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읽다] (16) 경기도 화성 - 新舊 어우러져 살지요
[경향신문]
경기도 화성시는 길이 열리는 도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제부도 바닷길, 매향리에서 궁평항까지 10㎞에 이르는 평화의 길, 정조 임금을 따라 걷는 효의 길이 있다. 효의 길은 동탄으로 이어진다. 화성시는 옛것과 새것이 다채롭게 어우러진 무지개가 뜨는 도시다.
■ 자연의 시계에 맞춰 사는 도시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제부도는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하지요. 제부도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요즘 도시재생이 화두인데 낙후된 관광명소도 리모델링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지요.” 화성시청 백진현 팀장은 “제부도 해안산책로와 문화공간이 올해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과 독일의 레드닷 디자인상까지 받았다”며 “아마 직접 와보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제부도로 들어가기 위해 바닷물이 들고 나는 ‘물때(간조와 만조 사이의 시차)’를 확인했다. 바다를 가르며 차로 2.3㎞를 달리는데 시간에 갇혔다 풀려난 검붉은 갯벌이 가을 하늘 아래 빛났다. 저 멀리 배들이 10여척 떠있는 것을 보니 바다 한가운데가 분명했다. 아직 물이 차오르기까지 여유가 있어서인지 설렘과 기다림으로 낚싯대를 던지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제부도를 시간의 섬이라고 합니다. 제부리에 330여가구 600여명이 살고 있는데 선조들이 그래왔듯 지금도 자연의 시계에 맞춰 살고 있지요.” 최호균 제부리 이장이 해안산책로를 안내했다. 길이 830m, 폭 1.5m의 나무데크를 따라 늘어서 있는 ‘꽃게’와 ‘갈매기’ 등 손바닥만 한 조형물들이 앙증맞았다. 꽃게 조형물 속에 어선을 넣어 사진을 찍는데 밭고랑처럼 기하학적인 문양을 드러낸 갯벌이 탐스러웠다. 고요한 바다를 걷다가 예쁜 의자에 걸터앉아 잠시 쉴 때는 절로 숨이 깊어졌다.
바다를 안고 있는 탑재산 모래언덕은 제부도 사람을 닮은 듯했다. 굵고 두꺼운 잎을 가진 키 작은 나무들이 잔뿌리를 드러내고 있는데 바람이 세고 온도차가 큰 때문인지 휘고 꺾이며 극한 환경을 견뎌내고 있었다.
제부도해수욕장 앞에 세워진 아트파크는 압권이었다. 바다로 탁 트인 문화전시공간에서 옛 마을 사진을 천천히 살폈다. 제부도 사람들은 조선 후기인 1800년대부터 갯벌이 드러나면 돌덩어리를 놓고 바닷길을 건넜다. 지금의 육지로 오가는 길은 1980년 마을 주민들이 차곡차곡 돌을 쌓으면서 생겼고 1998년 포장공사를 마쳤다.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는 올 들어서야 완성했다.
“제부리 사람들은 갯벌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섬이 육지와 다리로 연결돼 24시간 오갈 수 있다지만 저희는 급격한 개발을 원치 않습니다.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느린 섬이야말로 제부도의 정체성 아닐까요.”
■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도시
매향리에서 궁평항까지 10㎞를 거침없이 달렸다. 신호등이 없는 아우토반이라고 해야 할지, 차들이 휙하고 앞서나갔다. 강태공들이 망둥어잡이에 빠져 있는 매향항을 지나자 곧바로 매향리 역사관이 나타났다. 녹슨 실탄과 포탄으로 쌓아 만든 예술작품이 어른 키만 했다.
“고막을 찢는 전투기 소음으로 난청에 시달리는 매향리 주민들이 많았어요. 쿠니사격장은 ‘고운항’을 끼고 있는데 외국인들이 ‘코우니, 코우니’ 하고 부르다가 ‘쿠니’가 됐습니다. 농가로 탄피가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움을 안고 1950년부터 2005년까지 55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화성시청 정책기획과 차우신씨는 “쿠니사격장이 있는 매향리 일대에는 탄피가 가득했고 바다 가운데 농섬은 포탄에 절반 이상 깎여 나갔다”면서 “주민들 힘으로 사격장을 평화생태공원으로 바꾸고 있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막사를 지나 사격통제실로 올랐다. 너른 바다와 풍요로운 논밭에 포탄이 한없이 쏟아졌다니…. 누렇게 익은 황금 들판은 고요했다. 평화공원 일대에는 꿈나무들을 위한 8개 유소년 야구장 드림파크도 들어서 있었다. 전국의 수백개팀이 응원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정조 임금은 아버지와 나란히 묻히길 원치 않았습니다. 발치 아래 잠들었을 만큼 효심이 지극했지요.” 화성시 문화해설사 안병연씨(49)는 “정조가 처음 묻힌 곳은 융릉 아래 옛 강무당 터 인근이었다”며 “1821년 효의왕후와 함께 지금의 건릉으로 이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도세자와 정조가 잠들어 있는 융건릉으로 향했다. 사도세자가 잠든 융릉에서 만난 소나무숲은 짙고 장대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보면 정조와 혜경궁 홍씨는 융릉을 찾아 통곡했다. 정조가 “제가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아버지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슴을 쳤는데 통곡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곁에서 바라보던 무인석이 울었다는 얘기가 전해올 정도다. 융릉 발치 아래에 정조가 처음 묻혔던 초장지 옛능 터가 있다. 현재는 일반인에게 비공개라고 한다. 뱀딸기, 토끼풀이 자라고 상수리와 도토리나무가 키재기를 하는 숲을 지나자 양지바른 언덕이 보였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했을 때 정조는 11살이었다. 모진 아픔을 견뎌내고 강무당 뒤편에 잠들었던 정조의 옛 능터는 평화로웠다.
서울로 오는 길에 동탄신도시에 들렀다. 동탄은 초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시내에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의 공원이 있다. 화성시의 지난해 평균연령은 36세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젊은 도시다. 2001년 19만여명이던 인구가 2017년 현재 70만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서해안·제2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리고 SRT 동탄역이 생기면서 교통이 편해졌고 대기업과 협력업체 1만5000개가 들어서면서 도시가 젊어지고 있는 것이다. 화성시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옛길과 상처를 딛고 일어선 새 길이 만나는 도시였다.
<화성시 |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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