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7년 만에 연 매출 30억 달성한 '기영자원' 박기영 대표, 고물 장사로 이뤄낸 큰 꿈

김동호 기자 2017. 11. 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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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 속에서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사업을 시작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연히 두려움을 느끼기 쉽다. 

‘기영자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기영 대표(29) 역시 7년 전에는 막막하기만 한 청년 중 한 명이었으나, 사업을 시작한지 7년이 지난 지금 연 매출 30억이라는 놀라운 목표를 달성했다. ‘고물 장사’로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신의 이야기가 고민 많을 또래 청년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박기영 대표를 만났다.

-열한 살에 풍비박산 난 가정, 남들보다 일찍 삶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박 대표    

박 대표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남들보다 일찍 삶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가정은 풍비박산 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빚쟁이들의 성화를 못 이긴 어머니는 7살 남동생과 박 대표를 남겨둔 채 친척집으로 피신했다. 이후 동생과 함께 겨우 비바람만 피할 수 있도록 지어진 간이 천막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당시 친구들에게는 다른 좋은 집에 들어가는 척하며 천막 집에 사는 것을 숨기기도 하고, 집이 더럽다고 술렁이는 주변 시선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집을 나간 어머니는, 주변 어른들의 말처럼 그저 돌아가신 줄로만 알고 지냈다. 그리움도 그저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박 대표는 전단지 배포와 배달, 서빙, 건설 현장 잡일, 주유원 등 닥치는 대로 일했고 월급을 받으면 아버지께 가져다 드렸다. 그저 언젠가 어머니가 돌아오리라는 기대 하나로 힘든 시간을 버텼다.

5년 후,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고 박 대표의 가족은 인천으로 가 정착했다. 어머니의 그간 힘겨웠던 세월에 대해 들으며, 박 대표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슴에 더욱 깊이 새겼다. 당시 어린 박 대표에게 돈은 소중한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다 함께 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고물 장수 수업’으로 시작된 꿈··· 초기 자본 2천만원으로 고물상 창업 

이후 23살이 되던 무렵, 박 대표는 1톤 트럭으로 고물 일을 하던 분을 만나 고물 수집과 매매 업무를 배웠다. ‘고물 장수 수업’으로 꿈을 향한 도움닫기를 시작한 것이다. 밤새 열심히 수집한 폐지를 아침이 되어 고물상에 넘길 때면 보람 있고 뿌듯했다. 차근차근 일을 배우며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고, 주위의 도움으로 2천만원을 구해 조그만 고물상 자리를 임대하여 창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을 시작하고 처음 1년간 실적은 마이너스 수준이었다. 박 대표는 나름의 분석 후에 해답을 찾았다. 10원대의 마진율로 승부를 내는 고물상 업무 특성상, 눈앞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으로 폐지를 납품하는 어르신들을 더 많이 보유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박 대표는 특유의 진실함으로 더 많은 고객의 신뢰를 얻었고, 당장 수익은 적어도 고객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 결국 수익을 증진시킬 수 있었다. 그저 남들이 하는 방식을 벗어나 자신만의 노하우를 찾은 것이다. 

-2017년 현재, 백여 곳 거래처 확보한 중견 기업 대표로 우뚝

현재 박 대표가 운영하는 ‘기영자원’은 고물을 분류하고 보관하는 두 곳의 야적 창고와 대형 고정 집게 2대, 5톤 집게차 3대, 3.5톤 집게차 1대, 1톤 트럭 3대를 보유하고 있다. 박기영 대표를 포함해 총 9명이 직원이 한 주간 백여 곳의 거래처를 상대하는 인천 북부 지역의 중견 고물상으로 성장한 것이다. 

가장 어려울 때부터 변함없이 함께해준 아내와, 26살이 되던 해 선물처럼 찾아온 첫 딸 세빈이가 박 대표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자식에게 절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같은 청년이자 기업 대표로, 성공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전하는 말

올해 스물 아홉 살의 박 대표는 같은 청년으로서 성공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린 나이에 사업에 뛰어들어 땀 흘리며 체득한 것들이다. 

박 대표는 첫 번째로 ‘적을 만들지 말라’고 전한다. 거친 삶 속에서 내게 응원을 보내고 함께 나아가는 존재는 친구이므로, 모두를 친구라 생각하고 끌어안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당장 눈앞의 이득을 쫓기보다는 먼 곳을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고물상 사업 초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수익을 늘릴 수 있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또한 박 대표는 “어떤 경우에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성공하면 직원의 공이고 실패하면 사장의 탓이라는 마인드를 강조했다. 회사의 대표는 직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묵묵히 끌어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멈추는 것은 곧 후퇴를 의미한다며, 늘 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 나이에 맞는 패기 있는 조언이다. 일단 부딪혀 보고 체험하는 것이 결국 내일에 대한 투자이고, 당장 내 속도가 느린 것처럼 보여도 미래에 돌아보면 훨씬 멀리 가 있음을 깨닫게 되리라는 희망찬 메시지도 전했다. 

스스로를 ‘개천에서 난 용’이라 표현하는 박 대표는 자신의 성공이 누군가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첫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 오늘도 다른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박기영 대표가 있기에 ‘기영자원’의 미래는 밝다.

/김동호기자 dong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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