들이 엉뚱한 생각을 못하게 하는 성분이 있다는 인식이 퍼져 건빵 대신 초코파이를 먹었고, 군납 담배는 맛이 없다고 생각해 휴가 복귀하는 부대원이 가방 속에 담배를 넣어 몰래 반입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미 연합훈련이 열리면 미군 전투식량(MRE)을 얻기 위해 미군 장병들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주한미군 부대에서 밀반출된 미군 군복은 고급 제품으로 인식돼 인기를 얻은 반면 우리 군이 쓰던 군용품은 작업복 취급을 받기도 했다.
PX에서 판매되고 있는 남성 속옷들. 시중 가격의 3분의 1 가격이면서 품질도 좋아 인기를 얻고 있다. |
주부 A씨는 최근 지인을 통해 PX에서 판매하는 겨울 내의를 구했다. 가격이 1만6000원인 이 내의는 국내 유명 스포츠 브랜드에서 제작한 제품으로 시중에서 이와 비슷한 제품이 3~4배 이상 비싸게 판매된다. 원단은 상당히 부드러웠고 디자인은 심플했다. 보온성과 착용감도 좋았다. 그래서 “내의를 몇 벌 더 구해달라”고 지인에게 다시 부탁했다.
영하 17도를 넘나드는 혹한이 찾아오면서 군대 PX에서 판매하는 겨울용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격이 최대 3분의 1 이상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겨울용품은 핫팩이다. 핫팩은 추운 겨울에 손을 따뜻하게 해주는 손난로다. 개봉하면 공기와의 접촉으로 인해 열이 발생한다. 크기가 작고 쉽게 열을 얻을 수 있어 군대에서도 겨울철 경계작전을 비롯한 야외활동 시 필수품으로 여겨진다. 특히 혹한기 훈련 기간에는 잠들기 전 차가운 침낭에 핫팩을 여러 개 넣어 냉기(冷氣)를 없앤다. 겨울에 핫팩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에 PX에서도 겨울에는 충분한 재고량을 유지하고 있어 구하기가 쉽다. 편의점에서 파는 핫팩에 비해 열이 더 많이 방출되고 효과도 더 오래 지속되는 등 품질도 좋다. 때문에 겨울이면 여자친구 등 부대 밖 지인들의 부탁을 받아 핫팩을 대량 구매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PX에서 인기리에 판매되는 달팽이크림. |
PX에서 가장 인기있는 화장품은 달팽이크림이다. 포털에서 검색하면 ‘PX 달팽이크림’ ‘군대 달팽이크림’이 연관 검색어로 등장할 정도다. 달팽이 크림은 달팽이의 점액이 함유된 크림으로 피부 재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당 5만원 이상인 달팽이 크림을 PX에서는 5000~8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비싼 화장품을 필요한 만큼 구매하기 어려운 20대 여대생과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구입 개수 제한도 없어서 장병들이 선물용으로 대량구매하기도 한다. 군 관계자는 “PX에서 달팽이 크림을 10여개씩 사가는 병사들을 종종 본 적이 있다”며 “전역한 군 선배들이 ‘달팽이 크림 하나만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PX 판매대에 쌓여있는 제품들. 과거와 달리 품질 수준이 높고 가격은 낮아 장병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
오래 전부터 군에서 민간으로 흘러나오는 상품들은 우리나라의 생활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이후 주한미군이 들여온 서양식 문화는 군의 특성이 민간 생활상에 영향을 미치는 첫 번째 계기였다.
초코파이는 미군을 통해 들어온 미국 남부 지역 파이가 기원이다. 병사들의 중요한 간식거리이자 북한에도 전해진 명물로 자리잡았다. |
반면 우리 군에서 사용되는 제품이나 식단 등은 민간에서 각광받지 못했다. 군에서 지급되는 전투화는 자칫하면 발에 물집이나 무좀이 발생하고 굽이 잘 떨어지는 등 품질이 좋지 않고 불편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군 간부들도 동기들끼리 돈을 모아 사제 전투화를 구입하곤 했다. 건빵은 민간에서 호기심의 대상일 뿐, 즐겨먹는 것은 아니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전투복을 입는 것이 당연시됐다. PX에서 판매하는 상품 중 인기 있는 것은 맥주나 위스키 같은 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군 보급품의 질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면서 군 당국은 장병들에게 보급되는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옛날과는 달라진 장병들의 기호를 맞추려는 시도도 계속되는 중이다. 민간 업체들도 PX에 싸고 질 좋은 제품을 납품해 장병들의 기호를 충족하면서 군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효과와 대(對)군 이미지 개선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나폴레옹은 “반(反)혁명적 발상”이라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병들이 착용하는 군복을 화려하게 꾸미고 질을 높이는 작업을 진해 군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반면 2차 세계대전 말기 나치 독일이 만든 무장조직 ‘국민돌격대’는 군복조차 지급받지 못한 대원들이 제대로 싸우지 않은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군인들이 쓰는 물건의 질을 높이는 것은 장병 사기와 전투력 증진은 물론 민간에서 군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역할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PX 제품에 대한 인기가 지속된다면 군 안팎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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