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청쿵 그룹 CEO 리카싱(李嘉誠) '교만은 경계하고 끊임없이 학습하라!'

2017. 10. 1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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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자산 약 30조원의 ‘아시아 최고의 부자’ 리카싱(리자청) 청쿵 그룹 회장. 중학교를 1학년 때 중퇴한 그가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15세 때다. 그가 택한 것은 작은 시계방의 청소부였다. 리카싱은 하루 16시간씩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이후 능력과 운이라는 쌍두마차를 타고 ‘부의 제국’을 이루었다. 그러면서도 수십 년 동안 리카싱 회장이 한 번도 잊지 않은 엄격한 자기 검열이 있었다. 그것은 ‘교만과 나태’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리더십의 본질이다.

▶‘포용과 신뢰’로 조직을 이끌다

중국, 특히 홍콩 사람들의 삶에서 청쿵(長江) 그룹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지금의 홍콩 사람 대부분은 청쿵 그룹이 지은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그들이 건설한 도로와 교량, 지하철 역을 통해 출퇴근하고 청쿵 그룹이 서비스하는 전화나 전기, 인터넷을 이용하고 청쿵 그룹이 만든 매장에서 식사를 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산다. 동남아시아의 허브인 홍콩항을 가득 채운 컨테이너들 역시 청쿵 그룹의 손에서 전 세계로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홍콩인들에게 청쿵 그룹은 의식주의 최대 제공자이다.

청쿵 그룹은 홍콩 내에만 약 7만여 채의 빌딩과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교량과 도로, 지하철, 항만 등 인프라 건설의 주축을 담당했다. 게다가 전기, 통신, 인터넷, 슈퍼마켓인 왓슨까지, 그 사업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청쿵 그룹의 홍콩 주식 시장에서의 비중이 거의 25%대를 오르내리는 것만 보아도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오죽하면 “홍콩인들이 1달러를 쓰면 이 중에서 5센트는 청쿵 그룹 리카싱 회장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까지 돌까.

바로 이 청쿵 그룹의 창업자이며 최고 CEO가 아시아 최고의 갑부이자 <포브스> 기준 세계 10대 부자에 손꼽히는 리카싱이다. 그의 청쿵 그룹은 현재 청쿵 실업과 허치슨왐포아 두 개의 대표회사를 중심으로 전 세계 54개국에 500여 개 계열사, 22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리카싱 회장의 개인 자산은 약 수조 원에 육박할 정도이지만 그가 유명세를 탄 것은 이 같은 천문학적 부를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 적극적인 기부와 교육 및 의료 자선 활동 등에서 리카싱 회장은 홍콩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올해 89세의 리카싱 회장의 공식 월급은 우리 돈으로 약 65만원이며 그는 10년이 훨씬 지난 양복을 아직도 즐겨 입는다. 또한 손목에는 3만원 짜리 싸구려 시계를 차고 있다. 리카싱 회장은 지금도 회사에서 식사를 할 때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똑같이 줄을 서고 국 한 그릇, 반찬 네 가지에 만족한다. 이 같은 리카싱 회장의 남을 존중하고 절약하는 생활은 그가 맨손으로 시작해 오직 성실과 노력만으로 청쿵 그룹을 세운 원동력이다.

리카싱 회장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오히려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자퇴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리카싱 회장의 지적 갈망과 학습 능력은 대단했다. 자퇴 후에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독학으로 중고교 과정을 마쳤고 10대 때부터 시작된 공부하고 책을 읽는 습관을 지금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 AI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의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와 딥마인드의 AI부문 총괄인 슐레이만이 함께 홍콩을 찾았다. 바로 리카싱 회장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리카싱 회장은 일찍이 자신의 벤처캐피털 호라이즌벤처스를 통해 구글에 인수되기 전 스타트업 단계의 딥마인드에 투자한 경력이 있다. 이 날의 만남은 리카싱 회장이 나날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AI를 공부하기 위해 특별히 두 사람을 초청한 것이었다. 고령으로 내년 은퇴를 앞두고 있는 리카싱 회장의 끊임없는 지적 욕구와 호기심을 짐작케 하는 일화이다.

당대 최고의 부와 명예를 거머쥔 리카싱 회장의 리더십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연구되고 있다. 혹자는 그를 ‘한 손에는 <논어>를, 다른 손에는 주판을 든 거상’ 또는 ‘재신財神’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리카싱 회장의 리더십의 본질은 포용력이다. 그는 비록 자신에게 불편하고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더라도 부하직원이나 조직원에게 절대로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경영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또한 그는 “친분을 핑계로 사람을 쓰기 시작하면 그 회사는 망한다”고 말한다. 즉 친분에 있어서도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며 오로지 직원들을 평가할 때는 맡은 일을 열심히 해 성과를 내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후학들에게 충고한다. 즉 포용과 신뢰를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 때 조직 역시 통합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리더 역시 그 가치와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을 ‘거상 리카싱’이 몸소 보여준 것이다.
▶15세의 소년 가장, 책에서 돈을 찾다

리카싱은 1928년 중국 광둥성 차오저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리원징은 교원으로 집안은 가난했다. 리카싱은 2남1녀의 장남이었다. 리카싱 집안은 중일 전쟁 직후인 1937년 홍콩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홍콩에서 채 자리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리원징은 결핵에 걸렸다.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한 리원징은 1943년 사망했다. 리카싱은 불과 15세의 어린 나이에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리카싱은 중학교 1학년때 중퇴하고 외삼촌의 시계 공장에 취직했지만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은 청소뿐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고생한 끝에 17세의 리카싱은 플라스틱 공장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리카싱은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일을 배웠다. 태생이 성실하고 부지런한 리카싱은 2년 만에 능력을 인정받아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하루에 16시간씩 일을 했다. 그는 22세 때 회사를 나와 독립을 시작했다. 그는 1950년 종자돈 7000달러를 들여 청쿵실업이라는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차렸다. 회사 이름인 청쿵은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장강長江’의 광동어식 발음이다. 리카싱은 자신의 회사가 6300㎞ 길이의 흡사 바다 같이 넓은 장강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수용하는 큰 회사가 되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리카싱의 청쿵은 타고난 능력과 성실함으로 당시 홍콩 내 300여 개의 플라스틱 공장 중에서도 탄탄한 회사로 자리 잡았다.

1957년 리카싱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리카싱이 기회를 발견한 것이다. 평소에도 다양한 책과 전문서적을 즐겨 읽던 그는 어느 날 플라스틱 전문잡지를 읽고 있었다. 리카싱은 잡지에 실린 한 기사를 보고 무릎을 쳤다. 기사는 한 이탈리아 플라스틱 회사가 조화를 만들어 유럽과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다는 것. 중국 사람들은 축제도 많이 열고 특히 꽃을 좋아했지만 당시 홍콩의 습하고 더운 날씨로 인해 생화는 가격도 비싸고 공급이 원활치 못했다. 리카싱은 생화처럼 똑같이 생긴 조화를 만들어 팔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리카싱은 무조건 이탈리아로 떠났다. 하지만 이탈리아 회사가 홍콩에서 온 무명의 젊은이에게 기술을 제공할 리 만무했다. 리카싱은 꾀를 냈다. 그는 공장에 일용직으로 취직했다. 그리고 가끔씩 동료 직원들을 중국 식당으로 초대해 식사도 대접하면서 직원들과 친근하게 지냈다. 이렇게 친분을 쌓은 리카싱은 이탈리아 기술자들에게 플라스틱 조화를 만드는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홍콩으로 돌아 온 리카싱은 면밀하게 생산과 판매 계획을 세웠다. 조화는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것이 장점이지만 오래 보면 질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해서 리카싱은 대량 생산, 대규모 판매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대량의 조화를 만들고 이를 대대적으로 광고하면서 영업 사원 역시 대규모로 채용했다. 리카싱의 전략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조화는 불티나게 팔려나가 홍콩을 온통 조화로 뒤덮을 정도였다. 당연히 후발업체도 등장하면서 조화 시장은 포화상태로 변했다. 물론 리카싱은 선발주자로서 상당한 이익을 내고 이미 조화 시장에서 철수한 상태였다.

▶재산의 1/3을 기부한 ‘의로운 부’의 실천가

조화 사업으로 큰 돈을 번 리카싱은 정치적, 경제적 혼란기를 맞은 홍콩에서 남과 다른 시선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다. 그것은 부동산이었다. 1960년대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였다. 많은 사람들이 홍콩을 떠나 다른 동남아시아로 이주를 한 것도 원인이었다. 남들은 부동산 시장에서 발을 뺄 때 리카싱은 오히려 부동산에 올인했다. 리카싱은 홍콩의 경제적 불황과 정치적 혼란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저가에 부동산과 토지를 매입해 개발사업을 벌였다. 빌딩을 세우고, 아파트를 지었다. 리카싱은 홍콩 베이지아오와 차이완에 연이어 빌딩을 세웠다.

그의 예상대로 1970년대에 접어들자 홍콩 경제는 급성장세에 접어들었다. 홍콩은 당시 한국, 대만,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4용’으로 불리며 돈과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리카싱이 지은 아파트와 빌딩은 비싼 가격에 팔리기 시작했다.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리카싱은 몇 배의 수익을 올렸고, 이 수익을 다시 부동산 개발에 투자했다. 이때부터 리카싱은 홍콩을 넘어 동남아시아권의 화교 거상으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1972년 리카싱의 청쿵실업은 홍콩 증시에 1호 기업으로 상장하는 영광을 안았다. 단돈 7000달러로 사업을 시작한 지 딱 22년 만에 리카싱은 홍콩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이다. 1979년 리카싱은 영국계 항만 기업인 허치슨왐포아를 인수했다. 원래 허치슨왐포아는 왓슨이라는 드럭스토어의 원조격인 회사. 영국 자본인 허치슨은 항만 회사 왐포아독과 왓슨을 인수해 허치슨왐포아로 합병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경영난에 빠졌고 곧 홍콩은행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리카싱은 이때 홍콩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허치슨왐포아의 지분 20%를 인수했다. 홍콩을 비롯해 전 세계 언론은 이 인수를 주목했다. 그리고 이렇게 기사를 썼다.

‘식민지 화교 출신 기업, 최초로 영국계 자본 기업을 인수하다.’

리카싱의 전략은 적중했다. 홍콩은 ‘아시아의 진주’로 불리며 당시 경제 성장에 올인한 중국과 동남아 물류의 허브가 되었다. 자연히 홍콩항의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증가되면서 홍콩의 작은 항만회사인 허치슨은 세계적인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리카싱은 1984년 허치슨의 나머지 지분 중 20%를 더 인수해 허치슨왐포아의 주식 40%를 보유한 실질적인 오너가 되었다.

이후 리카싱의 사업은 성장과 확장의 연속이었다. 전기, 수도, 건설, 통신, 가스, 마켓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홍콩인들의 삶과 연결된 것이다. 리카싱은 홍콩에만 머물지 않았다. 중국 본토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병행했고 2011년에는 약 4조2000억원을 주고 영국 최대의 상하수도 회사인 노덤브리언 워터를 인수하기도 했다. 그의 사업이 홍콩을 넘어 전 세계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15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청소부부터 시작해 22세에 독립해 사업을 시작한 리카싱. 그는 지금 부동산개발, 호텔, 항만, 건설, 에너지, 증권, 통신 등 약 500여 개의 기업과 86조원의 가치를 지닌 CK허치슨홀딩스의 회장이 되었다. 그야말로 무일푼으로 시작해 ‘개천에서 탄생한 용’이 된 것이다.

▷#리더십1 | 교만을 두려워하고 멈출 때를 알아라

사람들은 리카싱 회장을 ‘아시아의 워런 버핏’이라 부른다. 이는 그의 ‘착한 선행’에서 기인한다. 리카싱 회장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장남인 빅터 리는 청쿵 그룹의 후계자로 이미 내정되어 2018년부터 그룹을 이끌 예정이고 둘째 아들 리처드는 일찍부터 독립해 미디어사업체인 PCCW를 설립해 성공했다. 그런데 리카싱 회장은 “나에게는 빅터와 리처드말고 사실 아들이 하나 더 있다. 셋째 아들인 그 아이의 이름은 ‘기부’이다. 그래서 당연히 내 재산의 1/3도 셋째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다”라고 말한다.

항상 ‘의로운 부’를 강조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리카싱은 ‘리카싱재단’을 설립해 활발한 기부와 자선활동을 벌이고 있다. 베이징, 뤼양, 텐진, 시안, 홍콩 등지에 대학을 세우는 것은 물론 빈곤 가정 구제 산업과 장애인 재활 프로젝트 진행, 각종 의료 봉사 활동 등에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개인 돈을 기부하고 있다. 특히 그 자신 역시 학교를 다니고 싶어도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한이 되어 교육 인프라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한마디로 ‘의로운 부’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1조50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했고 2006년에는 “내 재산의 1/3을 기부에 쓰겠다”고 밝혔다.

리카싱 회장의 돈에 대한 관념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리카싱 회장이 차에 오르는데 바닥에 1센트짜리 동전이 떨어져 있었다. 리카싱 회장이 이를 주우려 허리를 굽히자 호텔 직원이 대신 주워서 리카싱 회장에게 주었다. 그러자 리카싱 회장은 직원에게 10달러를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이 동전을 줍지 않았다면 이 동전은 빗물에 내려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낭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동전을 주은 대가로 준 이 10달러는 낭비되지 않을 것이다.” 단 한 푼의 돈도 소중히 생각하고 그 소중한 돈을 더 의롭고 세상을 위해 쓰겠다는 그의 경영철학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리카싱 회장이 이처럼 기부와 자선활동에 활발하게 임하는 것은 그가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따뜻한 시각에서 출발한다. 그 자신 험하고 가난한 시절을 겪었기에 가난한 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한 발 앞서는 것이다. 리카싱은 <장자>의 말을 들어 진정한 귀함과 천함을 설명한다. “제왕의 지위가 반드시 고귀한 것이 아니다. 또한 가난한 자라고 천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귀하고 천한 것의 기분은 돈과 신분이 아닌 마음씀씀이와 행동의 아름다움에 달려 있다. 돈을 많이 번 사업가가 성공한 것이 아니다. 성공한 사업가는 어제보다 지혜롭고 어제보다 더 너그러우며 어제보다 더 베푸는 사람이다. 부를 쌓아놓고 사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활동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이 천한 일이다.”

리카싱 회장이 리더로서, 성공한 사업가로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교만’이다. 그는 항상 스스로에게 “나는 교만하지 않은가?”를 질문한다. 그의 사무실에는 ‘대지지지 大智知止 소지유모小智唯謀’라는 글이 걸려있다. 이 뜻은 ‘뜻이 큰 사람은 멈출 때를 알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항상 무엇인가를 도모만 한다’는 것. 리카싱 회장은 뒤돌아보고, 멈추고, 물러나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리더십2 | 조직원의 능력에 맞춰 일을 주자

거상이 된 리카싱은 수십 년 간의 사업과 CEO로서의 경험 그리고 인생을 겪은 선배로서 후학들에게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남겼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능력에 맞는 역할이 있고 이를 잘 활용하고 조직원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과 능력이라고 말한다.

리카싱은 ‘여섯 유형의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말며 또한 일곱 유형의 사람과는 교류하지 말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꼭 사귀어야 할 네 유형의 친구도 함께 알려주었다. 먼저 함께 사업을 하거나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육불합六不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야가 좁고 욕심이 많은 사람과는 일하지 마라.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해득실과 이익만 보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동료의 노력과 희생에는 관심이 없다.

둘째, 책임감, 사명감이 없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말라.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돈이거나 개인의 이익이다.

셋째, 항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말라. 그로 인해 당신조차도 긍정적인 마음과 에너지를 잃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 인생을 사는데 뚜렷한 원칙과 목표가 없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매사에 작은 것이라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말라. 그들은 상대방의 마음씀씀이와 은혜를 모르는 사람으로 언젠가는 배신한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않는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상대의 배려를 가볍게 여긴다.

여섯째, 배려와 따뜻함 등 인간미가 없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말라. 그들과 함께 있어도 당신은 항상 즐겁지 않고 배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리카싱이 말하는 인생에서 사귀어서는 안 되는 ‘칠불교七不交’이다.

첫째,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말이 거칠고 인정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히려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셋째, 아주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시시콜콜 따지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그들이 매사에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이 손해볼까 두려워하는 행동이고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당신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넷째, 인생은 평생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것이다. 받기만 하고 줄줄 모르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 그들은 이기적이며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다.

다섯째, 아부를 잘하는 사람과는 사귀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상황에 따라, 이익을 위해서 하기 때문에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여섯째, 힘 있는 사람 앞에서 원칙을 잃는 자와는 사귀지 마라. 그들은 사람의 귀천, 신분, 빈부에 따라 언제든지 태도가 변할 사람들이다.

일곱째, 불쌍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 온정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다.

리카싱은 위의 육뷸합, 칠불교와 함께 친구가 되면 좋을 사람에 대한 조언도 남겼다. ‘내가 가난하고 힘들 때도 위로해줄 수 있는 친구를 사귀어라’ ‘항상 밝고 긍정적인 친구를 사귀어라’ ‘나와 인생의 고난과 위기를 같이 갈 수 있는 나에게 길을 안내 할 수 있는 친구를 사귀어라’ ‘나를 비판하고 야단칠 수 있는 친구를 사귀어라. 그는 나를 깨어있게 하고 나의 부족을 발견해주기 때문이다.’ 등이다.

[글 박기종(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위키미디어, 픽사베이

인용 및 참조 <21세기 경영대가를 만나다 - CEO편> 박종세·강효성·송의달·선우정·김영진 외 지음/ 김영사 간, <위대한 CEO가 우리에게 남긴 말들> 조선경 저 / 위즈덤하우스 간, <리더의 인생 수업> 삼성경제연구소 저·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00호 (17.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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