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MBC 라디오 다시 문 연 날

2017. 11. 2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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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 랜덤플레이어 오명 벗은 MBC 라디오
총파업 78일, 라디오 파행 84일 만에 복귀
일부 디제이들 격한 감정에 울먹이기도

[한겨레]

“라디오가 멈춘 지 두 달이 지나버렸습니다. 가을을 도둑맞은 느낌마저 들어요. 많이 그리웠어요” (‘이루마의 골든디스크’ 애청자 장은영씨)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 MBC가 맞나요?” (‘배철수의 음악캠프’ 애청자 최영일씨)

<문화방송> 라디오 앱에서 20일 방송재개를 알리는 공지글. 문화방송 라디오앱 화면 갈무리

총파업으로 인해 지난 9월부터 음악방송으로 대체됐던 <문화방송>(MBC) 라디오가 20일부터 정상화 됐다. MBC 라디오를 그리워했던 애청자들은 제자리로 돌아온 디제이(DJ)들을 반겼고, 디제이들은 복귀의 기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멘트를 이어갔다. ‘MP3 랜덤플레이어’로 전락했던 전파에 다시 사람 목소리가 담겼다.

MBC 관계자들은 총파업 이후 ‘백색전파’(아무 소리가 담기지 않은 전파)를 내보낼 수 없어 음악방송으로 라디오 방송을 대체해 왔다. 몇곡 건너 한 차례씩 “방송사 사정으로 정규방송 대신 음악으로 대체 중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는 멘트만 내보냈다. (▶관련 기사 : MBC 라디오야? MP3 랜덤 플레이어야?)

<문화방송> 라디오 채널 에프엠포유(FM4U)는 파업 기간 동안 모든 프로그램이 중단돼 음악 프로그램으로 대체됐었다. 문화방송 라디오 앱 화면 갈무리

■ <에프엠포유(FM4U)> 디제이들의 복귀 첫 멘트

이날 복귀 방송의 첫 테이프는 오전 5시 <세상을 여는 아침 이재은입니다>의 이재은 디제이가 끊었다. 이재은 디제이는 “와 정말 오랜만이죠. ‘더 좋은 친구, 여러분의 마봉춘으로 돌아오겠다’며 마이크를 놓은 지 92일, 엠비시가 파업한 지 78일 만”이라며 “이 멘트 너무 하고 싶었어요. 세상을 여는 아침 이재은입니다”라고 MBC 라디오의 재개를 알렸다.

‘굿모닝 FM굿모닝FM 노홍철입니다’의 디제이 노홍철

오전 7시 오프닝 송을 따라 부르며 등장한 ‘굿모닝FM 노홍철입니다’의 디제이 노홍철은 “(인터넷) 게시판 로그인 아이디를 까먹었어요. 작가들이 아이디를 찾아줬는데 또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로그인을 못 하고 있습니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파업 전에) 이 시간에 훤했는데 지금 창밖을 보니 컴컴합니다. 창밖은 어둡지만 마음만은 밝습니다. 어두운 날이 가고 새로운 아침이에요. 기다려주신 여러분이 있기에 가능한 아침입니다”고 소감을 밝혔다.

노씨의 뒤를 이은 ‘오늘아침 정지영입니다’ 디제이 정지영 씨는 “매일 아침 라디오를 켜기도 불편하고 안 켜기도 불편해서 켜 놓으면 컴컴한 불 꺼진 집에 혼자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제야 가족들이 모여있는 느낌이 든다”며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는 노래 가사가 떠오르는 아침”이라고 말했다.

음악캠프의 배철수 디제이. 문화방송 라디오 제공

“방송사 사정으로 그동안 계속되던 음악방송을 중단하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재개합니다”라며 비장한 목소리로 라디오 복귀를 알린 ‘배철수의 음악캠프’ 디제이 배철수 씨는 ‘그때는 몰랐다 병’을 언급하면서 운을 뗐다.

그는 “당연한 게 아니었어. 아니었던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거였어. 그런 상황이 되지 않고는 깨닫지 못하는 걸까”라며 “9월과 단풍색으로 곱게 빛나던 10월을 함께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물은 깊어지고 산은 멀어져서 덩달아 생각도 골똘해졌습니다. 석양 지면 함께할 수 없어서 가슴엔 그늘이 짙어지고는 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사무치게 그리웠던 시간을 잊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밑천으로 삼겠습니다. 네,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고서야 알았습니다. 무엇이 배철수 음캠(음악캠프)의 버팀목인지를… 다시 만나서 참 좋습니다”라고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오프닝 멘트를 읽어내려갔다.

국내 최장수 음악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디제이인 배씨는 지난 9월4일 “저는 종교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간절히 바라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다시 만나도 좋은 방송. MBC 문화방송”이라는 말로 파업으로 인한 방송 중단소식을 전했다. 해당 프로그램의 작가와 피디가 파업에 동참하면서 더 이상 방송진행을 할 수 없게 되자 배씨는 감정이 북받친 듯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었다.

<에프엠(FM)데이트>의 정유미 디제이. 문화방송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오후 8시 마이크를 잡은 ‘정유미의 FM 데이트’ 디제이 정유미 씨는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오프닝 멘트를 하던 중 오열했다. 정씨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안녕이란 말 한마디에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아프진 않았는지, 한 번씩 지나가듯 나란 사람 생각했는지 궁금증이 담겨 있으니까요”라며 “항상 하던 인사가 오늘은 왜 이렇게 떨릴까요. 여러분 안녕. 우리 오랜만이네요”라고 말했다.

오후 10시부터 시작하는 ‘테이의 꿈꾸는 라디오’ 디제이 테이(김호경)는 “일상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 반가워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복귀의 기쁨을 담은 프로그램 첫 곡 선곡 ‘눈길’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잘 있었냔 인사가 무색할 만큼…” (김동률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오프닝 멘트에서 울음을 터뜨렸던 정유미 씨는 프로그램 첫 곡으로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내보내는 동안에도 펑펑 울었다며 추스르지 못한 감정을 전했다. 애청자들은 “오프닝 멘트와 음악을 듣는데 마음이 찡했다”며 정씨의 복귀를 반겼다.

이날 방송을 재개한 라디오 프로그램 디제이들은 지난 두 달 반 동안의 침묵을 깨는 음악을 고르는 데 고심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골든디스크’ 디제이 이루마는 마이클 부블레의 ‘홈(Home)’을 택했다. 이 곡은 전 세계 공연을 다니느라 떠돌다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작곡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는 “심사숙고해서 고른 첫 곡이었다”며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라디오는 돌아오고 싶은 집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배철수 씨는 블랙 아이드 피스의 ‘렛츠 겟 리스타티드(Let’s get restarted)’로 신나게 문을 열었다. 그는 3부 첫 곡으로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섹시 백(Sexy back)’을 틀어준 뒤 “신청곡 한 줄 사연 보고 빵 터졌습니다. 섹시 백이 섹시한 뒷모습인 줄 알았는데, 이 분 파업기간 중에 보낸 거예요. ‘섹시하게 돌아오실 것 믿고 신청합니다’라고 하셨네요”라고 사연을 소개했다.

심야 방송인 ‘비포 선라이즈’의 허일후 디제이는 “오늘의 키워드는 ‘승리’”라며 영화 <셀마>의 주제곡인 ‘글로리’로 방송을 시작했다. ‘푸른 밤’ 이동진 디제이는 “방송국에 오는 마음이 딱 그랬다”며 강아솔의 ‘마음이 앞서 가는 길’을 오프닝 곡으로 골랐다. 이씨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어떻게 인사드릴까 고민했지만 욕심은 내려놓기로 했다”며 “거창한 바람이나 수많은 사연은 접어두고 지금의 계획과 우리의 이야기를 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1월20일 MBC 라디오 방송 첫 곡 선곡표 목록

<세상을 여는 아침 이재은입니다> Viva La Vida/ 콜드플레이

<굿모닝 FM 노홍철입니다> 다시 만난 세계/ 소녀시대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 풍경/ 시인과 촌장

<이루마의 골든디스크> Home/ Michael Buble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 손 잡아줘요/ 이하이

<2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 100 years/ Five for fighting

<오후의 발견 김현철입니다> 원더풀 라디오/ 김현철

<배철수의 음악캠프> Let’s get re-started/ Black eyed peas

<정유미의 FM 데이트>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김동률

<테이의 꿈꾸는 라디오> Feels/ Calvin Harris

<푸른밤 이동진입니다> 마음이 앞서 가는 길/ 강아솔

<미쓰라의 야간개장> Run/ 에픽 하이

<이주연의 영화음악> Sunrise on lake pontchartrain/ Alexandre Desplat

<비포 선라이즈 허일후입니다> Glory/ Common

■ MBC 라디오 방송 첫 곡 모음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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