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즙 터지기 일보 직전 넥스트 여행지 스리랑카!

2017. 10. 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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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만 젊었어도 여기 한 번 살아보고 싶구나. 날씨도 선선하고, 음식도 맞고, 사람들도 착하고 참 좋네.” 하루하루 매 순간이 매우 특별했던 부모님과 함께 한 스리랑카 여행, 그 2주간의 여정이 끝났다. 부모님과 여행하는 이유? 부모님의 과거를, 부모님의 인생을 여행할 수 있어서였다.

2주간의 스리랑카 여행. 그 후반에 접어들었다. 네곰보에서 들뜬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은 시기리아, 캔디를 지나면서 적응 모드에 들어갔고, 차 밭으로 둘러싸인 중부산간 지대에 며칠을 묵으며 꽤 차분해졌다. 그동안 달라진 것은 부모님과 나 모두 홍차 마니아로 변했다는 것이다. 식사 때마다 나는 밀크티를 제조해 테이블로 날랐고, 설탕 듬뿍 우유 듬뿍 넣은 스리랑카식 밀크티에 부모님도 꽤 매료된 눈치였다. 티 팩토리에서 엄마는 쇼핑의 모든 권한을 내게 맡겼다. 차의 본고장에서 날라온 실론티! 얼마나 기분 좋고 멋진 선물인가? 차 트렁크엔 찻잔과 도자기, 접시를 포장한 노리다케 박스와 그 옆에 홍차 보따리가 하나둘 자리 잡았다.

▶최고의 전망, 하푸탈레

누와라 엘리야를 떠나는 날이다. 이 날의 최종 목적지는 엘라(Ella)였지만 가는 길에 하푸탈레(Haputale)에 잠시 들러갈 생각이었다. 이곳에 꼭 가고 싶은 식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이버 샨티에게 점심 전에 하푸탈레에 도착할 수 있겠는지 확인했다. 매번 고개를 갸우뚱 하며 ‘도로 사정에 따라…’ 라고 말끝을 흐리던 그가 이번엔 자신 있게 ‘오케이, 오케이!’ 한다.

우바(UVA) 지역, 해발 1400m 상에 위치한 하푸탈레는 누와라 엘리야 못지 않게 차 밭도 많지만 전망이 좋은 곳으로도 꽤 알려졌다. 이 작은 마을에서 차만큼 유명한 것이 ‘리사라 베이커리’란 식당이다. 이곳에 머무는 여행자들은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이 집에서 해결한다. 인기로만 따지면 가히 미슐랭 스타급이다. 나도 이 집 때문에 일부러 하푸탈레에 들렸을 정도니 별 세 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다. 다행히 한참 붐비는 식사시간 전에 도착해 1층에 위치한 식당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2층의 진열대에서 빵을 골라 2층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빵 시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다. 난 에그 사모사와 2~3가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빵들을 골랐다. 참 즐거운 고문이다. 이 중 몇 가지만 골라야 한다는 것이! ‘여기 며칠 머문다면 이것 저것 다 먹어 볼 수 있을텐데….’ 아쉬운 마음 탓인지 빵 맛이 더 좋았다. 식사로 주문한 인도식 볶음밥 ‘브리야니’도 감동이었다. 양이 어마어마해 둘이 하나를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리사라 베이커리의 음식은 현지인 샨티에게도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연신 나를 보며 ‘괜찮은 집이네!’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우리 네 명의 식사는 1만원이 조금 넘었다.

생각해 보니 스리랑카에 와서 음식에 실패한 적은 없었다. 일단 밥이 있고 야채가 있고 매운 소스가 있으니 부모님 입맛에도 가뿐히 통과다. 부모님과 함께 오지 않았더라면 하푸탈레에 하루 더 묵어갔을 수도 있겠다. 단순히 이 빵집 때문이라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이미 녹차 밭은 충분하단 표정의 아버지에게 하푸탈레에서 더 묵자고 할 순 없었다.

“아빠! 홍차 립톤 티 아시죠? 립톤이 원래 영국 사업가인데요, 여기에서 차 밭을 시작했다네요. 그 사람의 차 밭 정상에 가볼 거예요. 잠은 엘라에 가서 자요”라고 설명을 덧붙이며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마을이지만 약간의 볼거리가 있음을 강조했다. ‘립톤싯(Lipton’s Seat)’은 하푸탈레의 나름 유명한 관광지로 전망대라고 해도 좋다.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운전 기사도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경사가 급해지자, 차는 더 못 가는 곳이라고 손을 내젓는다. 걸어가는 것은 우리 일행에게 무리라 마침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툭툭’을 잡았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스리랑카식 ‘툭툭’은 태국 것과 달라 나란히 두 명 타면 딱 맞는 사이즈다. 이곳이 우리가 스리랑카에서 ‘툭툭’을 처음 타 본 곳이었다. 세 명이 엉덩이를 비비고 타니 비좁을 수 밖에!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외길을 내달리니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엄마와 나는 그 와중에서도 양 옆으로 펼쳐진 풍경에 넋을 잃었는데 아버지는 즐기지 못하시는 눈치다. “이거 위험하다. 언제 내리냐”며 연신 불안해 하셨다.

다행히 툭툭은 우리를 곧 정상에 내려 놓았다. 드디어 해방이다. 홍차의 아버지, 립톤 브랜드의 설립자 토마스 립톤이 자신의 홍차 밭을 내려다 보며 앉아있었다는 곳, ‘립톤싯’에 도착하니 비로소 아버지도 안정을 찾았다. 이내 벤치에 앉아 립톤 아저씨와 사진도 찍고 즐기는 모습을 보니 한숨 놓았다. 이날 날씨가 맑지 않아 차 밭이 분명하게 내려다 보이진 않았지만 구름 속 안개에 싸인 차 밭은 툭툭을 타고 오며가며 마음껏 감상했기에, 섭섭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산골짜기 ‘힙’한 마을, 엘라

엘라(Ella)는 요즘 스리랑카의 핫 플레이스다. 서양 여행자들로 번화가가 형성되어 여태까지 거쳤던 어느 장소들보다 활기가 넘쳤다. 엘라는 확실히 관광지였다. 샨티가 안내해준 호텔은 너무 시끄러웠고, 전망이 있는 예쁜 호텔은 이미 ‘만실’이었다. 할 수 없이 멋 없어 보이는 큰 호텔에 들어갔다. 방 찾는데 시간을 더 지체하면 에너지가 소모되니까. 깨끗하고 조용하고 와이파이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호텔엔 수영장이 있었지만 추워서 이용하진 못하니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고 보니 네곰보 해변을 떠난 후로는 온도가 낮은 지역을 여행하느라 수영은 커녕 긴 옷을 입고 싸매고 다녀야 할 판이었다.

엘라 호텔에 짐을 풀자, 엄마의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에어컨을 끄고 담요를 갖다 달라 하고 약을 드시게 했다. 엄마가 아프니 아빠도 예민해진다. ‘내일 아침엔 리틀 아담스 피크(Little Adam’s Peak)를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다음 날 오전, 아빠와 나 둘만 하이킹에 나섰다. 엘라의 ‘리틀 아담 스피크’는 1141m 높이다. 왕복 두세 시간이면 충분할 정도의 쉬운 하이킹 코스다. ‘리틀’이라 부르는 이유는 근처에 2243m의 진짜 ‘아담스 피크’가 있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발자국 모양으로 움푹 패여 있는 곳이 있는데 이를 아담이 ‘첫발을 내디딘 곳’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 진짜 아담스 피크는 네 시간 이상 소요되는 아주 힘든 본격 등산 코스라 들었다. 일출을 보려고 다들 새벽 두 시에 출발한다고 하는데, 그에 비하면 리틀 아담스 피크는 애기 언덕이다. 하지만 시원한 전망이 일품이라 어떤 이들에겐 이곳이 엘라에 머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너희 엄마도 왔음 좋았을텐데….” 아버지는 내심 아쉬운가 보다. 리틀 아담스 피크의 정상에서 사진을 찍으며 360도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가슴에 한가득 담았다.

▶스리랑카의 어제 오늘을 볼 수 있는 곳, 갈레

다음날 아침, 엘라에서 출발한 우리는 현지인들이 골(Galle)이라 부르는 스리랑카 남부의 항구도시 갈레를 향했다. 갈레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식민지 시대의 오래된 요새가 남아있다. 갈레가 다른 도시보다 운치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동서양의 문화가 잘 융합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가 아닐까. 갈레에 도착하니 이곳이 남부라는 것이 피부로, 바람으로, 온도로 먼저 느껴졌다. 북적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산골자기 작은 마을, 엘라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소란이다. 오랜만에 보는 알록달록한 건물들과 숍, 그리고 쉬어 가고 싶은 예쁜 카페들….

갈레는 여행자들이 한 번씩은 들러가는 중요한 도시라 그런지 단체 관광객도 많이 보였다. 아담한 구시가지에는 여행자들의 혼을 빼놓는 예쁜 기념품들과 보석, 예술작품들을 걸어 둔 오밀조밀한 가게들이 많아 가이드북에 쓰인 대로 두어 시간에 다 둘러보긴 불가능해 보였다. 혼자 왔으면 지갑을 털릴 수도 있겠다. 다행히 부모님과 함께라 쇼핑에 충분한 절대적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갈레 요새(Fort)는 동남아에서 유럽인들이 건설한 요새 중 가장 훌륭한 사례로 평가 받고 있는 곳이다. 남부 아시아의 전통과 유럽의 건축술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포르투갈인들이 건설을 시작했고 네덜란드가 완성했지만 문은 영국에서 만들었다 한다. 요새 내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 있고, 불교의 나라이지만 이슬람 사원도 있고 교회도 보이는 것이 이방인의 눈엔 흥미로웠다.

갈레를 마지막으로 관광코스를 마치고, 휴양지 미리사에서 2박을 하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긴 자동차 여행의 마지막을 보상받는 기분으로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보낼 계획이었는데,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생각했던 ‘미리사’에 갈 날을 목전에 두고 아버지가 일정 변경을 요구한 것이다. 엘라를 출발할 때 아버지가 물었다. “대체 미리사에 뭐가 있는데?” “바다요. 바다가 이쁘고 돌고래도 볼 수 있고, 여기서 조금만 가면 되는데…”, “바다는 여기도 있잖니? 차 그만 타고 이제 여기서 쉬다가 콜롬보 올라가자.”

아버지의 의견에 따라 갈레 주변의 바닷가 작은 호텔에 3박을 하기로 했다. 수영장이 있고, 따뜻한 바다와 소박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우나와투나(Unawatuna) 해변을 둘러봤다. 이 해변은 미리사보단 예쁘지 않았겠지만 미지근하게 데워진 인도양 바다에 몸을 담그고 엄마와 깔깔대고 웃었던 추억이 쌓인 곳이다. 일주일 동안 우리를 이곳 저곳 데려다 준 드라이버 ‘샨티’와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드디어 콜롬보!

스리랑카 여행을 시작한 곳이자 우리의 여행 마지막을 장식할 곳은 콜롬보였다. 콜롬보는 스리랑카의 경제중심지이면서 행정수도이다. 이곳엔 식민지 흔적이 남아 있는 항구쪽과 내륙의 상업지역,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선 인도양의 해변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콜롬보에 이틀을 머무는 동안 ‘툭툭’을 타고 다니는 것에 익숙해졌다. 처음에 가격을 흥정해야 하는 것이 다소 피곤하긴 했지만 큰 바가지는 없었다. 지역이나 거리에 따라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 같았다. 콜롬보에서 꼭 들러보라 권유하고 싶은 장소는 스리랑카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 1919~2003)와 관련된 장소들이다. 그의 건축은 ‘트로피컬 모더니즘’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는데 돌과 기둥 등 자연 재료를 그대로 건축에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그가 지은 리조트였다. 담불라에 그의 역작, 칸달라마 리조트가 있다. 암반 위에 올빼미가 날개를 펼친 모습으로 디자인된 칸달라마 리조트는 성지 그 자체로, 바위와 건물이 하나로 합쳐진 웅장하고 거룩한 모습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 담불라는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칸달라마 리조트를 방문할 기회가 없었던 지라 아쉬운 대로 콜롬보에서라도 그의 흔적을 찾아 보기로 했다. 이 도시엔 그가 살던 자택과 옛 설계사무실이 남아있다. 그의 자택은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제프리 바와 재단과 그의 유가족들이 관리하고 있고, 옛 설계사무실은 카페와 갤러리로 꾸며져 식사나 음료를 하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파라다이스로드에 있는 더 갤러리카페는 입구부터 느낌이 달랐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좌우에 들어서 있는 작품들이 시선을 잡는다. 하늘을 이고 있는 듯한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돌과 나무, 하늘과 바람이 느껴지는 자연스런 공간이 펼쳐졌다. 이런 곳에서 맛집이네 아니네, 음식의 맛을 논하는 것은 죄의식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고급스럽게 디스플레이된 케이크와 향이 좋은 커피는 콜롬보 최고의 카페임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었고, 테이블 세팅, 서비스마저 예술의 경지에 이른 이곳에서의 식사도 기대 이상이었음을 고백한다. 햇살 아래 야외 테이블엔 유럽인들이 바글바글했다. 마치 어느 와이너리의 오후를 그대로 옮겨 온 듯한 분위기, 이곳이 남프랑스인지 콜롬보인지 모를 일이다.

마르코 폴로는 스리랑카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했다. 스리랑카를 여행한 지인들은 한결 같은 반응이다. 추천은 하지만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도 내심 같은 마음이다. 곧 유명 관광지가 되어 매력을 잃을까 걱정이 된다. 칠순 넘으신 부모님도 ‘겨울마다 와서 지낼까?’ 라고 하실 정도니 그만큼 그들에게도 친근하고 매력적인 곳이었나 보다. 이번 여행에서 2주간 바쁘게 다닌다 다녔지만 작은 국토의 1/3도 보지 못했다. 아쉬움은 재방문으로 이어질 확률이 많으니 기다려보자. 현지에서 한국말로 말을 거는 스리랑카인들을 많이 만났다. 혹시 한국에 일하러 온 스리랑카인들을 만난다면 “참 아름다운 나라라고 들었다. 언젠가 가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해준다면 당신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 그 섬의 한 조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과 사진 조은영(여행작가, 무브매거진 편집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01호 (17.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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