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한 옛 영화 한 편, 신작 열 편 안 부럽다

김성현 기자 2017. 12.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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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 재개봉·지각 개봉작 인기
2013년 34편 → 지난해 90편.. 멜로물·애니메이션 많아
영화사는 저비용 고효율 마케팅, 극장은 비수기 관객 확보에 좋아

영화 관객을 집계하는 영화진흥위 통합전산망 사이트에서 30일 파란이 일었다. '저스티스 리그'와 '오리엔트 특급 살인' '기억의 밤' 같은 신작이 즐비한 일일 흥행 차트에서 13년 전의 미국 로맨스 영화 '이프 온리'(감독 길 정거)가 6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2004년 국내 개봉 당시 80만 관객이 관람했던 이 영화는 29일 재개봉 당일에도 관객 1만4000명을 끌어모았다. DVD 출시는 물론 TV에서도 수차례 방영한 걸 감안하면 분명 이례적인 현상이다. 수입 배급사인 유니코리아의 권영환 이사는 "시간 여행과 멜로물의 결합이라는 이야기 구조나 남자 주인공의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주제가 여전히 한국 관객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극장가에 재개봉과 지각 개봉 바람이 유례없이 거세다. 2015년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이 32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뒤 영화계에서는 "잘 고른 옛 영화 한 편이 신작 10편 안 부럽다"는 말이 나온다. 영진위에 따르면 2013년 34편이던 재개봉 영화 편수는 지난해 90편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재개봉이나 지각 개봉하는 영화 편수와 관객 숫자 모두 증가할 것으로 영화계는 보고 있다.

'이프 온리'가 재개봉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면 지난 7월 35만명의 흥행 기록을 세웠던 '플립'(감독 로브 라이너)은 지각 개봉의 대표적 사례다. 소년 소녀의 첫사랑을 다룬 풋풋한 로맨스인 이 작품은 미국에서 2010년 상영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차일피일 개봉이 미뤄지다가 DVD로 먼저 출시됐다. 그런데도 7년 만에 국내 상륙한 뒤 관객들 사이에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청소년 버전 같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뒤늦게 흥행에 성공했다.

재개봉이나 지각 개봉하는 영화들을 살펴보면 일정한 패턴이 숨어 있다. 여름방학이나 연말에 접어들기 직전의 비수기에 주로 멜로물이나 애니메이션이 걸린다는 점이다. '이터널 선샤인'(2005), '노트북'(2004) 등이 극장가에서 사랑받는 멜로물이라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이나 '미녀와 야수'(1992)가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으로 꼽힌다. 최근 복합 상영관 CGV는 '뮬란'과 '몬스터 주식회사' '라이온킹' 등 디즈니 걸작 만화 20편을 기획전 형식으로 상영하기도 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최근 한국 영화에서 실종된 장르가 중간 예산 규모의 감성적인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물"이라며 "재개봉 작품들은 관객 수요는 있지만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장르의 공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옛 영화들이 꾸준히 개봉되는 건 수입 배급사와 극장의 이해관계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으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영화 시장 분석가 김형호씨는 "널리 알려지거나 호평을 받은 작품이 많기 때문에 수입 배급사는 저비용 고효율의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고, 극장에서도 상대적인 비수기에 연인과 가족 중심으로 안정적 관객 확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권투 영화 '록키'(1976)와 에드워드 양 감독의 대만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1991) 등 '고전 영화'로 인식되는 작품들도 재개봉하거나 지각 개봉하고 있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은 3시간 50분에 육박하는 상영 시간 때문에 26년 만에야 지각 개봉했다. 강유정 교수는 "1980~1990년대 비디오와 예술 영화 전용관을 통해 걸작을 접했던 영화광 세대를 겨냥한 고전 영화 재상영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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