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북 뜸북~오빠 생각' 남매 92년 만에 귀향하다

2017. 11. 2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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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1925년 11월 잡지 <어린이> 에 동요 입선작으로 '오빠 생각'이 뽑혔다.

국내 최초의 월간 수필잡지인 <박문> 의 편집 겸 발행인이기도 했던 그를 두고 아동문학가인 마해송은 생전에 '영주는 참으로 활자를 아는 사람이다. 영주에게서 이 재주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라고 평했을 만큼 당대 출판 편집의 귀재로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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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동요 '오빠 생각' 전시회
작사가 최순애·오빠 최영주 조명
'골목잡지 사이다' 주최 가빈갤러리

[한겨레]

동요 ‘오빠 생각’의 실제 인물인 출판인 최영주의 생전 모습으로, 1938년 월간 수필잡지인 <박문>의 편집 겸 발행인 때 모습으로 추정된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1925년 11월 잡지 <어린이>에 동요 입선작으로 ‘오빠 생각’이 뽑혔다. 입선자는 12살의 최순애(1914~98)로 경기도 수원시 화성 안동네에서 태어났다. ‘오빠 생각’은 5년 뒤 작곡가 박태준이 노래로 만들어 국민동요가 됐다.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의 소식도 없다던 손위 오빠는 최영주(1906~45)였다. 역시 수원에서 태어난 최영주는 배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니혼대학으로 유학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의 영향으로 귀국했다. 이후 수원에서 ‘화성소년회’를 조직해 소년운동에 투신한 데 이어 소파 방정환이 중심이 된 어린이 문학 운동단체인 ‘색동회’ 동인으로 활동했다. 국내 최초의 월간 수필잡지인 <박문>의 편집 겸 발행인이기도 했던 그를 두고 아동문학가인 마해송은 생전에 ‘영주는 참으로 활자를 아는 사람이다. 영주에게서 이 재주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라고 평했을 만큼 당대 출판 편집의 귀재로도 전해진다.

1978년 수원 화성의 장안문 앞에서 함께한 ‘오빠 생각’ 작사가 최순애(오른쪽), 아동문학가 이원수(왼쪽)씨 부부.

소년운동 등으로 일제의 사찰에 쫓겨 서울로 올라간 오빠 최영주는 출판인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최순애의 ‘오빠 생각’에서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은 채 1945년 폐결핵으로 숨졌다. 최순애는 생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때 오빠가 서울 가서 댕기를 사온다 했는데 오빠를 보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최영주·순애 남매의 <오빠 생각> 전시회가 수원에서 <골목잡지 사이다>를 펴내는 더페이퍼 주최로 27~29일 수원 가빈갤러리에서 열린다. 92년 만에 최씨 남매의 귀향인 셈이다.

더페이퍼 최서영 대표는 “이분들이 수원에서 태어났고, 무슨 일을 하셨는지 모르는 분이 많다. 이분들의 삶과 생전에 쓰신 글, 각종 책과 잡지를 모아 이분들의 삶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 이원수 문학관에서 얻은 자료와 최씨 남매의 흔적을 좇아 후손들로부터 수집한 각종 자료도 이번에 선보인다. 아동문학가 이원수는 최순애의 남편으로, 아내가 ‘오빠 생각’으로 입선한 이듬해 4월16일 역시 <어린이>에서 ‘고향의 봄’이 입선작으로 뽑혔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사진 더페이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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