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시선]멧새소리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2018. 1. 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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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 백석(1912~1996)

백석은 이 시를 스물일곱 살에 발표했다. 숲처럼 짙푸르고 무성한 나이에 썼다. 얼굴에 혈기가 도는 나이에 썼지만, 이 시에는 겨울이 한가득 들어 있다. 명태는 함경도의 특산물. 처마 끝에 명태를 매달아 말리는 것을 시인은 본다. 몸의 등이 길고, 조금 마른 명태를 보고 시인은 명태가 자신을 닮았다고 말한다. 초췌하고 핼쑥한 자신의 모습이 명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꼬리지느러미에 얼음이 붙은 명태와 가슴에 고드름이 달린 자신을 같은 처지로 본다. 처지만 같은 것이 아니라 심정 또한 매한가지라고 말한다. 마음은 어떤 형편에 있는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저물어가고, 볕이 노루꼬리처럼 짧게 남아 있긴 하지만 차가운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에 빗대었다. 백석은 이 시를 객지인 함흥에 살 때에 썼다. 타향에서 느꼈을 쓸쓸함과 근심이 드러나 있다. 함흥 살 때의 생활을 기록한 한 산문에서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고 쓰기도 했다. 그런데 왜 제목을 ‘멧새소리’라고 했을까? 멧새소리는 고향에서 듣던 경쾌하고 정겨운 소리였을 것이니, 그 그리운 소리에서 아주 먼 곳 객지에서 느꼈을 시인의 깊은 객수(客愁)는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뼈가 시리도록 혹독한 추위가 닥쳐오는 날에는 이 시가 문득 생각난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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