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3) 창조신화·건국신화..고대인들 탄생과 생존의 염원 담긴 '돌배'

2017. 10. 1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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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물에 뜬 바위, 생명의 돌배

‘땅끝마을의 아름다운 절’이라 불리는 미황사(전남 해남)는 인도에서 온 배에 실린 검은 돌 속에서 나온 검은 소가 누운 곳에 세워졌다는 연기설화를 갖고 있다. 사진은 목판화가 홍선웅의 작품 ‘미황사 창건설화’(한지에 목판, 58×44㎝, 2016)다. 행촌문화재단 제공

신화의 주인공들은 어디론가 떠난다. 떠날 때 그들은 걷지 않고 무언가를 탄다.

고구려의 해모수는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유화를 만나기 위해 지상으로 하강하고, 하백(河伯)은 큰 물고기 세 마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물속을 다닌다. 몽골의 게세르는 33명의 용사를 거느리고 밤색 천마를 타고 지상세계로 내려온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은 푸른 사자를 타고, 보현보살(普賢菩薩)은 흰 코끼리를 타고 현현(顯現)한다. 신선(神仙)들은 구름을 타고 이동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돌을 타고 이동하는 신들이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는 쌍거북 바위(경북 포항시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역사서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의 연오랑은 해초를 따다가 홀연 바위에 실려 일본국으로 간다. 바위를 타고 온 연오랑을 현지인들은 특별한 존재로 여겨 왕으로 삼는다. 남편의 자취를 찾던 세오녀가 연오랑의 신발이 놓여 있는 바위에 오르자 바위는 저절로 남편의 길을 따라 바다를 건넌다. 연오랑 세오녀 부부는, 말하자면 바위로 된 배인 ‘돌배’를 타고 일본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고구려 건국신화에 보이는 ‘유화의 돌’은 더 이상하다. 유화는 아버지 하백의 허락 없이 해모수와 정을 통한 뒤 입술을 늘리는 형벌을 받고 쫓겨난다. 그 후 동부여 금와왕을 만나 그의 궁실에 유폐되는데 그 과정에서 특이한 장면이 연출된다. 어부가 그물 속의 물고기를 훔쳐가는 짐승에 대해 고하자 금와왕은 쇠그물로 끌어내게 하는데, 잡고 보니 입술이 길쭉한 여자가 돌 위에 앉아 있었다. 이규보의 서사시 ‘동명왕편’에만 등장하는 이 장면에서 돌은 주몽을 임신한 유화를 금와의 궁실로 옮겨주는 돌배의 역할을 한다.

이런 돌배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돌배의 수수께끼를 풀려면 해석의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돌 창세신화가 그것이다. 중국 서남부와 대만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들의 창세신화 가운데 돌로부터 인류가 출현하는 신화들이 많다. 중국의 하니족, 대만의 아메이족 신화에 따르면 하늘에서 떨어진 큰 돌에서 최초의 남자가 출현한다. 대만의 파이완족이나 베이난족의 경우에는 돌 속에서 여자가 태어난다. 이 최초의 여자는 돌에서 흘러나온 물을 먹고산다. 중국 나시족의 신화는 태초의 바다에 떠 있던 섬의 둥근 돌이 갈라지면서 한 쌍의 원숭이가 출현하는데 이 원숭이 짝이 인류를 낳았다고 이야기한다.

창세신이 돌로 인간을 직접 만드는 신화도 있다. 투롱족의 창세신 카메이와 카싸는 돌을 비벼 진흙을 만든 뒤 진흙으로 인간을 빚는다. 어룬춘족의 창세신 언두리마파는 돌을 깎아 사람을 만든다. 돌에서 인간이 탄생하는 경우든 창세신이 돌로 인간을 창조하는 경우든 돌은 인류의 어머니, 모태의 상징이다.

왜 우리들 사피엔스는 돌을 모태로 상상했을까? 신화는 문화를 만들지만 동시에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신화를 바탕으로 경북 포항 호미곶에 세워진 연오랑세오녀 조형물.

‘돌-인간’ 또는 ‘어머니-돌’이라는 신화의 상상력은 석기 문화의 산물일 것이다. 석기 시대에 우리는 바위 동굴에 살면서 돌을 깨거나 갈아서 사냥과 채집활동에 유용한 도구를 만들어 썼다. 암혈을 드나들며 삶을 영위했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바위 동굴의 출입과 여성의 출산을 동일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것을 은유적 사고라고 한다. 돌의 자리에 동물이 들어가면 이른바 ‘토템(Totem)’이 된다. 이런 상상력은 모두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돌배의 뿌리에는 ‘어머니 돌’(母石)이 있다.

그렇다면 모석은 어떻게 부석(浮石), 곧 물에 뜨는 돌배가 되었을까? 모석과 부석의 관계를 풀려면 또 다른 해석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인류 재창조 신화, 곧 홍수신화가 그것이다.

명나라 홍무 연간 초기, 동명현에 노파가 살았는데 어느 날 이인(異人)을 만났다. 그는 마을 입구의 돌사자를 가리키며 “이 사자의 눈이 붉어지면 홍수가 날 거요. 그때 도망치면 재난을 면할 거요”라고 말했다. 노파는 매일 그곳에 가서 몇 번이나 돌사자의 눈을 보았다. 사람들이 이유를 물어 알려주자 누군가 몰래 가서 돌사자의 눈을 붉게 칠해 놓았다. 돌사자의 눈이 붉어진 것을 보고 노파는 그것이 가짜인지도 모르고 도망쳤다. 그러자 며칠이 안되어 그 마을이 모두 물에 잠겼다.

이 이상한 이야기는 청나라 강희제가 만든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 수습된 ‘동명현지’(東明縣志)에 실려 있다. 동명현은 현재 중국 산둥성 허쩌시(荷澤市) 인근이다. 이 지역에서 전해지던 이른바 함호(陷湖) 전설을 기록해 놓은 것인데 우리의 장자못 전설이 같은 유형의 이야기다. 못된 부자가 시주를 청하러 온 중을 구박하자 며느리가 대신 사과하면서 시주를 해주었고, 중은 밤에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을 떠나라고 했지만 도망치다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며느리는 돌로 변했고 부자의 집은 홍수에 함몰되어 연못이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이 장자못 전설이나 함호 전설을 못된 부자를 징치하는 이야기나 노파를 속인 마을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은 이야기로 보고 말 것은 아니다. 민간에 구전되는 신화 가운데 흥미롭게 변형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허난성 퉁바이현(桐柏縣)의 한족이 구술해 준 이야기가 그것이다.

판꾸 오누이가 돌사자산 위에서 돌사자와 친하게 놀면서 살았다. 하루는 돌사자가 판꾸한테 오늘부터 매일 자신의 입에 만두 하나씩을 넣어달라고 말한다. 49일이 지난 뒤 돌사자는 판꾸에게 자기 눈이 붉어지면 누이하고 내 배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한다. 오래지 않아 돌사자의 눈이 붉어지자 오누이는 돌사자 배안으로 피했고, 곧 큰비가 내려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오누이는 돌사자의 배안에서 49일 동안 만두를 먹으면서 살아남았다.

이 구전 신화는 ‘돌사자의 눈이 붉어지면 홍수가 난다’는 핵심 화소를 매개로 함호 전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함호 전설의 노파는 돌사자의 눈이 붉어지자 도망을 쳤지만, 홍수신화의 오누이는 돌사자의 배안으로 피한다. 피난처가 사자의 모습을 지니기는 했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돌이다. 돌 속에 들어가 홍수를 피한 것이므로 돌이 ‘노아의 방주’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돌배는 홍수신화에 등장하는 의미심장한 피난선(避難船) 모티프 가운데 하나이다.

돌배는 대만 신화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주 오래전에 리나하무에 홍수가 발생해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 홍수가 발생할 당시 오누이가 집 앞에서 밤을 찧고 있었다. 이들은 갑자기 홍수가 일어나자 숨을 곳을 찾다가 황급히 돌절구 안으로 몸을 숨겼다. 돌절구 안에 들어간 남매는 파도를 타고 떠다녔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는 어느 날 어떤 높은 산에 이르렀다. 며칠이 지나자 홍수가 빠졌다. (…) 남매는 나누마안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은 날씨가 좋고 토지도 좋았다. 오누이는 그곳에 정착하여 부부가 되었다.

고산족의 하나인 아메이족의 홍수신화다. 여기서는 돌절구가 배 역할을 수행한다. 이 돌절구에 대해 아메이족은 나무절구를 사용하므로 나무절구의 잘못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구전의 현장에서는 기억의 왜곡에 의해 돌절구가 될 수도 있고 나무절구가 될 수도 있다. 설령 왜곡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돌절구로 표현한 것은 ‘돌배’라는 신화적 상상력이 아메이족의 문화 안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절구는 민족에 따라 맷돌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런데 돌절구나 맷돌이나 돌로 만든 생활도구로 곡물을 찧거나 갈 때 사용하는 것들이다. 이런 도구들은 인류의 정착생활과 농경문화의 산물이다. 아시아 지역의 신화 자료들을 보면 홍수신화는 농경문화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홍수신화에 돌절구나 맷돌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모석은 어떻게 부석이 되었을까? 신석기 농경문화와 관계가 깊은 홍수신화의 ‘뜨는 돌’은 이전의 고문화가 지녔던 인류의 질료로서의 돌, 어머니-돌의 연장선에 있다. 돌은 모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을 생산할 수 있고, 모태이기 때문에 홍수에도 생명을 보존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류를 생산한 돌이라는 상상력이 인류를 보존하는 돌배의 상상력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세신화에서 인류를 낳은 모석, 홍수신화에서 두 남녀를 보존한 부석 신화소는 우리 무속신화의 ‘돌함’하고도 연결되어 있다. 제주 무속신화 ‘삼승할망본풀이’의 주인공 동해용궁따님애기는 용궁에서 쫓겨날 때 무쇠 석갑(석함)에 봉함된다. ‘괴네깃당본풀이’의 괴네깃도가 쫓겨날 때도 무쇠 석함에 실린다. ‘삼승할망본풀이’의 무쇠 석갑은 물 아래 3년, 물 위 3년을 떠다니다 뭍에 도달하고, ‘괴네깃당본풀이’의 무쇠 석함도 여섯 해 동안 바다를 떠다니다 용왕국에 도달한다. 무쇠가 붙어 더 무거울 것 같은 무쇠 석갑은 돌배의 변형이다.

동해용궁따님애기는 무쇠 석갑에서 나와 산육신(産育神) 삼승할망(삼신할미)으로 모셔진다. 괴네깃도는 석갑에서 나와 용왕의 사위가 된 후 강남천자국에 들어가 큰 전공을 세운 뒤 제주로 귀환하여 김녕리 당신(堂神)이 된다. 두 주인공은 돌배의 시간을 통과한 뒤 새로운 존재가 된다. 돌배가 이들의 신성성을 증명하는 신화소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는 모태이기도 했다는 것을 뜻한다.

신라 경덕왕 8년,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배가 사자포구(현재의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 도착했다고 한다.

미황사 대웅전 주춧돌에는 일반적인 연꽃 무늬가 아니라 바다와 연관된 게, 거북 등이 조각되어 있다.

배를 맞이한 의조 스님 등이 경전을 봉안할 장소를 의논하자 배 안에 있던 검은 돌이 벌어지면서 검은 소가 출현한다. 스님의 꿈에 나타난 금인(金人)은 경전을 진 검은 소가 가다가 눕는 곳에 경전을 모시라고 말한다. 해남의 아름다운 절 미황사는 이런 인연으로 세워진다.

미황사 연기설화의 검은 소를 낳은 검은 돌, 그 돌을 싣고 온 배가 바로 돌배(石船)였다. 인도양을 건너 땅끝마을에 닿은 돌배는 인류를 낳은 돌, 홍수로부터 인류를 지켜낸 돌배의 상상력에 잇닿아 있다.

▶필자 조현설 한국 고전문학·구비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교수(국문학)로 한국 신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화와 서사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4),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신화 연구>(2013) 등이, 논문으로 ‘해골, 삶과 죽음의 매개자’(2013),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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