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이 의학에 던지는 쓴소리

2017. 12. 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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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

[한겨레]

프로이트가 그의 분석 의자 옆에 앉아 있다. 정신병 환자를 병원에서 상담실로 옮기고, 무의식을 발견해 이후 정신과학과 심리학의 방향성을 제시한 그이지만, 그 또한 의 정신과 의사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미국 의회도서관 제공

2016년 초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분출된 한국 사회의 여성 억압과 혐오에 관한 이야기는 ‘메갈리아’의 ‘한남’에 대한 모멸적인 비방과 희화화, 이에 관한 남성 일반의 반발로 확산하여 갔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이 시점에서 출간된 것은 어찌 보면 구원과도 같은 일이었으리라.

물론 한국 사회에 내재하여 있던 여성에 대한 차별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 소설을 정답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이 있다. 왜 <82년생 김지영>이었을까? 한국 여성의 삶과 억압을 진솔하게 드러낸 최초의 소설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면, 그 전의 수많은 소설가와 문필가의 작품을 무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화자를 지혜롭게 선택한 것이 이만큼의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의 하나일 것 같다. 책을 덮고 나서야, 독자는 이야기를 진술하고 있었던 것이 김지영의 진료를 맡은 남자 정신과 선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읽어나가면서 군데군데 달려 있던 각주와 보고서를 닮은 문체 때문에 여러 번 갸우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서두부터 ˝김지영 씨는˝이라고 밝히고 있기에 소설이 김지영 본인의 목소리는 아닐 것임을 알 수 있었지만,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자가 누구인지는 소설 내내 모호하다. 흔히 말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관찰자 시점’이라고 보기도 어려운데, 김지영의 내면에 관한 묘사는 충실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관점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는 마지막에 가서 보고를 끝낸 정신과 의사의 독백을 읽고 나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글쎄, 김지영 본인의 구술인 편이 낫지 않았을까? 소설은 훨씬 더 내면 묘사에 충실해졌을 것이고, 더 많은 여성 독자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어 나가는 남성 독자의 어려움은 늘어났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남자 정신과 의사의 진술이 되면서 소설은 좀 더 다채로운 빛을 띠게 된다. 먼저, 소설은 남자 정신과 의사가 여성 환자를, 또는 의학이 질환을 규정하는 방식을 드러내 준다. 그리고 소설은 환자가 의사에, 사회가 의학에 품고 있는 희망의 조각을 살짝 들춰 보여준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화자, 정신과 의사

먼저 김지영이 환자로 규정되는 모습을 살펴보자. 김지영이 나타내는 ‘증상’은 사실 의학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여러 기사와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현실성을 강조하려는 소설은 김지영이 내보이는 증상과 충돌하면서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자신의 엄마가 되어 남편이나 사돈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나 딸이 되는 것은 억압되어 있던 욕구가 타인의 가면을 쓰는 것을 통해 분출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도입부에서 김지영 증상의 개별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는 ‘차승연’의 일화는, 김지영이 겪고 있는 것이 초현실적 빙의 현상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인격의 변화는 차치하더라도, 김지영이 남편 정대현과 차승연 사이의 비밀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우리가 무속의 신내림이나 종교체험의 신적 능력의 현현 장면에서 익숙하게 보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정신과 의사의 보고에서 알 수 있듯이, 김지영의 증상은 해리 장애(해리성 정체성 장애, 흔히 다중인격이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으로 어떤 계기로 인해 기억 등의 일부가 해리되어 마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가리킴) 또는 육아 우울증으로 규정된다. 의사가 김지영의 고백을 들으며 자신이 성급하게 진단 내렸다고 시인하긴 하지만, 그가 진단을 바꿀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상담, 항우울제와 수면제가 도움을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김지영의 진단을 빙의라고 내릴 수도 없는 일이기도 하고.

흥미로운 진술은 그 다음에 이어진다. 정신과 의사는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 전문의 아내가”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에서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고 말한다. 이어 자녀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증후군’(ADHD; 주의 산만, 활동량 과다, 충동적 행동, 학습 장애를 보이는 정신적 증후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잘 나가던 경력을 중단하고 육아에 매달리게 된 아내의 모습에 관한 의사의 진술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그가 여성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소설 맨 마지막, 병원에서 일하던 이수연 상담사가 출산으로 일을 그만두자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는 의사의 말은 그의 진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아니, 사실 그는 김지영의 삶을 들었지만, 알지 못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이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의사의 결론’은 소설 화자 고유의 것만이 아니다. 20세기 초, 정신질환에 대한 접근과 철학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또한 같은 보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하며 같은 원인이 있다면 동일한 결과가 반복될 것임을 말했다.

21세기 한국에 김지영이 있는 것처럼, 19세기 말 유럽에는 수많은 ‘히스테리’ 여성들이, 안나 오(O)와 도라가 있었다. 그들을 치료하던 프로이트 또한 환자를 이해했다고, 심지어는 환자 자신보다 프로이트 자신이 환자를 더 잘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 환자들은 상담가이자 치료자였던 의사가 자신을 오해했다고 밝혔다.

정신병 치료의 역사와 프로이트의 ‘오해’

미국 독립선언문 초안에 서명한 식민지 대표 중 한 사람이자 의사였던 벤자민 러시가 발명한 정신병 환자 치료를 위한 회전의자. WBUR 뉴스 제공

18세기 이전 소위 ‘광인’들은 치료를 위해 감금되었다.[1] 당시 광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나태, 탐욕, 정욕 등 악한 도덕성이었다. 따라서 광인에는 사회 부적격자로 분류되는 모든 계층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들에게 주어지는 치료란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는 고문이었다. 나태해진 정신을 깨운다며 뜨거운 물과 찬물을 환자의 머리 위에 번갈아 가며 쏟는 것이 대표적인 치료법이었다. 돌아다니는 뇌를 제 위치로 돌려놓는다며 환자를 커다란 통에 앉혀 놓고 통을 계속 회전시킨다거나, 체액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혈액을 뽑거나 설사 유도제를 주는 것이 당대 정신병의 ‘과학적’ 치료였다.

정신병원은 동물원처럼 관광 명소였고, 사람들은 정신병원을 방문해 환자들의 괴기한 모습을 관찰했다. 이런 정신병원에 감금된 환자 중에는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여성들도 있었다. 히스테리는 현재 별도의 질병이라기보다 조절되지 않는 감정 과잉과 신체 증상의 동반을 폭넓게 가리키는 용어로 이해되고 있다.[2] 그러나 히스테리는 고대부터 질환으로 기록되어 왔으며, 그 역사는 히포크라테스 이전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히스테리(hysteria)의 기원이 그리스어 히스테라(hystera), 즉 자궁인 것처럼 당시에는 자궁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옮겨 다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이것은 전적으로 여성의 질환이자, 성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들을 해방한 사람은 줄기차게 정신 질환자의 처우 개선을 주장하던 필리프 피넬이었다. 1795년 여성 정신병원으로 운영되던 파리의 살페트리에르 병원에 부임한 그는 히스테리 여성 환자들을 묶고 있던 결박을 풀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치료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 피넬을 계승하고자 했던 신경의학자 장-마르탱 샤르코가 최면 기법을 활용한 연구를 하면서, 그리고 그의 밑에서 잠시 수학한 프로이트가 꿈의 분석과 대화 치료에 기반을 두어 자신의 정신분석 이론을 발달시킨 무렵이었다.

프로이트는 성욕을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로 놓은 뒤, 해결되지 않은 욕구가 억압되어 잊힐 때 모든 정신질환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유사과학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국내에는 정신분석 치료가 자리 잡지 못하고 주로 문학비평 이론의 한 방식으로 유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후의 심리와 정신에 관한 이론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이었다는 점, 이후의 정신분석이 프로이트, 그리고 카를 융, 알프레트 아들러 등 이후의 이론가들을 계승 발전하면서 환자 치료에 힘쓰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신질환 약물이 다루는 “하드웨어”와는 달리, 정신분석은 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에 치료적 접근법을 마련한 최초의 시도였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의 원인이 정신에 있다고 생각했고, 빈에서 선배이자 조언자 조지프 브로이어를 만나 <히스테리 연구>를 출간했다.[3]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히스테리가 억압된 기억 때문에 발생한다는 이론을 정립하며, 그 근거로 대화 치료를 제시했다. 대화 치료란 억눌려 있던 기억을 말로 털어놓으면 환자의 증상이 해소된다는 관찰을 바탕으로 하여, 억눌려 있던 감정이나 기억을 분출시킴을 통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본 것을 말한다. 이전의 정신병 치료가 환자의 악한 기질을 없애기 위해 환자를 고문했다면, 드디어 정신병의 과학적 치료가 시작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었다.

프로이트가 그의 분석 의자 옆에 앉아 있다. 정신병 환자를 병원에서 상담실로 옮기고, 무의식을 발견해 이후 정신과학과 심리학의 방향성을 제시한 그이지만, 그 또한 <82년생 김지영>의 정신과 의사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미국 의회도서관 제공

이런 대화 치료의 정립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안나 오의 사례였다. 빈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셋째 딸로 태어난 안나는 “눈에 띄게 지능이 높고, 놀라울 정도로 사물을 빨리 파악했으며, 직관력이 뛰어”났으나 보통 교육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와 가정일을 도우며 지냈다. 반복적이기만 하던 집안일을 지루해했던 그녀는 스스로 “개인 극장”이라고 부르던 공상에 깊이 빠져들곤 했다. 1880년 흉막 주위 농양에 걸린 아버지를 병간호하던 안나는 쇠약, 빈혈, 식욕 감퇴, 심한 신경성 기침의 증상을 보여 브로이어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

브로이어는 계속하여 안나를 방문하면서 그가 나타내는 증상들, 모국어를 잊고 영어로만 말하고 비몽사몽에 빠지며, 환각에 빠지는 등의 증상들을 기록해 나갔다. 또한, 브로이어는 최면을 동원하여 안나가 상상으로 쌓아두었던 내용을 모두 들었다. 완전히 공상을 다 쏟아놓고 나면 안나는 진정되곤 했다. 안나는 이런 브로이어의 접근 방식을 대화 치료, 또는 “굴뚝 청소”라고 불렀다. 원인이라고 추측된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증세는 점차 호전되었고, “이런 방식으로 그의 마비된 수축과 지각 마비, 여러 시가 장애, 청각 장애, 신경통, 기침, 손떨림 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어 장애가 이야기를 함으로써 해소되었다.”

그러나 브로이어는 완전히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관찰하지 않고 치료를 중단했다. 나중에 프로이트는 한 편지에서 안나가 브로이어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상상 임신까지 하면서 치료가 중단되었다고 적었다.[4] 그러나 사실, 브로이어는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물론 브로이어와 안나 사이엔 정신적 유대를 넘어선 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보고서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상상 임신 사건이 벌어졌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뉴욕 타임스>의 기자이자 작가인 루시 프리먼은 안나의 “상상 임신”을 프로이트가 자신의 성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고 본다.[5] 그는 안나의 증상을 성적 히스테리로 규정하고, 이를 위해 브로이어의 치료 사례도 일부 수정하였다.

프로이트가 사전에 규정한 자신의 이론에 환자를 맞추려고 하는 모습은 그가 1900년에 치료를 담당한 도라의 사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6] 도라는 “이지적이고 호감을 주는 용모”를 가진 18세의 소녀로, 안나와 마찬가지로 심한 기침 발작과 호흡 곤란, 실어증을 나타냈다. 프로이트는 부모의 도움을 얻어 도라에게서 성적 외상의 근거들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착, 이웃 가정의 부부와 맺은 관계, 그 와중 14세 때 경험한 강제 키스 등이 도라를 복잡한 성적 갈등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이런 해석에 대해 도라는 “맹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도라의 “아니요”를 “예”라고 거꾸로 이해했다. 심지어 프로이트는 도라가 강제 키스를 당했을 때 성적으로 흥분하지 않았는지 캐묻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의 규정에서 여성은 남성과의 접촉에서 성적으로 흥분해야 하는 존재였다.

11주에 걸친 도라의 상담은 실패로 돌아갔다. 프로이트는 도라를 치료하지 못한 이유가 그를 치료할 당시 전이(분석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환자가 과거의 인물을 의사로 대체하는 현상)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휴스턴대학교 역사학과의 한나 데커 교수는 도라 사례를 프로이트가 10대 소녀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모든 증상을 성과 관계된 것으로 환원하여 도라를 고통으로 몰아넣은 기록이라고 본다.[7] 프로이트는 성적 욕구의 억압이라는 틀에 맞춰서 도라를 억지로 다시 해석했을 뿐이다.

미래 의학의 개별화 전략과 ′서사 의학′

<82년생 김지영>에서 나타나는 정신과 의사의 모습에 프로이트의 안나 오와 도라 사례의 해석이 겹쳐 보이는 것은 의료의 한계를 보여주는 예일지도 모르겠다.

치료를 위해 사실은 이해하지 못한 환자의 상황을 이해한 것으로, 다 알지 못한 생물학적, 사회적, 정신적 상황을 안 것으로 규정하고 넘어가야 하는 한계. 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틀에 맞춰 환자의 상태를 파악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틀이 대상에게 맞지 않는 한계 말이다. 이것을 표준화된 치료에 기반을 둔 접근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환자의 개별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해당 인구 집단의 공통점에만 초점을 맞춰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는 현재의 방식을 가리킨다.

하지만 김지영의 담당의가 보여주는 것처럼, 또 프로이트가 보여준 것처럼, 표준화의 방식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방식이 아닐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비슷하면서도 각자 다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2만 개의 유전자를 구성하고 있는 30억 개의 디엔에이(DNA) 염기쌍 중 하나만 잘못되어도 발생할 수 있는 유전 질환을 파악하고 이를 교정하기 위한 단일염기 편집(base editing) 기법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 오바마 미 전 대통령은 2015년 빅 데이터에 기반을 둔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유전자, 생체 정보, 질병 정보 등을 총망라하여 의료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 연구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의료의 움직임은, 과거 표준화된 접근의 한계를 인정하고 인간의 개별성을 다루려는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을 의료의 한계에 관한 지적으로 읽을 때, 새로운 의료에 대한 희망 또한 같이 떠오른다. 그것은, 김지영의 담당의가 보여준 것처럼 환자의 병력, 사회력, 가족력 모두에 귀 기울이며, 그를 바탕으로 환자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파악하여 사회에 들려주는 역할을 의료인이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이다. 물론 이 책은 소설이지만, 의료인이 자신이 만난 환자의 삶을 환자와 함께 드러냄을 통해 그 고통과 아픔을 밝힐 수 있는 작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꿈 또한 품게 되는 것이다. 의료인이 정신과를 넘어 다양한 질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남성, 여성 환자들에 관한 새로운 <82년생 김지영>을 저술한 것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이런 “서사 의학”이야말로 우리의 질환에 관한 인식과 이해를 바꿔 우리의 의료를 한 걸음 더 도약시킬 미래의 의학일 것이기에.

참고문헌

[1] 미셸 푸코. 이규현 역. 광기의 역사. 나남출판; 2003.

[2] Wikipedia contributors. Hysteria.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Nov 12, 2017. Available at: https://en.wikipedia.org/wiki/Hysteria. Accessed Nov 22, 2017.

[3] 요제프 브로이어, 지그문트 프로이트. 김미리혜 역. 히스테리 연구. 열린책들; 2003.

[4] Gilhooley D. Misrepresentation and misreading in the case of Anna O. Modern Psychonalaysis. 2002;27(1):75-100.

[5] Freeman L. Immortal Anna O. from Freud to feminism. The New York Times. Nov 11, 1979. Available at: http://www.nytimes.com/1979/11/11/archives/immortal-anna-o-from-freud-to-feminism-anna-o.html. Accessed Nov 23, 2017.

[6] 지그문트 프로이트. 김재혁, 권세훈 역. 꼬마 한스와 도라. 열린책들; 2003.

[7] Decker HS. Freud, Dora, and Vienna 1900. New York City: Simon and Schuster; 1992.

김준혁 치과의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대학원생(의료윤리학)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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