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다오를 보이차왕으로 등극시킨 투기세력

서영수 감독 2017. 11. 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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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 감독의 Tea Road(5)

해는 짧았다. 해발 1600m를 넘나드는 망징징마이차구(芒景景邁茶區)는 산악지대답게 오후가 되면 산마루에 해가 걸려 주변이 금방 어두워진다. 산길을 벗어나기 위해 차를 달렸다. 차산(茶山) 밤길은 낮과는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어둠이 내리기 전 하산해 일반도로에 진입해야 안전하다. 해 지기 전 다음 목적지인 빙다오(氷島)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빙다오와 인접한 산 아래 마을 멍쿠진(勐庫鎭)에 햇살이 남아있을 때 도착했다. 멍쿠진은 차생산량과 재배면적이 윈난성(雲南省) 제1위를 자랑하는 린창(臨滄)지역에서 생산된 모차(毛茶)가 모이는 대규모 집산지인데도 숙소는 여인숙 수준의 빈관(賓館)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관광지 처럼 마을 소개하는 벽화 © 사진=서영수 제공

 

여인숙 수준의 빈관 © 사진=서영수 제공

 

린창은 다른 지역에 비해 보이차 원료로 사용되는 1차 가공한 모차 가격이 아직은 저렴해서 돈 많은 차 상인이 직접 멍쿠진에 와서 체류하는 경우는 드물다. 외지에서 주문받은 차를 운송하러 오가는 물류트럭에 의존하는 빈약한 상권이어서 번듯한 호텔도 없고 식당도 시장 구석에 있는 국수집과 차를 운반하는 트럭기사들을 위한 마을 끝 선술집이 전부다. 시장 안 좌판에서 파는 꼬치구이와 역한 냄새로 악명 높은 취두부(臭豆腐)로 끼니를 해결했다. 시장에서 어른 주먹 2개보다 큰 유자와 중국 특유의 따끈한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왔다. 중국은 대도시와 유명관광지를 벗어나면 아직도 냉장된 맥주를 만나기 힘들다. 

음료전용 냉장고에 맥주와 콜라를 진열해놓고 더운 날씨에도 전원을 켜지 않은 이유를 가게주인에게 물었더니 “차갑게 마시면 배탈이 난다”며 생활지혜를 알려주듯 진지하게 답했다. 대도시에서 자란 젊은이가 아니면 대부분 상온상태로 음료와 맥주를 마시는 대륙의 습관을 보면 중국인이 따뜻한 차를 가까이하는 것이 쉽게 이해됐다. “중국은 물이 나빠서 차를 마셔야한다”는 속설도 있지만 중국에는 수질이 좋은 지역과 험한 지역이 골고루 공존하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차가운 물을 마시지 않는 관습이 차 마시는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빙다오로 가는 새벽 산길 © 사진=서영수 제공
돈이 풍성해진 마을은 주택개량 공사 중 © 사진=서영수 제공

 

동트기 전 새벽길을 나섰다. 시반산(西半山) 허리자락 해발 1500m에 있는 빙다오라오차이(氷島老寨)는 멍쿠진에서 9km 정도 산길을 올라가야한다. 시반산은 동반산(東半山)과 더불어 만년설이 있는 방마따쉐산(邦馬大雪山, 해발 3233m) 산맥에 속한다. 빙다오라오차이는 주변 4개 자연촌락(自然村落)을 포함해 빙다오 촌민위원회를 구성한다. 빙다오 촌민위원회에서 생산하는 보이차(普洱茶)를 통칭해 빙다오 차라고 부르지만 희소성과 맛이 뛰어난 빙다오라오차이에서 만들어진 보이차 가격이 제일 비싸다. 린창의 라오반장(老班章)으로 불리는 빙다오 고차원(古茶園)은 600년이 넘는 맹고대엽종(勐库大叶种) 차나무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빙다오는 비엔다오(扁岛)로도 불리는데 ‘대나무 울타리로 마을 입구를 꾸민 동네’라는 뜻이다. 현지에서는 흔히 ‘푸른 이끼가 낀 큰 저수지’라는 의미로 빙다오(丙岛)라고도 부른다.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농촌이 된 빙다오로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산길은 속력을 높일 수 없었다. 자갈과 벽돌을 깔아 만든 도로와 부대끼는 타이어 소리는 요란했지만 미끄럼방지 효과는 있었다. 빙다오에 사는 소수민족은 라후(拉祜)족과 다이(傣)족이다. ‘호랑이를 잡아 구워먹는다’고 할 정도로 사냥에 능하고 용맹한 라후족은 고구려 유민의 후예라는 설이 있다. 태국 북부 산악지대까지 폭넓게 살고 있는 라후족은 전통가옥이 우리처럼 정겨운 초가집이다. 발음과 뜻이 같은 단어도 많고 심지어 어순도 똑같다.

빠오토우를 쓴 라후족 할머니 © 사진=서영수 제공
인가속에서 사는 고차수 © 사진=서영수 제공

 

길이 3m 정도 되는 검은 천으로 만든 빠오토우(包頭)를 머리에 두른 라후족 할머니 모습이 이채로웠다. 할머니는 초면이었지만 당신 집에 와서 차 마실 것을 권했다. 사양하기 어려웠지만 마중 나온 지인의 집을 향했다.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농촌이 된 마을은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10년 전만해도 42가구가 살던 빙다오라오차이는 현재 56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 주민 수 보다 많은 하루 평균 300명이 넘는 외지인이 방문하는 마을은 관광지처럼 변하고 있었다.

2017년 빙다오라오차이는 모차 1kg 가격이 700만원을 상회하며 보이차 최고가격을 갱신했다. 2006년 2만5000원에 1kg이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가격이 280배 뛰어올랐다. 보이차 가격이 급등한 2012년 1kg당 58만원과 비교해도 12배나 차이가 났다. 가격이 고공 행진하는 이유는 좋은 품질과 수요 대비 공급량이 워낙 적다는 것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주식시장처럼 투기세력이 가격상승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빙다오라오차이를 독점할 수 있는 자금을 보유한 차상들이 담합해서 가격 거품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빙다오를 보이차왕으로 등극시킨 투기세력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갖고 추적해본다.

빙다오 고수차 새싹 © 사진=서영수 제공
1차 가공한 모차 1Kg당 700만원~1천만원 © 사진=서영수 제공

 

투기세력은 미리 물색한 차산의 차를 몇 년 동안 저가에 구입해 꾸준히 사재기를 한다. 거대한 창고 가득 물량을 충분히 비축하는 동시에 현지인과 ‘꽌시’도 돈독히 한다. 지방 정부와 차농의 환심을 사기 위해 차농의 아이를 도시로 유학을 보내거나 아예 산골에 학교를 지어 기증하기도 한다. 험하고 비좁은 산길을 넓은 포장도로로 환골탈태시켜주기도 한다. 지방정부와 차농도 투기세력의 속셈을 전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찻값을 많이 준다는데 싫어할 농민이 어디 있으며 산골의 길을 포장해주는데 마다할 관료는 없다.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투기세력이 된 차상에게 적극 협조하게 된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한 관-민-기업 협동 모범사례로 만들어진다. 

모차가 충분히 비축되면 투기세력은 차농과 담합해 기존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정해 부당거래를 시작한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다른 차상과 외지인들은 급격하게 오른 찻값에 놀라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오를 줄 알았으면 진작 사둘 걸 하며 순진한 한탄을 늘어놓는다. 올해 봄 차를 못산 사람들은 지난 해 또는 해묵은 모차라도 시장에서 구하러 뛰어다니지만 씨는 이미 말라있다. 차를 미리 비축해 놓은 투기세력은 유통시장에 대량으로 차를 풀지 않는다. 다음해 찻값을 두 배 정도 올려놓으면 다른 차상들과 외지인들에 의해 모차 가격은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며 수직상승하게 된다.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비축해둔 모차로 100배 이상 차익을 남긴 투기세력은 돈을 거둬들이기만 하면 된다. 투기세력을 위한 태양은 밤에도 빛난다.​ 

서영수 감독 sisa@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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