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환의 꿈꾸는 나무](7)쌀 한 톨·나물 한 줌..우주를 품은 생명들, 죽음과 삶 순환하는 고귀한 한 끼

신준환 | 동양대학교 초빙교수 2017. 11. 1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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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우리 밥상의 식물이야기

우리 선조들이 어려울 때마다 삶의 길을 물었던 고전인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여긴다’고 했다. 가난했던 조상들은 자식에게 쌀밥을 원 없이 먹이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라고 했다.

쌀밥은 라이신과 메티오닌 같은 아미노산이 다른 곡류보다 풍부해 맛이 있다. 그저 물에 말아 먹어도 괜찮고, 간장이나 고추장·된장·김치 등 소금을 이용한 발효식품과도 잘 어울린다. 식단이 서구식으로 많이 변한 지금도 잘 익은 김치에 쌀밥이 최고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밥을 좋아한 이유 중 하나는 고기 먹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소의 힘을 빌려 곡식과 채소 등 식물성 농작물을 키워 먹어야 했기에 소의 도축을 금하기도 했다. 지금도 한국인은 OECD 회원국 중에서 채소를 가장 많이 먹는다고 한다.

뜨거웠던 여름을 결실로 승화시킨 이 가을, 허허롭게 넓지 못하지만 들녘에는 잘 익은 벼가 황금빛으로 출렁인다. 주변 산기슭으로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껏 에너지를 비축한 나무들이 저마다 다채로운 색깔을 뽐내며 겨울을 준비한다. 사실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이야말로 하늘을 밥으로 삼아 햇빛으로 에너지를 합성, 우리들의 밥상에 하늘을 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밥상은 우리의 역사와 자연환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우주의 빛과 생명이 마주하는 자리이다. 만물이 교류해온 과정이 그대로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미나리, 쑥, 달래, 도토리, 밤, 마, 산마늘, 참나물, 더덕, 두릅, 머위 등은 우리나라가 원산으로 원래부터 먹어왔다. 벼는 동남아시아가 원산이지만 이미 충북 청원 소로리 유적의 1만여년 전 토탄층과 일산 가와지유적의 4500여년 전 토탄층에서 여러 개 발견돼 역사가 깊다.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무는 이미 서기전에 중국에 도입돼 삼국시대에 먹은 기록이 있다. 서유럽과 인도가 각각 원산지인 상추와 가지도 이미 삼국시대부터 밥상에 올랐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인도 원산인 오이가 등장했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오이와 가지, 무, 파, 아욱, 박 등 여섯 가지 채소를 시로 읊기도 했다.

우리 식물이 유명해져 중국으로 가기도 했다. 당나라시대에 잣은 신라의 것을 최상품으로 취급했고, 통일신라의 인삼과 천마는 황제에게 올리는 귀한 선물이었다. 저 멀리 중앙아메리카 지역이 원산인 고추, 토마토, 감자도 16세기 말이면 이 땅에 들어와 17세기부터는 식용으로 널리 활용됐다.

그러나 교류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현대의 상업적인 대량생산과 자본주의 무역은 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다양함은 사라지고 세계인의 주식은 옥수수, 쌀, 밀, 감자 등 몇 종에 집중됐고, 그 한 종 안에서도 대량생산에 적합한 품종만 적극적으로 생산하면서 인류는 다양한 재래종을 아예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이제 보통사람들도 예전의 왕보다 더 풍족하게 먹을 수 있지만 밥상 식물의 유전적 빈곤은 오히려 심화된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지면서 기후변화도 단순히 기후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량생산을 위한 단일 식물의 대단위 인공재배 환경은 기후변화와 맞물린 기상이나 병해충에 대응할 능력을 감소시킨다. 기후변화에 더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고, 재앙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지구의 생명과 문화가 이어지는 밥상이 위기를 맞는 것이다. 밥상의 위기는 곧 우리 생명의 위기이다.

밥상에 오르는 식물은 우리의 에너지원이자, 건강을 지켜주고 질병을 고쳐주기도 한다. <동의보감>은 밥상에 오르는 식물 대부분이 우리 몸을 치유할 수 있는 귀중한 약재의 역할도 한다고 강조한다. 오곡백과 모두 효능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쌀밥이나 흰죽도 위장을 편하게 하고 살찌게 하며, 속을 따뜻하게 하고 이질을 멎게 하며, 기를 더하여 답답한 것을 없애준다고 한다. 하다못해 창고에 오래 묵힌 쌀도 미음을 쑤어 마시면 설사를 멎게 하고 오장을 도와준다고 한다. <동의보감>은 배추, 무, 가지, 미나리, 부추, 상추 등 122종의 채소와 여타 식물 267종의 효능을 일일이 나열하며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다.

‘밥이 보약이다’ ‘감기는 밥상머리에 내려앉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실제 우리는 밥상에 오르는 식물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쌀밥이나 흰죽의 효능이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이해가 잘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속이 거북할 때 흰죽을 먹으면 속이 편해지고 원기가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류는 누대에 걸쳐 식물의 이런 치유 효능을 경험하고 또 기록해왔다.

향신료로 사용되는 초피나무(위)와 산초나무. 두 나무는 모양이 흡사해 혼동하기 쉽지만 초피나무는 가시가 마주나고, 산초나무는 어긋나게 난다.

그렇다면 식물들은 어떻게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은 물론 치유 효과까지 발휘할까. 식물이 치유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은 에너지를 생산해 힘차게 살아가는 것만 아니라 다른 생물과의 관계도 잘 풀어가야 되기 때문이다. 다른 생물이 좋아하는 물질을 생산해 나의 번식에 도움이 되게 하거나, 해가 되는 생물은 싫어하는 물질을 만들어 물리치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적으로면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다. 즉 물리칠 물질을 만들었는데 오히려 거기에 적응해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생물은 둘만의 관계를 이어가며 서로 진화하게 된다.

서로 다른 계통으로 발전된 이런 다양한 관계는 오늘날 우리에게 오묘하고 찬란한 생물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는 다양한 발전계통의 숲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온갖 물질을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치유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우리는 인류의 진화계통뿐 아니라 다른 진화계통의 물질까지 이용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우주 곳곳으로 연결되어 있고, 결국 작은 밥상일지라도 우주로 통하는 터미널이 되는 것이다.

인류는 인류만 자연을 향유하고 모든 것을 종말에 이르게 해서는 안된다. 자기만 좋고 다른 것은 무시해도 되는 생명은 없다. 생명은 서로 의존해서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선 인류의 고유한 상상력을 키우는 것을 넘어 인류가 상상하기 어려운 것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인공지능과 인류의 관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공지능 시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연과 인류의 관계에서도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탈피해야 한다. 나무나 물의 상상력까지도 필요한 것이다.

지금처럼 자연을 왜소하게 만들면 인류도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현대는 환경오염에 따른 발암물질, 중금속, 환경호르몬 등의 악영향이 크게 우려되는 실정이다. 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인간 사회의 힘이 커질수록 그만큼 자연의 건강을 유지시키고, 밥상에 오를 식물의 다양성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다행히도 요즘 뜻있는 요리연구가들이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식물 위주의 다양한 먹을거리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나무는 풀보다 더 오래 살기 때문에 더 많은 환경변화를 겪고 더 다양한 병해충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더 다채로운 물질을 품고 있다. 이런 나무의 순이나 어린 잎을 먹을거리로 다양하게 개발하면 좋을 것이다. 이미 구기자나무나 다래의 순은 그 독특한 미감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생강나무의 어린 잎도 나물로 먹거나 장아찌를 만들기도 하고, 튀각이나 쌈으로 먹기도 하며, 전을 부치거나 차로 마시기도 한다. 느티나무, 느릅나무, 시무나무 잎은 예전에 먹을 것이 부족할 때 양을 불리기 위해 떡에 넣어 같이 쪄 먹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산에서 뜯어와 시장에서 홋잎나물이라고 파는 것은 화살나무냐, 회잎나무냐 논란이 있지만 어느 것이든 무방하다. 화살나무(Euonymus alatus)는 줄기와 가지에 2~4줄의 날개가 뚜렷하게 발달하고 화살 같은 모양이라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날개가 없는 회잎나무(Euonymus alatus for. ciliatodentatus)도 학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살나무와 품종(for.) 수준에서만 다르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 생물학자들이 종 수준은 고사하고 변종 수준의 차이도 되지 않을 때 품종으로 분류한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이들을 섞어먹으면 항암 효과가 있다는 민간의 구전도 기억해둘 만하다. 나아가 이들은 아담한 떨기나무로 자라고 단풍이 곱게 들기 때문에 집 주변에 심어놓으면 색다른 호사도 누릴 수 있다.

매운탕, 김치에 향미료로 쓰는 산초나무와 초피나무도 모양이 비슷해 많은 사람들이 혼동한다. 하지만 산초나무(Zanthoxylum schinifolium)는 가지에 가시가 어긋나게 분포하고, 초피나무(Zanthoxylum piperitum)는 턱잎이 변한 가시가 잎자루에 바짝 붙어 마주난다는 사실을 알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민간의 이용 부위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산초나무는 종자껍질은 물론 종자도 먹는다. 하지만 초피나무는 종자껍질은 산초나무보다 좋아하면서도 종자를 먹는 경우는 드물다. 경상도에서는 종자를 갈아서 구충제로 쓸 뿐이다. 또한 초피나무의 잎은 특유의 향기가 있어 어릴 때 음식재료로 쓰기도 하고, 나무껍질은 찧어 냇가에 풀어 물고기를 잡는 데 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산초나무는 종자로 짠 기름이 유명하다.

그런데 가죽나무 경우에서 보듯이 세월이 흐르면서 안 먹던 것을 먹기도 한다. 참죽나무(Cedrela sinensis)는 새순이 향기롭고 맛있어 연한 순을 따 날것으로 무침도 하고 고추장에 무쳐 튀김도 만들어 먹는다. 참죽이란 대나무처럼 순을 먹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죽나무(Ailanthus altissima)는 먹을 수 있는 참죽나무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창복은 <수목학>에서 “본래 죽나무(참죽나무)와 비슷하므로 가죽나무라고 하였지만 어느덧 가중나무(假僧木)의 뜻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우철은 <한국 식물명의 유래>에서 가죽나무는 가중나무의 다른 이름으로 “참중나무의 순은 절의 스님들이 튀김을 만들어 먹는 데 비해 이 나무의 순은 먹을 수 없다는 데서 가짜 중나무라는 뜻”이라고 했다.

참죽나무는 멀구슬나뭇과에 속해 향기를 지니고 있지만 가죽나무는 소태나뭇과에 속해 쓴 물질이 들어 있어 먹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죽나무의 잎도 사람들이 제법 좋아한다. 오히려 튀김은 참죽나무보다 가죽나무의 순이 더 좋다는 사람도 있다. 아마 요즘에는 기름진 고기를 많이 먹으니 커피를 좋아하는 것처럼 오히려 쓴 성분에서 색다른 맛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나물 하나에도 변화무쌍한 자연이 담겨 있고, 인간 역사의 흐름이 이어진다. 생물이란 남을 먹으며 나의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할 때, 밥상은 죽음과 삶을 순환시켜주는 자연의 심장이요 옛사람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역사의 허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먹는 것을 귀하게 여기면서 내 몸으로 온전히 받아 살려내야 한다. 함부로 음식 쓰레기로 버린다면 내 시대는 아닐지라도 자손들은 반드시 그 화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신준환
전통 생태 지식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산림생태, 생물다양성 보전 등을 연구하고 있다. <다시, 나무를 보다>, 어린이 그림책 <나무는 언제나 좋아> 등을 출간했다. 국립수목원장을 지냈다. 동양대학교 초빙교수다.

<신준환 | 동양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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