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H&M 논란' 인종차별 광고는 왜 반복되는가

심윤지 기자 2018. 1. 18.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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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스웨덴 패션브랜드 H&M이 ‘인종차별 광고’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H&M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매장 17곳을 모두 일시 폐쇄했다. 이날 남아공 제2야당 경제자유전사들(EEF) 당원들이 H&M의 인종차별적 광고에 항의해 점포 2곳을 급습한 데 따른 것이다.

붉은 옷을 맞춰입은 EEF 당원 수십 명은 케이프 타운,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H&M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바닥에 널린 옷가지, 깨진 거울로 매장 안은 금세 난장판이 됐다. 시위대는 H&M의 남아공 철수를 주장했고, 경찰은 고무탄까지 동원해 이들을 해산시켰다. 시위는 사흘째인 16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H&M은 남아공에서 진행할 여름 광고 일정까지 모두 취소했다고 현지매체 더사우스아프리칸이 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H&M 매장이 인종차별 광고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습격을 받아 기물이 파손되고 옷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트위터 갈무리

■유구무언 H&M… 매장 공격에도 “죄송하다” 반복

사건의 발단은 지난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H&M은 흑인 어린이 모델에게 “정글에서 가장 쿨한 원숭이(Coolest monkey in the jungle)”라는 문구가 적힌 후드를 입혀 광고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즉각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누리꾼들은 원숭이라는 단어가 역사적으로 흑인 비하 용어로 사용돼왔음을 지적했고, 래퍼 위크엔드, 지이지는 H&M과의 협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모델의 어머니는 “이 옷은 우리 아이가 광고한 수백벌의 옷들 중 하나”라며 인종차별 논쟁을 “쓸데없다(unnecessary)”고 비판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아 결국 사과했다.

H&M측은 저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처음 논란이 불거진 8일 “상처를 받았을 모든 이들께 사과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H&M은 다음날에도 사과문을 발표하며, 문제가 된 후드 판매를 전면 중단하고 남은 제품도 재활용하겠다고 밝혔다. EEF가 매장을 공격한 13일에도 “우리는 어떤 형태의 인종차별이나 편견도 용납될 수 없다고 강하게 믿는다”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관련기사 : 흑인 어린이 모델에 “가장 쿨한 원숭이” 후드 입힌 H&M… 결국 사과

니베아가 지난 2011년 발표한 광고. 아프리카계 모델이 턱수염을 기르고 곱슬머리를 한 남자의 가면을 집어던지는 설정에 ‘재문명화하라(Re-civilize Yourself)’는 광고 문구를 덧붙였다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7년 도브가 공개한 비누 광고. 흑인 모델이 도브를 사용한 후 백인이 된다는 설정이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확산되자 업체 측은 “도브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다양성을 회사의 핵심 가치로 삼고 추구해왔지만, 해당 광고는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며 “상처를 입은 분들께 죄송하다”고 해명했다. 페이스북 갈무리.

■유서(?)깊은 인종차별 광고 역사

다국적 기업들의 인종차별 광고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도브는 흑인 여성이 자사 제품을 사용한 후 백인 여성이 되는 콘셉트의 광고를 제작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스페인 의류브랜드 자라도 2014년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 포로복과 비슷한 아동복을 제작해 비판을 받았다. 독일계 스킨케어 브랜드 니베아는 무려 3차례나 인종차별 광고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해 4월 “흰것은 순수하다”는 광고 문구가 극우 세력의 환호를 받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광고를 철회했고, 같은해 10월 흑인 여성 모델이 니베아 로션을 바르고 피부가 하얘진다는 설정의 광고를 제작해 또 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니베아는 2011년에도 아프리카계 모델이 곱슬머리에 턱수염을 기른 남자의 가면을 던지는 듯한 사진에 “재문명화하라(re-civilize yourself)”는 광고 문구를 사용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관련기사 : “흰 것은 순수하다” 인종차별 논란 낳은 니베아 화장품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선의’의 광고도 논란을 피해가진 못했다. 음료업체 펩시는 흑인 인권 운동인 ‘블랙 라이브 매터(Black Live Matter)’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4월 이를 소재로 삼은 광고 영상을 제작해 공개했다. 모델 켄달 제너가 경찰관에게 콜라 한 캔을 건네며 인종 간 화합을 이끌어낸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해당 광고는 “인종차별을 가볍게 묘사했다”는 비판 에 직면했다. 한 누리꾼은 “켄달 제너가 경찰에 콜라를 줬을 때 모든 것이 해결됐다. 그러나 내 흑인 친구가 비폭력 시위에 나섰을때 그들은 폭력배나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종차별을 다룬 광고조차 소수 인종의 관점에서 제작되지 않는다는 상황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왜 계속 반복되는가

인종차별 광고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논란 이후 기업들의 대응, SNS상에서 비판 여론이 전개되는 양상 역시 판에 박힌 듯 똑같다.

논란이 제기되면 기업들은 “악의는 없었고, 상처 받은 이들에게 죄송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한마디로 ‘단순 실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각의 변호도 이같은 기업 입장에 힘을 싣는다. 앞서 H&M 사례에서 아이 어머니가 해당 광고를 인종차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영국 미러의 칼럼니스트 사이라 칸은 “해당 광고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티셔츠를 입은 아름다운 소년뿐이다”며 “광고 비판에 동참하지 않으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는 상황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악의 없는 차별’ 그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는 “H&M 광고가 실수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이러한 실수가 되풀이되는 근본 원인으로 기업 내 인종 다양성 부재를 꼽았다. 신문은 “백인 어린이에게 친근함의 표시로 원숭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같은 단어를 흑인 어린이에게 썼을 땐 모욕이 된다. 경영진이 백인 일색일 경우 이러한 표현에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잡아내기가 극히 어려워진다”고 썼다. 광고의 인종차별적 맥락을 짚어내려면, 이사회나 광고 담당 부서의 인종 구성부터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부 언론은 문제의 광고를 제작하고 승인한 절차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했지만, H&M은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같은 주장은 수치로도 뒷받침된다. 미국계 헤드헌팅 업체 스펜서 스튜어트 가 2016년 S&P 500 상위 2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인종적 소수자가 이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그쳤다. 전체 관리자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8%, 히스패닉은 5%, 아시아계는 2%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이사회 내 다양성 확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인종이 관리자에 의해 대표되는 비율은 지난 5년에서 10년 사이 큰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H&M의 경우에도 스테판 페르손 회장을 비롯한 11명의 이사가 모두 백인이었다.

2014년 자라가 출시한 어린이 잠옷. 파란 줄무늬에 왼쪽 가슴에 그려진 별모양이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 포로복과 비슷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JewishNews 갈무리.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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